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편지

by 기록 생활자

읽으면서 유년시절을 떠올리게도 되었고,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과 제비꽃 종례를 읽다가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세상에서 가장 따뜻했던 저녁>

어둠이 한기처럼 스며들고
배 속에 붕어 새끼 두어 마리 요동을 칠 때

학교 앞 버스 정류장을 지나는데
먼저 와 기다리던 선재가
내가 멘 책가방 지퍼가 열렸다며 닫아 주었다.

아무도 없는 집 썰렁한 내 방까지
붕어빵 냄새가 따라왔다.

학교에서 받은 우유 꺼내려 가방을 여는데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종이봉투에
붕어가 다섯 마리

내 열여섯 세상에
가장 따뜻했던 저녁
<제비꽃 종례>

종례 시간에 선생님은
우리 반 단체 카톡에 사진 한 장을 올리셨다.

"좁은 틈에서도 끈질기게,
작아도 당당한 제비꽃처럼"
메시지와 함께

학교 진입로 아스콘 바닥 갈라진 틈
나란히 핀 제비꽃 몇 송이 찍어 오셨단다.

집에 가는 길에 반드시 그 자리를 찾아서
유심히 보고 가라는 게 종례 사항이다.

외톨이 진욱이가 제비꽃 앞에서
오래 서 있던 것을
나는 보았다.

할머니와 단둘이 살며
엄마 아빠 얼굴도 모른다는

진욱이는 알고 있었을까
선생님이 창문가에서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는 것을


당당한 거지를 읽으면서는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아이가 생각이 나서 코끝이 시큰시큰거리기도 했다.


나는 어릴때 우유를 싫어해서 잘 먹지 않았다. 키 좀 크라고 엄마가 급식으로 우유를 시켜주면 급식으로 같이 나온 빵만 먹고 우유는 학교 운동장 수돗가에 버렸다. 안 먹고 그냥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가면 엄마한테 들켜 혼이 나곤 했기 때문이다.

내가 먹지 않고 가져온 우유를 아버지가 드시고 배탈이 나셨다. 그래서 나는 우유가 아버지 닮아 잘 안 받는 체질인가보다 했다.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곤 해서 안 먹었던 것도 좀 있는데 키 좀 크려나 싶어 작정하고 열심히 먹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우유 급식은 중단되었다. 그 우유가 유통기한을 속인 상한 우유라는 사실이 밝혀져 학교가 발칵 뒤집혔기 때문이었다. 우유를 먹으면 배탈이 나곤 했던 것도 사실 우유가 잘 받지 않는 체질이라기보다는 그 우유가 상한 우유였던 탓일 것이다.

하지만 '당당한 거지'라는 복효근 시인의 시를 읽고 어릴때 일이 떠올랐던 이유는 한 아이 때문이다. 그 아이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의 엄석대처럼 무자비하게 폭력을 행사했던 아이였다. 점심 시간에는 늘 밥을 먹지 않았고 엎드려 잠을 잤다. 반 친구들이 밥 안 먹느냐고 물어보면 늘 배가 부르다거나 먹고싶지 않다고 했다. 그 이유가 도시락을 싸주지 않는 계모가 있어서였다는 것은 한참 뒤에나 알게 된 사실이다.

그리고 나는 하교를 하기 전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급식으로 나온 우유를 버리기 위해 운동장 수돗가 쪽으로 걸어갔는데 그 아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허겁지겁 물을 마시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 아이는 그때 내가 들고 있던 우유를 안 먹을거면 대신 버려줄테니 달라고 했었나? 그랬던 것 같은데. 그래서 우유를 줬는데 그걸 가져가면서 주먹을 내보이면서 다른 아이들한테 자신이 수돗가에서 물을 먹었단 사실을 얘기하면 "죽을 줄 알아"라고 말했다.

그 아이는 배고픔을 늘 수돗물로 채워왔던 것이다. 그때 그동안 우유를 버리지 않고 그 아이를 그냥 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복효근 시인의 시를 읽으니 생각이 났다. 눈치가 없었던 탓이겠지만, 아마 그 아이도 받지 않았을 것 같다. 자존심이 강한 아이였으니까. 강한 척 하는 센척 하는 약하고 상처 받은 아이였다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 상처를 조금 더 헤아려 살펴봐주었을텐데 그땐 나도 너무 어려서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가끔 생각날 때가 있다. 밥 달라고 했다가 매를 맞고 집을 뛰쳐나와 싸리비를 들고 자신을 쫓아오는 계모를 따돌리기 위해 뜨거운 아스팔트 위를 달리던 그 아이의 맨발이.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들로 가득 차 있는 청소년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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