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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Nov 30. 2016

여자, 정혜

상처와 마주하는 법

요리 프로그램은 즐겨 보지만, 실제 먹는 건 주로 라면이고 김치는 택배로 받아 먹는다. 이유는 간단하다. 귀찮기 때문이다. 정혜는 쉬는 날 주로 드러누워 있거나, TV 홈쇼핑 방송을 틀어놓고 보거나 한다. 청소기도 돌리기 귀찮아서 머리카락은 그냥 손으로 슬슬 쓸어 담아 치운다. 그렇게 귀찮기는 하지만, 무미건조하게 흘러가는 일상이 따분하고 심심한 정혜는, 아니 사실 외로웠던 그녀는 동물병원에서 고양이 한마리를 데려온다. 그러나, 고양이 마저도 정혜를 그다지 따르지 않는다.
 

영화 여자, 정혜

그래도 자신에게도 보살펴야  존재가 생긴 것에 기뻤던  같은 정혜는, 집에도 일찍 들어가고 낯을 가리는 고양이에게 다가가기 위해 고양이에게  먹이도 살뜰히 챙긴다.
 
 키우는 앞집 여자는 일요일 모닝콜 소리에 잠이 깨어 정혜를 나무란다.  규칙적인 시간에 일어나야하는 정혜에게, 알람은 필요한 소리였을 것이다. 하지만 정혜 역시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당신네 개도 시끄러워. 나도  짖는 소리를 원한  없어."
 
하지만 정혜는 그냥 아무  없이 미안하다고 말하고 불필요한 언쟁을 피한다. 헤어진 연인이 불쑥 전화를 걸어와 점심을 함께 하자고 해도 정혜는 그냥 받아들인다.
 
사실  남자에게 먼저 헤어지자고 말한  정혜다.
 
 남자친구는  튀겨주는 할배네 가게 햄버거를 먹다가  결혼한다고 말하고 정혜는 놀라서 레가 들린다. 그녀의  남자친구는 그때  그랬냐고 묻는다. 헤어짐의 이유를 묻는 것이다. 정혜는 대답해주지 않는다.
 
정혜는  남자와 잠자리를 가진  헤어졌다. 정혜에게  남자는 처음은 아니었다. 때문에 남자는 다른 남자와의 첫경험을 물었고, 정혜는 대답하기 싫어하지만 그는 집요하게 캐묻는다. 상처 받은 정혜는 기억하기 싫었던 유년시절의 상처를 떠올리고  남자를 떠난다.
 
정혜는 속눈썹이 떨어지면 소원을 빌면서 버리는 여자다. 정혜의 속눈썹은 자주 떨어진다.  머뭇거리는 정혜는 사랑도 놓치고, 택시도 잡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그리고 그게 당연하다는 .  그래왔던 일인냥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받아들인다. 옆에서 오는 담배 연기가 좋다고 말할 정도로.
 
정혜에게 사랑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신혼 여행지에서 남편 몰래 도망나온 정혜는이후에도 남자를 만나 연애를 해도 좋은 만남을 계속 유지하지 못한다.

정혜는 식물 같은 여자다. 베란다 한쪽 구석, 햇볕  드는 곳에 있지만 그녀의 삶은 물을   외에는 별로 들여다보지 않게 되는.  화분의 꽃처럼 향기롭지만, 가까이  냄새를 맡지 않으면  향기를 짐작도   없는. 무관심과 소외의  어느 지점에 있었다.
 
그녀는 자주 냉장고에서 생수병을 꺼내 물을 마신다. 그녀의 손엔 항상 물이 들려 있다. 그녀는 무엇에 목이 말랐던 것일까? 무엇이 그녀를 목마르게 했을까?
 

여자, 정혜

그런 그녀가 변한다. 고양이를 키우고, 관심을 쏟고 애정을 쏟을 상대를 만나면서부터. 정혜는 요리 솜씨를 발휘해 맛난 음식을 차려내고, 우체국으로 빠른 등기로 자신의 원고를 부치러 오는 남자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는 고양이를 보러 오겠다고 하고 오지 않는다.
 
정혜는 상처 받는 것에 익숙하다. 어린시절 겪었던 성폭행은 그녀를 남자를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술집에서 우연히 만난 남자와 여관에 가서 술을 마시고, 과도로 손목을 긋고 싶었다고 말한 뒤, 누군가와 통화를 끝내고 서럽게 우는 남자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마치, 상처 받은 자기 자신의 마음을 어루만지듯이. 몇번이고 손목을 긋고 싶었던 과거의 자기 자신을 바라보듯이.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초등학생이 앞으로 재미없게 살겠다는 말을 했다는 기사를 접하고 굉장히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났다. 밝고 구김살 없던 한 초등학생 여자아이에게 일어난 사건은 그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그 아이는 알고 있었다. 아니 느끼고 있었다. 이후의 삶이 이전의 삶과 같을 수 없다는 것을.
 
빗에 뭉쳐 있는 머리카락을 한올 한올 떼어내다가, 정혜는 병원에 누워 있던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의 머리를 빗겨주던 때의 일을 생각하던 정혜는 고양이를 길에 버리고 돌아선다.
 
정혜가 고양이를 버린 이유는 아마도, 고양이가 언제까지고 자신의 곁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언젠가는 죽음으로써 자신을 떠날 고양이. 누군가의 빈자리를 고양이로 채우고자 했던 정혜는 고양이마저 버리고 혼자가 되기로 마음 먹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어차피 누구나 혼자니까.
 
누구나 외로우니까. 그러니까 그냥 그것을 받아들이자고 다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고양이를 버린 사실을 잊기 위해서인듯, 정혜는 집과 아주 멀리 떨어진 장소에 고양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정혜는 자신을 성폭행한 남자(고모부)를 만난다. 벤치에 한참을 말없이 앉아 있는 두 사람. 정혜는 가방에서 술집에서 만난 남자와 여관에서 술을 마실 때 챙겨왔던 과도를 꺼내지만 그를 찌르지는 못한다.


영화 여자, 정혜

정혜는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그 칼을 도로 쥐고 가방을 들고 돌아선다. 과도가 땅에 떨어져 칼에 손을 베이고 마는 정혜. 정혜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으며 운다.
 
정혜는 알았을 것이다. 자신은 결코 그 남자를 찌를 수 없다는 것을. 자신을 찌른 것은 그 남자인데,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건 결국 자신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하여 그를 찌른다 해도 그 상처로부터는 결코 도망갈 수 없다는 것을.
 
그녀는 서럽게 눈물을 흘리지만, 그 소리는 관객에게 전달되지 않는다. 그 소리 없는 울음은 몇분간 지속된다. 숨죽여 울며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정혜의 마음이, 그 삶의 무게가 느껴지는 장면이었다.
 
다음날 정혜는 다시, 고양이를 찾으러 가지만, 고양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고양이는 사라졌지만, 그곳에서 정혜는 집으로 저녁 초대를 했던 남자를 다시 만난다.
 
남자는 그날 저녁 초대에 응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사과하며 그때 가지 못했던 이유를 설명한다. 남자의 말을 듣고 정혜는 긍정의 대답도 부정의 대답도 하지 않는다. 영화는 망설이는 듯한, 그러면서도 조금은 두렵고, 설레이는 듯한 정혜의 얼굴을 클로즈업으로 보여주며 끝이 난다.
 
상처는 극복되어지는 것이 아니다. 잊혀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마음 한 구석에 뱀처럼 똬리를 틀고 앉아 우리 마음을 슬픔으로 물들이기도 하고, 갉아먹기도 한다. 상처는 애써 잊으려 한다고 해서, 도망가려 한다고 해서 잊혀지는 것도 도망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수록 오히려 더 깊게 상처 받을 뿐이다.
 
상처가 또 다른 상처로 남는 것이다. 상처는 자신에게 그러한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을 때, 상처가 아닌 것이 되는 순간이 온다.
 
그 속에 깊이 빠지지 않고, 그것을 그냥 자신에게 일어난 사고라고 생각하기가 정혜는 무척 힘이 들었을 것이다. 거기서 비롯된 상처는 정혜를 한없이 외롭게 만들고 다시 사랑할 수 없게 발목을 붙잡는다.
 
정혜는 계속 아파하고, 슬퍼하면서 인생을 살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사랑으로 그 상처를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아닌 것. 잊혀지는 것으로 만들 것인가를 선택해야 하는 그 갈림길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혜가 그 남자를 다시 만났을 때 말이다.
 
정혜는 두렵지만, 무섭지만, 다시 한번 시작해보고 싶다고, 다시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다고. 내가 다시 시작할 수 있을까? 궁금하다는 그런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정혜는 새로운 사랑을 시작했을지도 모르고,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전과는 분명 다른 삶을 살았을 것이다. 식물의 삶을 벗어나 살게 되었을 것이라 믿는다.
 

영화 여자, 정혜

정혜가 많이 행복해지기를, 정혜와 같은 상처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이 영화를 보고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더 이상 그런 끔찍한 범죄가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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