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Nov 10. 2017

우리가 고아였을 때

고아였던 때를 기억한다는 것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우리가 고아였을 때'는 1923년 여름, 케임브리지 대학교를 갓 졸업한 주인공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런던의 작은 아파트에 정착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된다. 이야기는 주인공이 과거를 회상하는 형식으로 서술된다.


크리스토퍼 뱅크스는 상하이 공동조계(상하아이에 있는 외국인 거주지역)에서 살았던 영국인이었다. 그의 옆집에는 일본인이 살았는데 그는 그 일본 남자아이(아키라)와 가깝게 어울리며 지낸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여성으로 아편 무역을 반대하는 캠페인에 열성적으로 임해왔던 여성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의 아버지가 사라지는 일이 발생하고 아키라와 주인공은 탐정놀이를 하며 아버지가 어디로 사라졌을지 추측해보며 유년기를 보낸다. 그러던 어느날 어머니마저 사라진다. 고아가 된 그는 영국에 있는 이모에게로 보내진다.

이야기는 이후 사설 탐정으로 명성을 떨치게 된 크리스토퍼 뱅크스가 사라진 부모님의 행방을 쫓는 여정을 따라간다. 어른이 된 그는 독신으로 살며 고아가 된 제니퍼라는 여자아이를 양녀로 들여 그녀를 보살피며 다정한 삼촌이 되어주기도 한다.


주인공의 직업이 사설 탐정이기 때문에 이 소설을 탐정 소설이라고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던 것 같다. 서평에 실망했다는 내용과 함께 다른 추리소설에 대한 언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탐정 소설이 아니고 역사의 소용돌이에 휩쓸려 삶을 잃어버린 한 남자의 인생에 대해 다루고 있는 소설이었다.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라서 코끝이 시큰해지기도 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에는 항상 '전쟁'이 그 배경으로 등장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이 작품을 읽으면서 했다. 앞서 읽었던 '부유하는 화가'에도 전쟁이 소설적 배경으로 등장하며 그의 작품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전쟁'으로 인해 고아가 되거나 집을 잃게 된 난민들에 대해 생각했다. 누구에게나 부모님을 잃게 되는 순간이 오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고아의 삶을 살게 될 사람들이지만, 그것을 너무 어린 나이에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잃게 된 고아들에 관한 이야기여서 마음에 남는 것이 많았던 것 같다.

일어난 일들은 어떻게 할 수 없지만 그 일에서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더 나은 어떤 것을 쌓아올려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예로부터 우리 선조들도 전쟁에 대한 기록을 남긴 것이었을 거다. 잊지 않고 기억하기 위해서. 그리고 후손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어떻게 외세의 침입을 당하게 되었고 그래서 어떻게 막아냈는지. 또 막아내지 못했는지. 인간은 누구나 실수를 하지만 그 실수를 통해 무언가를 배우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여운이 깊은 소설이다.



"그립다라. 그립다는 건 좋은 일이야.

아주 중요한 일이지."
"정말 그럴까, 친구?"
"중요한 일이야. 아주 중요해. 그리워한다는 것 말이야. 그리워하면 기억하게 되거든. 우리가 어른이 되면 세상이 지금보다 나아지리라는 걸 말이야. 우리는 그 기억을 가지고 좋은 세상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는 거지. 아주 중요하지.

(우리가 고아였을 때, 370~371쪽)

매거진의 이전글 팀워크의 배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