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의 기린

by 기록 생활자

나는 어릴 때부터 동물 중에 기린을 좋아했다. 무엇 때문이었는지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냥 기린이 좋았다. 어떤 시인은 기린에 대해 모가지가 길어서 슬픈 짐승이라고 얘기했지만, 목이 길든 말든 기린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 거 같아 보였다.


기린은 그냥 기린으로 태어났을 뿐이니까. 남과 다르다는 것이 슬픈 일이라면 우리는 모두 슬픈 존재일 것이다. 우리는 모두 다 다르니까.


갇힌 동물을 볼 때 어느 순간 죄책감이 들어 동물원에 가기가 꺼려지던 순간에도 기린이 보고 싶어질 때가 있었다.


어느날처럼 무심히 풀을 씹고 있을 거 같은 기린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면 그 무심함이 좋았던 거 같기도 하다. 언제든 동물원에 가면 풀을 씹고 있는 기린을 볼 수 있다. 무엇이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의 모습을 기린에게서 본다. 느긋하게 흐르는 기린의 시간을 본다.


무심하게 풀을 씹고 가끔은 하품을 하고 느리게 걷는 기린을.


"너는 오늘도 그 자리에서 풀을 씹고 있겠지, 무심한 얼굴로."


언제나 항상 그 자리에 있는 사람 같은 동물이다. 내게 기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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