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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05. 2016

먼지 아이

먼지처럼 따라다니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

9분 49초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애니메이션이다. 이 영화에는 독신으로 추정되는 '혼자 사는 여성'이 등장한다. 그녀는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자마자 길게 늘어뜨린 머리를 올려 묶는다. 그리고 집안 구석 구석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이 영화 보다가 급 청소가 하고 싶어지기도 했다.)


영화 먼지 아이


그녀는 침대 구석에 놓인 성냥갑으로 추정되는 작은 상자 위에 앉아 있는 먼지 아이를 발견한다. 그녀는 상자 속으로 먼지 아이가 들어가자 상자를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넣는다.


영화 먼지 아이


그녀는 시간을 들여 집안 구석구석을 꼼꼼하게 쓸고 닦는다.


영화 먼지 아이


화장대도 꼼꼼하게 치운다.


영화 먼지 아이

그리고 샤워를 하고 커피를 한 잔 마시려는데 그 속에 들어앉아 있는 먼지 아이를 다시 발견한다. 그녀는 다시 밥을 먹으려고 밥그릇을 드는데 거기 먼지 아이가 앉아 밥알갱이를 오물오물 씹어 먹고 있다.
 
그녀는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그 밥을 놔두고 다른 밥을 먹는다. 먼지 아이와 나란히.
 
독신 여성이 느끼는 외로움, 혼자가 익숙한 삶이 이 영화 속에 그녀의 일상을 통해 드러난다. 외출을 하지 않는 것을 보면 일요일쯤 되는 것이리라. 그녀는 늦잠을 잤던 것으로 보이고 정돈되지 않은 방을 청소하기 시작한다.
 
닦아도 닦아도 먼지는 계속 따라다닌다. 그리고 먼지는 밥 알갱이 위에 앉아 우리의 입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녀는 먼지를 떼어내는 데 집중한다. 하지만 나중에는 먼지를 인정한다. 그냥 그대로 두고 밥을 먹는다. 소소한 일상을 덤덤하게 다룬 영화지만 보면서 여러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예전에 읽었던 먼지라는 책도 생각났다. 먼지는 지구에 이로운 일도 한다. '먼지는 작지만, 결코 작지 않고 먼지가 하는 일 역시 결코 작지 않음'을 그 책을 읽으며 느꼈던 기억이 난다.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먼지는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은 기억에 관한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먼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마음 한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기억에 관한 이야기. 떼어내려 해도 묻어나는 먼지처럼, 묻어나는 기억들.
 
우리는 어쩌면 그 기억들과 함께 잠을 자고 밥을 먹으며 숨을 쉬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먼지처럼 켜켜이 쌓인 그 기억들로 이루어진 존재가 어쩌면 '인간'인지도 모르고. 소소한 일상이 그려져 있지만 재미있게 봤다.
 
작지만 가슴에 남는 것이 큰 영화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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