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구의 모험

by 기록 생활자

이 책을 읽기 전에 연필에 대해 생각하다가 언제부터 연필을 안 쓰게 되었는지를 잠깐 생각했다. 연필은 주로 어릴 때만 쓴다. 막 글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연필로 공책에 필기를 한다. 그러다 중학생이 되면 주요 필기구가 볼펜으로 바뀌게 된다. 글을 막 배우기 시작할 때는 잘못 쓰는 일이 많다. 쓰는 것도 서투르다.

그래서 어릴 때는 지우개를 사용해서 틀린 부분을 곧바로 수정할 수 있는 연필을 주로 쓰게 되지만 어느 정도 글을 쓰는 게 익숙해지게 되면 볼펜이나 젤러펜으로 바뀌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볼펜도 수정액으로 지울 수 있긴 하지만 어릴 때 연필을 쓰게 되는 것은 그런 이유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연필에서 볼펜으로의 필기구 이동은 '승급'의 과정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연필에 대해 다룬 부분에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발견하고 깊이 공감했다.

연필에서 펜으로의 이동은 중요한 한 걸음이다. 그것은 필기체를 구사하는 학생의 능력에 교사가 만족할 때 주어지는 승급이다.(230쪽)

나는 문구 덕후다. 어릴 때부터 문구류를 좋아했다. 얼마나 좋아했느냐면 어릴 때 동생들이 용돈이 떨어져서 내 생일 선물을 미처 준비 못하자 쓰던 노트의 앞장을 찢고 쓰던 필기구를 함께 신문지에 포장해 선물로 준 것을 받고 좋아했을 정도였다. 물론 미안했다. 쓰던 노트는 받지 말아야 하는 것이었는데. 어린 동생들의 마음에 감동을 받아서 좋았던 것도 있었지만 문구류를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에 헌 노트였어도 좋았던 것 같다.

지금도 문구류를 좋아하기 때문에 연말이 되면 나에게 선물을 하는 기분으로 새해에 쓸 다이어리를 고르곤 한다. 문구 덕후인 나에게 그러니 이 책의 출간은 참 고맙고 반가운 것이기도 했다.

문구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어 흥미로웠고 또 재미있게 읽었다. 이 책의 다음과 같은 문장에서는 동명의 만화가 원작인 드라마 송곳의 한 장면이 떠오르기도 했다.

나는 밀쳐지지도, 파일로 분류되지도, 스탬프가 찍히지도, 색인으로 분류되지도, 설명되지도, 숫자가 매겨지지도 않을 것이다. 내 삶은 내 것이란 말이다. (329쪽)

위의 문장은 프리즈너라는 드라마 1화에 나오는 등장 인물의 사직 장면에서 나온 대사라고 한다.

문구류 수집은 비교적 돈이 덜 드는 취미생활일 것이지만 어떤 문구류는 명품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고 거액에 거래되기도 한다. 볼펜은 누가 처음 만들었는지, 연필은 어떻게 생산되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문구의 역사에 대해 다루고 있는 거대한 박물관을 탐험하는 느낌을 받게 되기도 한다. 문구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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