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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3. 2017

두번째 사랑

두번째 사랑 속에서 찾은 참된 행복


소피 "우린 아주 행복해요, 정말이에요."
지하 "날 필요로 하면서?"
-영화 <두번째 사랑>


불법 체류자로 등장하는 김지하[하정우]는 (왠지 김지하 시인이 생각났다) 급하게 돈을 모아야 할 사정이 있다.


영화 두번째 사랑 스틸컷


여자 친구를 미국으로 데려와 함께 살기로 했기 때문.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해 생계를 꾸려나가지만 - 여자 친구를 미국으로 데려와 안정적으로 생활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그의 수입.


고민 끝에 지하는 정자를 정자 은행에 제공하고 돈을 받으려 했으나 - 실패한다. 불법 체류자였기 때문이다.


영화 두번째 사랑 스틸컷


그런 지하를 유심히 지켜보는 여자가 있다. 그녀의 이름은 소피. 그녀는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유부녀다. 그러나 남편의 정자가 건강하지 못해서 아이를 가지는 게 어렵다는 말을 듣는다. 남편은 오랫동안 아이가 생기지 않자 - 우울해하고 자살까지 시도하는 상태. 그를 너무나 사랑하는 그녀는 정자 은행을 찾아가지만 남편의 동의 없이 시술 받을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낙담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 그에게 정자 은행에서 거절 당하고 쫓겨 나는 지하가 눈에 들어온다. 그녀는 지하를 찾아가 돈을 줄테니 자신과 성관계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임신이 되면 돈을 더 주겠다고 말하면서 말이다.


영화 두번째 사랑 스틸컷

지하는 당황해하지만 돈 때문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 들인다.


영화 두번째 사랑 스틸컷


그리고 두 사람은 정사를 나누다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영화 두번째 사랑 스틸컷


그래서 어떻게 되냐고? 소피의 남편이 이 사실을 모두 알게 되고 - 그녀에게 아이를 지울 것을 요구한다. 그러면 모두 없었던 일로 해주겠다고 하면서.
 
그리고 지하를 경찰에 신고해 강제로 한국에 돌아가게 만든다.


소피는 아이를 지우지 않고 낳는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 그녀는 행복한 얼굴로 곧 태어날 둘째의 옷을 뜨개질한다. 사실 그 둘째 아이가 누구의 아이였는지는 끝까지 나오지 않는다. 아마도 지하의 아이일 것이다. 하지만 감독은 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는다.
 
왜 그런걸까? 난 이 부분에 대해 생각해봤다.

영화 두번째 사랑 스틸컷


그녀는 마지막 장면에서 관객을 바라보듯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의미심장한 미소를 던진다. 그렇다. 누구의 아이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던 거다.
 
그녀는 '엄마' 되기를 원했고, 싱글 맘으로서의 삶을 선택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던 것이라는  깨달은 것처럼 보였다.  
 
 모호한 결말이긴 했지만, 부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다른 남자와 잠자리를 가졌던 여자가   남자와의 사랑에 눈을 뜨고,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게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유난히 '핏줄'에 집착하는 한국인들은 정자를 기증 받거나, 대리모를 통해서라도 대를 이으려고 한다. 국내 입양보다도 해외 입양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 아니, 비단 한국인 뿐만이 아닐 것이다. 자신의 핏줄에 대한 애착. 그것은 어쩌면 본능인지도 모른다. 시작은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었지만 - 결과적으로 그녀는 남편을 택하지 않고 아이를 택한다.


그녀가 지하와 헤어지지 않았던 것은 - 그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를 사랑했다면 - 그를 택했을 수도 있었다. 남편과 헤어지고 아이를 낳고, 그와 결혼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남편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그를 택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그에 대한 그녀의 사랑은 어쩌면 사랑이라기보다는 '아이'를 잉태하게 해준 남자에 대한 본능적인 이끌림에 더 가까울 것이다.
 
결혼한 여자에게 완벽한 가정이란 - 자신의 집과, 가족을 부양할 경제적 능력을 갖춘 자신에게 자상한 남편과 아이일 것이다. 여자는 결혼 전에 이 부분을 고려할 수 밖에 없다. 그것은 여성이 속물적이라서가 아니다. 여자에겐 '2세'를 낳아 키워야 한다는 것에 대한 본능이 있다. 자신의 아이를 양육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조건을 찾는 것이지, 남자의 조건을 보는 것이 아닌 것이다.


동물들이 짝짓기를 할 때도 먹이를 잘 물어다주고 강한 수컷을 찾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는 동물적 본능에 가깝다. (이런 이야기를 심리학 책에서 읽은 적도 있으니 아마 그리 틀린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녀가 남편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은 - 남편의 그런 이상적인 조건이 필요하다는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남자를 파트너로 골랐다. 그녀는 억지로라도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무리수를 둔다. 그리고 아이를 가지는데 성공하지만 - 남편에게 이미 자신의 자식이 아닌 자식은 인정할 수도 인정해서도 안 되는 존재였다.
 
그러나 아이를 뱃속에서 직접 키우는  - 여자에게 아이에 대한 애착은 거의 본능에 가까운 것이다. 그녀는 아이를 지키기 위해 애쓰고. 홀로 아이를 키우는 삶을 선택한다. 세상의 잣대로 보면 그녀는 바람나서 이혼 당하고 홀로 사생아를 키우는 불쌍하고 딱한 여자, 비난받아 마땅할 여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의 관점에서 그녀의 삶을 바라보면 - 그녀는 원하지도 않는 교회에 나가 기도를 하고, 남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애써야 하는 삶에서 탈피한 것일 뿐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녀는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알게 되었고 그 속에서 행복해보인다.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런 삶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할 수 있다는 것. 그 행복을 스스로 선택하고 쟁취했다는 것. 그게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고, 이 영화가 말하고자 했던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누군가가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리라고 기대하고 그 기대 때문에 힘들여 노력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행복해지기 위해 애써야 하고, 그렇게 찾은 행복만이 참된 것이라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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