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을 편집하는 창
김명인 시인의 시 '침묵'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창 하나의 넓이만큼만 저 캄캄함을 본다" 언젠가 불이 켜진 아파트의 창문들을 차를 타고 지나가면서 바라본 적이 있다.
순간 저 창문들이 징그럽게 느껴졌다가 "세상을 보는 창은 열어두어야겠지"라는 생각이 들었고, "창은 세상을 보는 '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창은 안과 밖의 경계에 서 있다. 창을 열면 밖과 안이 연결되고 닫으면 단절된다.
이 세계 너머의 것, 창밖 풍경은 그런 것이 아닐까. 다만 바라볼 수 있는 것, 가질 수는 없는 것.
이 책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이사를 가는데, 창밖 풍경도 떼서 가지고 가고 싶었다는.
창밖 풍경은 창밖 풍경이다. 풍경은 그저 바라보아야 하는 것. 언제나 창을 열면 내 생활의 일부로, 내 공간의 일부가 되지만 창을 닫는 순간 바깥에 존재하는 무엇이 된다. 온전히 가질 수 없는 어떤 풍경들을 우리는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다 주거 공간을 바꾸는 순간 깨닫게 되는 것이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웠나?
창은 편집한다. 창문 틀의 모양에 따라 창은 창밖 풍경을 편집해 보여준다. 작게 분할하기도 하고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창처럼 퍼즐 조각처럼 보이는 창문 틀이 풍경을 잘게 조각내 보여주기도 한다.
눈앞에 펼쳐지는 풍경을 분할해 보여주는 창. 창의 넓이만큼 우리는 풍경을 보고 그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기도 한다. 시선이 어디에 머물러 있든 작가들의 창은 더 넓은 세계로 향하는 창이었다.
더 넓은 세계에 자신을 머물러 있게 하기 위해, 창을 바라보기도 하고 바라보지 않기도 하지만 작가들은 그 창이 있어 외부와 단단하게 연결될 수 있음을 안다. 시선은 항상 바깥으로 향하고 바깥으로 향해 있을 때 아름답다.
창은 내면의 세계와 외면의 세계를 연결하는, 안과 밖을 연결하는 도구이기도 할 것이기 때문이다. 창에 대한 묘사는 아름다웠고 덕분에 나 역시 옮긴이가 말했던 것처럼 여러 곳을 상상으로 여행할 수 있었다. 상상으로 선으로만 표현된 창 밖 풍경을 응시하면서 색을 입혀보기도 했다. 창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을 뿐이지만 단지 그것 뿐일지도 모르지만 이 창문들에 대한 이야기는 바깥으로 향해 있는 어떤 시선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해서 이 창들에 대해 탐색해볼 수 있었던 시간은 의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