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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23. 2016

카페 뤼미에르

관계의 평행선 유지하기


요코는 프리랜서 작가로 가끔 하지메의 서점을 찾는다. (헌책방 느낌이 물씬 나는 곳) 그녀는 일 때문에 찾은 대만에서 연애를 하게 되고, 그곳에서 임신을 해서 돌아온다. 대만 여행 후 오랜만에 찾아간 집에서 (그녀는 부모님과 따로 떨어져 산다) 요코는 어머니에게 임신 사실을 털어놓는다.
 
요코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아준 어머니는 아니었다. 그래서일까? 요코의 고백에 어머니는 당황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배가 고프다는 딸에게 밥을 차려줄 뿐. 요코는 아이를  낳아 혼자 키우겠다고 말한다. 남자 친구와는 결혼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너무나 덤덤한 목소리로. 요코의 부모는 싱글맘이되겠다는 딸이 걱정 되어서 그녀의 집으로 찾아오지만,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감자조림만 해주고 돌아간다.


그녀가 너무나 단호하게 혼자서도 잘 키울 수 있다고 걱정할 거 없다는 식으로 말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녀는 어머니가 해준 감자조림을 맛있게 먹는다. 감자조림을 요코가 너무나 맛있게 먹어서 한 번 먹어보고 싶어질 정도였다. 일본식 감자조림에는 돼지고기나 쇠고기가 들어가는 것 같던데... 어떤 맛일지 궁금하다.


영화 카페 뤼미에르

요코는 하지메에게도 임신 사실을 털어 놓는다.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임신을 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태도에 하지메는 좀 놀라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메에게는 요코가 있는 일상, 그 자체가 이미 소중한 것이 됐기 때문이다.


하지메는 요코를 좋아하지만, 그 사실을 요코에게 말하지 않는다.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진 여자에게 자신의 마음을 말하기란 아무래도 어려운 일일 것이다. 하지메는 그저 너무 가깝지도, 멀지도 않은 자리에서 요코를 바라볼 뿐이다. (전철 안에서 곤히 잠든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는 그의 입가에 피어난 미소를 통해 그가 그녀를 친구 이상으로 생각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의 사이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며 각자의 행선지를 향해 간다.


영화 카페 뤼미에르

부모와 자식 사이에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고 - 아무리 좋아해도 말할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아니, 어쩌면 좋아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는 마음일지도 모른다. 하지메는 그대로도 괜찮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대로도 행복해 보인다. 요코 역시 그대로도 괜찮아 보인다. 전철을 타고 어디론가 향해갈 때처럼 삶은 조금씩 흔들리지만, 여느날과 다름 없이 평온하게 흘러간다.
 
"좋아해도 말하지 않으면 어때"
"임신했어도 결혼하지 않으면 어때"
 
좋아하는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싫은 것을 억지로 하면서까지 - 관계를 유지해나가지 않겠다는 태도. 그것은 쿨한 것일까? 어떠한 관계 속에서도 질척거리지 않는 요코는 그래서 더 위태로워보였지만, 이것도 그저 나의 착각일지도 모를 일.  함께여도, 가족이어도 결국 자신의 인생은 홀로 살아가는 것. 스스로 걷지 않겠다 결심하고 돌아선 그녀의 모습은 분명 용기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녀에겐 그저 너무나도 당연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그저 홀로 서는 여자의 이야기였다.


서로의 틈과 간격을 억지로 채워넣지 않으며 멀리서 바라보는. 남녀의 이야기.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면 좋을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모든 관계에서 담백함을 유지하기란 어려운 일이겠지만. 나를 둘러싼 많은 사람들, 내가 관계하고 있는 일들과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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