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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Jun 23. 2018

최미진은 어디로

최미진은 어디로 갔을까?

이 책은 온라인 서점에서 포인트로 구매한 에센스북이다. 이기호 작가의 <누구에게나 친절한 교회 오빠 강민호>에 수록된 소설 <최미진은 어디로>가 실려 있었다.

요즘에 어떤 명언을 듣고 가슴 깊이 뭔가를 느끼거나 뭔가 머리를 한대 맞은 것처럼 띵한 충격을 받을 때 '띵언'이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이 소설이 내게 그랬던 것 같다.  말하자면 띵소설이랄까.

작가의 자전적 소설로도 읽히는 이 소설은 슬럼프를 겪고 있는 소설가 이기호가 우연히 한 중고 거래 사이트에 들어가면서 시작된다. 중고나라 사이트에서 여러 권의 중고 소설책을 파는데 그 속에 작가 자신의 책이 껴 있었던 것. 그런데 다른 작가의 책은 저가에 판매될지언정 공짜로 껴주는 것은 아니었으나 자신의 책은 다섯 권 구매 시 껴주는 책이라는 것에 작가는 충격을 받는다. 심한 모욕감을 느낀 그는 그래서 다섯 권을 구입을 하고 직거래를 하게 된다.

자신의 책의 겉표지 바로 다음 면지에는 "최미진님께. 좋은 인연. 2014년 7월 28일 합정에서 이기호."라고 적혀 있었다. 그를 알아본 중고 서적 판매자는 도망을 가지만 이내 돌아온다. 값을 치르고 나서 작가는 여기 적힌 최미진이 누구냐고 물어보는데 중고 서적 판매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린다. 집에 돌아오는 역 광장에서 중고 서적 판매자에게 전화가 온다.



아저씨는 우리 미진이도 잘 모르잖아요 …… 모르면서 그냥 좋은 인연이라고 쓴 거잖아요…… 그건 그냥 쓴 게 맞잖아요……

씨발, 아무것도 모르면서…… 내가 왜 책을 파는지…… 내가 당신이 쓴 글씨를 얼마나 오랫동안 바라봤는지……

우리 미진이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 ……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모르면서 그냥 그런 거잖아요…… 그런데 씨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내가 죄송하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사는데…… 꼭 그 말을 들으려고…… 꼭 그 말을 들으려고 그렇게……


그는 최미진이 그 중고 서적 판매자와 함께 살았던 사람이며 그 두 사람은 이별을 했고, 방을 빼야 하는데 최미진이라는 여성이 남기고 간 책이 너무 많아서 다 갖고 갈 수 없어 팔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아마도 그가 작가의 소설에 대해서만 나쁘게 써 놓은 것은 최미진이라는 여성이 그의 팬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와의 만남에 찾아가 사인을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작가는 아파트 담보 대출금 때문에 은행에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처지였다. 아내는 이 문제로 일자리를 구한 상태였다.  

그는 중고 서적 판매자에게 뭔지 모를 묘한 동질감을 느낀다. 그리고 내심 안도한다.

그 책들을 내가 다시 꺼내 보는 날들이 있을까.
글쎄, 지금으로선 잘 모르겠다.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게는 그 책들을 보관하고 꽂아둘 만한 책장이 있었다. 그것들은 나와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언제든 그것들을 읽어볼 가능성이 있겠지.

나는 그렇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리고 저자는 그런 상황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때때로 나는 생각한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주는 삶에 대해서.

나는 그게 좀 서글프고, 부끄럽다.


이 소설에서 최미진이 좋아하는 것이 책이라는 것과 이사는 그리고 이들의 이별은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언젠가 우연히 보게 된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여자 주인공이 집세를 내지 못해 집을 구하러 다니고 여러 곳을 전전하며 사는 내용의 영화가 나온 것을 봤다. 계속 이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많은 물건은 이삿날 ‘짐’으로 변신한다. 이런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남녀의 사랑과 이별이, 젊은 세대의 힘겨움이 이 소설에서 잘 읽혀진다. 주인공 역시 그런 힘겨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기에 그는 당장 책을 꽂을 수 있는 책장이 있는 것과 당장은 이사를 가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 안도하는 것이다.


최미진이 집을 나와 어디로 갔는지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이 소설의 제목이 <최미진은 어디로>인 것도 그런 젊은 세대의 힘겨움을 외면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꼬집기 위함일 것이다.


이기호의 소설은 어딘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아마도 무심코 지나치는 어떤 것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저자가 생각한 것들을 토대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것들이 좋다고 느껴진다. 그래서 이 소설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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