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May 04. 2018

토요일에 눈이 내리면

우리가 소설을 읽는 이유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왜 이 작가를 몰랐을까 생각하면서 다른 책들도 찾아서 읽어봐야지 생각했다. 그리고 온라인 서점에서 검색해본 결과 이 책 한 권만 검색됐다. 이 책이 아마도 국내에 출간된 그녀의 첫 책인 것 같다. 여러 문학지나 지면에 발표했던 단편소설들을 묶어낸 책인 것 같다.

러시아 부커상 후보작으로 두 번이나 올라갔을 정도로 러시아에서는 인지도가 높으며 사랑받는 작가인 거 같다.

이 책에도 러시아에서 가장 유명한 작가로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펼치면 가장 먼저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한 <두 개의 성>은 (한국어판에만 수록된 작품이라고 한다) 러시아 채널 1에서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고 한다.

이 작품을 인상 깊게 읽었는데 한국어판에만 수록되었다니 왠지 한국인이라는 사실이 기분 좋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두 개의 성 

두 개의 성은 아빠와 아이가 번갈아가며 화자로 등장한다. 아이가 아빠에게 편지를 보내고 아빠가 아이에게 속마음을 혼잣말로 말하는 형태로 전개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아이는 성이 두 개이다. 부부가 이혼을 했고 아이의 엄마가 재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실은 아이의 엄마가 남편과 신혼 초 간 여행에서 하룻밤 실수로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고 남편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헤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곧장 헤어지지 못했다. 아내가 남편이 진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출산 후 쇠약해져 병원에 입원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편은 곧장 아내를 떠날 수 없는 처지가 되어 갓난아기를 돌보다가 정이 들어버린다.

그래서 아내를 경멸하면서도 헤어지지 않고 아이에게 아버지 노릇을 하며 살아가게 된다. 진실로 아이에게 상처를 주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아내는 자신을 경멸하면서도 아이를 사랑해 자신과 함께 사는 남편을 더는 견딜 수 없어 그를 떠난다.

그건 그녀가 그 남자의 두 번째 아이를 가졌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녀는 그를 떠나는 날, 수천 분의 일의 확률로 첫아이를 가지게 되었던 터라 아이를 지울 수 없었다고 그에게 털어놓는다. 그녀는 임신이 어려운 몸 상태였던 것이다.

그녀는 떠나면서 아이에게 친부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진실을 말하겠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가끔 아이를 만나게 해주겠다고.

그리고  몇 년 후 남자는 방학을 맞은 아이를 오랜만에 만나게 된다. 아이와 함께할 순간을 기다리고 고대하며 세워둔 여러 계획들을 실행할 생각에 부풀어 있었다. 아이를 만나 집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아이의 친부가 죽었다는 전보가 아내로부터 날아온다.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 당하고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자신보다 작고 어린 아기를 돌보며 치유하게 되지만 결국 그것은 허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진실과 거짓말에 관한 이야기였다. 선의의 거짓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입힐 수 있고, 또한 진실에 의해서도 상처받을 수 있는 것이 삶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었다.

결국 남자는 자신의 상처받은 마음을 아이를 사랑하는 것으로 치유하려고 했고 또 위로받고자 했다. 어쩌면 믿음이 배신을 당했지만 그간의 믿음을 아이를 통해 보상받으려고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건 모두를 상처 입히는 결과로 돌아온다.

토요일에 눈이 내리면 

이 소설의 주인공은 15살의 소녀이다. 엄마는 병으로 돌아가셨고 아빠와 오빠와 살았는데, 아빠에게 여자친구가 생긴다. 아빠는 그 여자친구와 살겠다며 집을 나간다. 오빠는 대학생이라 바쁘고 아직 보살핌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소녀는 가족의 무관심 속에서 외로움을 느낀다.

 소녀는 이웃 아저씨가 장난을 치는 바람에 한 남성으로부터 잘못 걸린 전화를 받고 그를 만난다. 그는 극장에서 우연히 만난 예쁜 아가씨를 만나고 싶어 했지만 15살 아이가 나오자 놀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금방 친해지게 된다. 운명적 사랑 같은 것을 꿈꿨던 소녀는 그를 좋아하게 된다. 그는 소녀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저씨이지만 약간 엉뚱한 소녀가 싫지 않아 가끔 이야기를 나누러 온다.

소녀도 그가 싫지 않았기에 그에게 말동무 노릇을 해준다. 그러다 소녀는 병에 걸리게 된다. 어떤 병인지는 정확하게 나오지 않지만 심장 쪽에 문제가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어 나온다. 소녀는 죽음의 공포를 느낀다.

이 소설 속에서 눈은 예기치 못한 어떤 것을 상징하는 것 같다. 이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우산에 대한 다음과 같은 묘사를 보면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의 손에는 사랑스럽고 좋은 물건인 우산이 들려있었다. 인간이 발명한 물건 중 가장 무해한 물건인 …."(102쪽) 비나 눈은 예기치 못하게 내린다. 그것을 막을 수 있게 해주는 것이 우산이다. 토요일은 휴일이다. 토요일에 눈이 내린다는 건 가장 즐겁고 좋은 날 예기치 못한 사건을 만나게 된다는 것일 것이다. 그것은 가슴 설레는 사랑일 수도 있지만, 죽음과 같은 사고나 사건일 수도 있다.

예측이 불가능한 일들의 연속이 삶이라는 것을 소녀는 깨닫는다. 잘못 걸린 전화로 만나게 된 사람도 그랬고, 아버지의 재혼도 그랬고, 질병에 걸린 것도 모두 예측이 불가능했던 일들이었다. 예기치 못하게 찾아오고 일어난 일들이었다. 그리고 소녀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받아들이며 모든 날들은 하루 밖에 없는 소중하고 특별한 날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괴짜 알투호프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엇갈리며 멀어진 인연에 관한 이야기였다. 괴짜 알투호프는 주인공을 좋아했고, 주인공도 괴짜 알투호프를 좋아했지만 서로를 이해하지는 못한다.


토요일마다 

부모가 이혼을 하고 혼자 살게 된 예프카가 주인공이다. 예프카는 시립 교향악단 산하의 재즈 교향악단에서 연주를 한다. 토요일마다 리허설을 하러 가며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하고, 누군가와 함께 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사실은 혼자다. 고독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행복한 척하지만 사실은 버림받았다고 느끼며 자신을 이 세상에 살아있지 않은 사람으로 느낀다.

초록 대문 너머의 집 

엄마 때문에 초록 대문 집에서 피아노 교습을 받는 여자아이가 주인공이다. 이 아이는 교습을 받고 돌아오는 길에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따는 피아노 선생님 남편에게 포도를 얻어먹는다. 내키지도 않는 피아노 교습을 받던 어느 날 선생님이 자리를 비운 사이 피아노 위에 올려진 립스틱을 보게 된다.

여러 개의 립스틱 중 한 개를 주머니에 넣는다. 훔친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여러 개 중에 한 개를 가져왔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죄라는 것에 대한 인식이 없는 어린아이였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선악 구분이 없다. 도덕성은 교육을 통해 획득할 수 있고, 선악의 구분 역시 교육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이다. 아이는 죄의식 없이 립스틱을 훔치고 그것을 또래 아이들 속에서 자신이 원했던 다른 물건으로 바꾼다. 그리고 한 개를 더 훔치려다 발각된다.  포도를 얻어먹은 일 역시 포도를 훔친 것으로 간주되고 (달라고 해서 얻은 것으로) 아이는 억울함을 느낀다.

 피아노 선생님은 한 백작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그에게 도벽이 있었다고 이야기하며 도벽은 병이라고 얘기한다. 립스틱 값은 물어주게 되고 아이는 피아노 교습을 그만두게 된다. 아이는 이전에는 몰랐던 죄의식을 알게 되고 갖게 된다. 그리고 혼자 있게 되는 순간에 대한 공포를 느끼게 된다. 무언가를 훔치는 일이 또 일어나게 될까 봐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단 일 분이라도 남의 집에 홀로 남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내 안에서 비밀스러운 백작의 병이 깨어날까 봐 두려웠다. 베토벤의 우아한 '엘리제를 위하여'를 멋지게 연주하는, 부드럽고 게으른 여자가 나에게 무서운 힘을 가르쳐주었다. (238쪽)


모든 게 같은 꿈이로구나!

열다섯 살의 아이들이 연극을 준비하며 겪는 일을 그린 작품이다. 연극에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 않았던 문제 학생 (이 소설에서는 이륙 중인 상태로 표현된다) 센카가 연극에 몰입하게 되는 과정과 연극이나 다른 문학작품을 통해 왜곡되는 역사의식의 문제점을 깨달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물리 수업시간의 심령 비행 

유체이탈을 경험하는 학생의 이야기이다. 수업을 재미있게 잘 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 물리 수업 선생님에게 주인공은 혼이 난다. 그런데 그 순간 예기치 못하게 유체이탈을 경험하게 된다. 다른 친구들은 그가 선생님에게 혼이 날 때 당당히 선생님을 무시한 것에 경외감을 표시한다. 물리 선생님은 학생이 야단을 맞을 때조차 자신을 무시했다는 사실에 큰 상처를 입는다. 주인공은 '우연히 생긴 일이었다'라고 말하며 죄송하다고 말한다.

물리 선생님은 주인공에게 속마음을 털어놓으며 아내가 유방암에 걸렸고 혼자 갓난아기인 쌍둥이를 돌보느라 힘들다고 얘기한다. 주인공은 그런 선생님에게 어떤 연민을 느낀다.

그리고 그에게 민간요법 같은 것을 가르쳐준다.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으며 메모를 하는 선생님의 모습을 보며 그가 좋은 남편인 것 같다고 느낀다.

주인공은 선생님과 자신이 비슷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길 잃은 영혼을 가진 사람에게서 어떤 공통점을 느꼈을 것이라고. '그 순간 나는 그가 겪은 삶의 어려움을 측은히 여겼다'(295쪽)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 이후 물리수업 시간에 딴짓을 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날지 않았다. 비행을 하려는 이유는 있었다. 하지만 불운한 물리 수업에서와 같이 바보 같은 이유는 아니었다. 나는 더 이상 날지 않았다. 아마도 해가 지날수록 더 현명해지고, 더 우울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현명함과 우울함이 인생을 우뚝 설 수 있게 만드는 받침대라고는 말하고 싶지 않다. 따뜻한 상상의 물줄기로 가득 찬 그 공허함이 나를 열기구처럼 신선한 봄바람의 공간으로 데려가 줄 수 있기를 바란다. (295쪽)

청소하는 날

청소를 하러 다니는 여자가 주인공이다. 그녀는 사랑에 집착하는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여인을 소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소녀라고 생각한 여성은 삶의 풍파를 겪은 성숙한 여성이었다. 그녀는 사랑에 집착하고 망가진 여자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가난한 남자를 사랑하고 배신 당한 또 다른 여자를 보며 자신의 딸을 떠올린다. 그녀의 딸은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집안의 남자를 만나 임신을 한 상태였다. 그녀는  꼭 딸을 임신시킨 남자의 집에 딸을 시집보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요란하게 내리는 눈이 창밖에서 점차 혼란스러워졌다. 마른 흰 눈가루가 집으로 쳐들어와 간섭하고, 모든 걸 분명하게 해주려는 듯 유리창을 끊임없이 미친 듯이 두드렸다. 아마도 사람들이 모르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 같다. 아니면 반대로 아무것도 모르고, 운명을 보지 못한 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추측하지 않으며 그저 자유분방하게, 심란하게 살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336쪽)


애서가 모임의 예기치 않은 콘서트 

열여덟 살에 소설을 써서 스타가 된 소년이 주인공이다. 그는 강연을 해달라는 전화를 받는다. 애서가 모임인 줄 알았는데, 교도소였다. 그는 강연을 하다가 그냥 노래나 하라는 항의를 듣고 얼어붙는다. 그런 상태에서 그만뒀던 피아노를 다시 치게 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고 엉망으로 부른 노래였지만 기립 박수를 받는다. 그리고 인생에 대해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이다.


갑자기 그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리고 긴장되고 뾰로통한, 고통받고 열정적인 많은 눈이 보였다. 이 사람들은 내 동년배들이었고, 대부분 나와 같은 세대였으며, 법에 의해 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사람들이었다. 예기치 못한 부끄러움이 전류처럼 나를 찌릿찌릿하게 했다. 이 시람들도 각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무능력하고, 극악무도한 범죄로 얼룩지긴 했지만, 그래도 각자의 운명을 타고났다. (349쪽)


이 소설 속에서 작가는 말한다. "나는 예술이 갑자기 인간의 마음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예술은 단 한 방울로 인간을 유혹해 곱사등으로 만들어 끌고 가려는 악의 바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351쪽)라고. 이 소설 속에는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 거짓말은 그냥 말하지 않은 사실일 때도 있고, 누군가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마음을 다 드러내어 보여주지 못할 때가 있다. 그때 드러내지 못한 마음은 거짓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침묵 속에 감춰진 마음, 침묵 속에 드러나지 않은 어떤 삶의 진실처럼 단순히 거짓말을 나쁘다라고만 말할 수는 없다. 흑과 백으로만 나누어 세상의 모든 일들을 구분할 수 없는 것처럼 사람의 말과 마음도 그럴 것이다.

예기치 못한 일들이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삶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누구를 만나 사랑에 빠질지 모르고 또 어떤 경험들을 하게 될지 모른다. 예기치 못한 데서 오는 놀라움, 새로움 때로는 관계 속에서 받게 되는 상처 같은 것들이 모두 나쁘다고만 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속에서 느끼는 설렘과 기쁨, 행복도 있고 깨달음도 있다. 그것이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고 더 나은 곳으로 이끌 것이다.

선과 악의 경계에서 이쪽에서 저쪽으로 넘어가는 것을 막는 것은 초록 대문 너머의 집에서 아이가 깨달은 죄의식일 수도 있고 또 우리 안의 선량함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마음들을 가질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 어쩌면 작가가 말하고 있는 문학의 효용성일 것이다. 우리가 문학 작품을 읽는 이유는 어쩌면 작가가 작품 속에서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 것처럼 '단 한 방울로 인간을 유혹해 곱사등으로 만들어 끌고 가려는 악의 바위를 조금씩 허물어뜨리는 데 있을 지도' 모르므로.

매거진의 이전글 남아 있는 나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