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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3. 2016

경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에서의 낮과 밤

이 영화의 주된 키워드는 '죽음'인 것 같다. 이 영화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를 묶어주는 것이 바로 누군가의 '죽음'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베이징대 교수 최현(박해일)으로 선배의 장례식장에 갔다가 거기서 갑자기 7년 전 경주의 어느 찻집에서 보았던 '춘화'를 다시 보기 위해 경주로 향한다.

경주는 왕릉이 있는 공간이다. 이 영화 속에서 경주에 있는 오래된 무덤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공간이 경주임을 시사한다.


영화 경주여행에도 등장했던 능 위에 어린아이들이 올라가고 그런 장면이 나왔던 게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 속에서는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아이들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해 쓰여진 것 같다.

죽음에 대한 인식이 없는 아이들에게 능은 그냥 큰 동산일 따름일 것이다. 그래서 올라가서 노는 것이겠지. 이 영화 속에서 경주는 죽음을 인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공간으로  기능한다.


영화 경주
"경주 와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윤희)

최현은 중국인 부인이 있으나 그녀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다. (물론 이런 사실은 이 영화 말미에 등장한다) 그는 경주로 후배 여정(윤진서)을 부른다.  


영화 경주

그녀는 그를 만나러 서울에서 경주까지 오지만 두 시간 밖에 시간적인 여유가 없다고 말한다. 두 사람은 함께 밥을 먹으러 가던 길에 길거리에서 운세를 보게 된다. 여정은 국밥을 먹던 도중 최현이 점쟁이가 무슨 말을 했느냐고 묻자 "앞으로 나한테 아이가 없을 거래"라고 말하면서 운다.

국밥을 먹다 밖으로 나온 여정은 서울로 가야겠다고 말하고, 앉아서 기차를 기다리던 중에 과거 최현의 집에서 술에 취해 하룻밤 잠자리를 함께 했을 때 그의 아이를 가졌었다고 말한다. 최현은 왜 얘기하지 않았느냐고 묻고, 여정은 "선배는 책임 같은 거 잘 안 지잖아."라는 식으로 말하곤 서울로 간다.



아마도 그녀는 최현의 아이를 가졌을 때 낙태를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 이후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임신이 잘 안 되는 상황이었을 테고, 이로 인해 최현에게 불만을 가졌을 것이다. 알고 보니 여정의 남편은 의처증이 있었고 기혼녀인 여정은 과거 자신을 임신시켰던 그를 만나는 게 불편했던 것이다. 그래서 황급히 자리를 떠난다.


영화 경주

최현은 여정과 헤어진 후 처음 들러 황차를 마셨던 찻집을 다시 찾아간다. 춘화에 대해 찻집 주인인 윤희(신민아)에게 다시 물어보지만 그녀는 자신이 이 찻집을 인수했을 때 남자들이 지저분한 농담을 던지곤 해 춘화가 있던 자리를 도배했다고 말한다. 그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그 그림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느냐"라는 소리만 듣는다.


그녀의 찻집에 있다가 계모임에도 참석하게 되고, 그녀와 능에도 가게 된다. 윤희는 능 위에 누워 나중에 죽으면 여기로 들어가고 싶다고 말한다. 다시 태어나고 싶다는 바람이었을까? 최현에게 호감을 갖게 된 윤희는 그를 자신의 집에서 하룻밤 묵게 해준다.


영화 경주

알고 보니 윤희의 남편은 자살했고, 자살하기 전 찻주전자와 찻잔이 그려진 그림을 거실로 옮겨 놓고 죽었다. 그녀는 남편이 떠난 후 밤낮없이 술만 마셨는데 망월사에 있던 스님이 차를 마셔보면 어떻겠느냐고 권해 차를 마시게 되었고 마시다 보니 찻집까지 열게 되었노라고 최현에게 털어놓는다. 그리고 최현은 그날 밤 윤희의 집에서 중국인 부인이 보낸 음성 메시지와 그녀가 불러주는 모리화를 듣는다. 아마도 그의 부인은 그 몰래 바람을 피웠던 것 같다.

영화 말미에 윤희에게 지저분한 농담을 던졌던 일행이 최현 일행이었음이 드러난다. 두 사람은 그날 처음 만났다. 그러나 서로를 기억하지 못한다. 왜 하필 그는 춘화가 보고 싶었을까?

영화 초반에 그가 참석했던 장례식장에서 죽은 선배의 부인은 젊은 여자로 부인에게 다른 남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선배가 2년간 부인과 말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지인에게 듣게 된다. 그리고 춘화를 봐야겠다는 생각에 경주를 오게 된다. 영화 말미에 드러나는 춘화에 얽힌 일행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그가 춘화를 보고 싶어 했던 것은 '낭만적인 사랑'을 찾고 싶은 마음이 있어서라는 것을 관객은 알게 된다.

새로운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은 마음, "경주 와서는 능을 보지 않고 살기 힘들어요"라는 윤희의 말처럼 죽음을 마주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공간이 경주이다. 죽음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갈 수 없는 공간에서 그가 찾고자 했던 것은 전부를 다 내주어도, 알몸으로 상대방 앞에 서 있어도 부끄럽지 않은 '사랑' 그 자체였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배신 당하고 죽은 선배의 장례식장에 조문을 갔다가 불현듯 경주에서 본 춘화도가 떠올랐던 것도 그래서가 아닐까?

차를 마시는 시간은 다른 시간 속에 머무르는 시간이다. 그래서 아마 윤희는 찻집을 열게 되었을 것이다. 그녀는 죽은 남편을 잊지 못했는지 하얀색 옷만 입는다. 상복을 연상시키는 흰 옷을 입는 것은 어떻게 보면 아직 죽은 남편을 마음 속에서 잊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녀는 찻집을 열어 차를 팔며 살아간다. 사랑하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잠시 잊고 다른 시간 속에 머물고 싶어서. 다가오는 남자(경찰)가 있지만 그를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는 그녀에게 그저 '좋은 사람'일 뿐이다.

그녀가 춘화도를 덮어버렸던 것은 남편이 죽음으로 자신을 배신한 것으로 인해 사랑을 믿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런 그녀가 최현을 만나 춘화도를 덮어버렸던 것을 뜯는다는 것은 그녀도 최현처럼 다시 새로운 사랑을 꿈꾸게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그림에 등장하는 글귀인 '사람들 흩어진 후에 초승달이 뜨고 하늘은 물처럼 맑다'는 사람들이 사라진 후에도 초승달은 뜨는 것을 의미한다. 변하지 않는 어떤 것. 그녀의 남편은 그런 것을 그리워했던 것 같다.


그러나 하늘을 물처럼 맑게 바라보는 것도 결국 고요해진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고요하지 못하면 하늘이 물처럼 맑다고 느끼지 못할 것이다. 차를 우리는 시간도 결국 찌꺼기나 불순물을 걸러내는 시간이다. 우려내고 맑아진 것만을 취한다.


그러나 최현은 세차를 하기 전의 차를 마신다. 다 씻어내지 못한 것을 취하는 것은 그의 마음이 그토록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로 인해 어지러웠기 때문은 아닐까? 하지만 사람들이 흩어져도 변하지 않고 달이 뜨는 것처럼 하루가 흘러 내일로 닿아 다시 새로운 날이 찾아오는 것처럼, 늘 새로운 날이 주어지니 그 속에 어쩌면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 또는 희망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장률 감독은 이 영화 속에서 그런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달도 차면 기울듯이, 누군가 나를 떠나더라도(그것이 죽음으로 인한 것이든 서로의 인연이 다해 헤어짐으로 인한 것이든) 다음날 해가 뜨듯이. 삶은 계속 된다는 것.

장률 감독의 영화답게 시간은 느릿느릿 흘러갔고, 그 시간 속에서 점처럼 이어져 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선이 능처럼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마음 속으로 천천히 떨어지는 듯한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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