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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06. 2017

흡연에 감사드립니다

선택과 책임에 관한 이야기

Thank You For Smoking이라는 다소 엉뚱한 영화 제목에 이끌려서 보게 된 영화. 백해무익하다고 잘 알려져 있는 담배를 피는 것에 감사한다니! 대체 어떤 내용의 영화인지 궁금했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 어디서 많이 봤다 했는데 처음엔 X 파일에서 멀더 요원으로 나왔던 배우랑 닮았다고만 생각했다가, 다크 나이트에서 봤던 게 떠올랐다. 다크 나이트에서 하비 던트로 나왔던 배우였다. 다크 나이트에서도 검사로 나왔는데 이 영화에서도 말빨 하나로 먹고 사는 사람이다.
 
다크 나이트에서 보다는 상당히 젊어보이지만. (그 전에 찍은 영화이니까) 턱 끝에 움푹 파인 건 (이걸 뭐라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서양 사람들 보면 그런 사람 꽤 있던데) 여전한듯. ㅎ
 
담배 업체의 대변인이며, 로비스트인 '닉 네이러'의 일상을 따라가고 있는 이 영화는, 크리스토퍼 버클리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소설도 한번 읽어보고 싶다)
 
이 영화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담배갑에 제작자와 출연자들의 이름을 새겨 넣어 보여주면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출연자들의 이름이 특정 담배의 이름처럼 보일 정도다.


영화 Thank You For Smoking

 
이야기는 우리나라로 치면 100분 토론 비슷한 프로그램에 나온 닉의 모습을 보여주며 시작된다. 닉은 담배의 유해성을 두고 토론을 벌이는 프로그램에 출연해서도 - 심지어는 이른 나이에 핀 담배 때문에 암에 걸린 청소년을 앞에 두고도 전혀 꿀리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해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그것이 그가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닉은 타고난 말솜씨로 담배 회사를 변호하는데 성공한다. 닉은 잘나가는 로비스트이자, 대변인이다.
 
좋은 차, 좋은 집, 무엇하나 부러울 것 없어 보이는 그에게도 한가지 핸디캡은 있었다.  그건 바로 이혼한 전 부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 조이다. 조이 앞에서는 그도 한없이 자상하고 부드러운 아버지다. 이혼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아이들을 자주 만나지 못해 조금이라도 더 오래 시간을 보내려고 애를 쓰는 그런 아버지 말이다.


영화 Thank You For Smoking

이혼한 전 부인은 그런 닉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담배의 유해성을 강조해도 모자랄 판에 담배 회사를 적극적으로 변호하고 나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닉이 못마땅하기만 하다. 하지만 아들 조이는 그런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한다. 아버지가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며 은근 동경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인다. 닉은 담배 회사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편들다가, 납치되기도 하고 납치되었을 때 평소의 '흡연' 덕분에 살아나기도 한다.


이를 담배가 유해하지만은 않다는 증거로 채택해 사용하려던 닉은 그러나 하룻밤을 함께 보낸 여기자 때문에 담배 회사의 대변인으로서도 로비스트로서도 한순간에 추락할 위기에 놓이게 되고 회사 측은 닉에게 변명을 하거나 대응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를 격리시킨다.


닉은 실의에 빠지게 되지만, 집에 찾아온 아들이 자신에게 보여주는 무한한 신뢰 때문에 다시 일어설 마음을 갖게 된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고, 담배 회사를 대변하는 일도 그만두게 된다. 뭐,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나쁜 기업들을 변호하는 일을 그만둔 것은 아니다. 그는 앞에 나서서 그들을 변호하는 대신 그들에게 어떻게 말을 해야 위기의 순간을 잘 넘어갈 수 있는지를 가르친다.


영화 Thank You For Smoking

이 영화는 담배 회사를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사람 (지미 스튜어트가 되기를 꿈꾸었으나 올리버 노스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을 통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흡연자들의 대다수가 담배가 유해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하지만, 알면서도 담배를 피워놓고 몸이 망가지고 나면 그때가서는 담배 회사가 그 위험성에 대해 충분히 이야기해주지 않았다고 화를 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담배를 피우고 안 피우고는 개인의 선택에 맡겨야 하며, 그 자유로운 선택에 따른 결과도 개인이 책임져야 한다. 이 영화에도 나오듯이 담배 문제 뿐만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일에는 다소 얼마간의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
 
얼마간의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그게 겉으로 드러나기 전까지는 잘 모르는.
 
하지만 그런 위험성을 감수하고 안 하고는 개인의 선택에 따른 문제여야만 한다는 것을 이 영화는 말해주고 있다. 나 역시 비흡연자이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겠지만,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생각이 어느 한쪽으로 너무 치우치는 것의 위험성과 균형잡힌 사고의 중요성에 대해 새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던 것 같다.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유쾌한 영화 임에는 틀림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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