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Sep 13. 2018

내게 무해한 사람

무해한 사람이 된다는 것

토끼와 리저드라는 영화가 있다. 어떤 사건으로 상처를 받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영화를 보면서 사람이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일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저자는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던 적이 있다고 했다. 나 역시 무해한 사람이 되기를 바랐던 적이 있다. 그래서 이 책을 덮을 때 "나도 무해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요"라고 읊조렸는지도 모른다.

무해하다는 것은 해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라온 환경이나 놓여 있는 상황이 다르면 그 다름이 사람 사이에 거리를 만들기도 한다. 때론 그 거리가 좁혀지지 않아 서로 등을 돌리게 되는 일들도 더러 일어난다.

그러니 무해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름'을 '다름'으로 수용하고 있는 그대로 존중 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역시 그가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밀쳐낸 적은 없었을까. 존중 받기 원하는 마음,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지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들을 이 책 속의 인물들에게서 읽었다.


속이 깊다거나 어른스럽다는 말은 적당하지 않았다. 이해라는 것, 그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택한 방법이었으니까.

(모래로 지은 집_최은영)

얼마전에 어떤 사람에게 어떤 일로 적의를 느꼈다.나는 그냥 내 깊은 마음 속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것뿐인데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받아들여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사람은 자신과 무관한 이야기를 자신과 관련지어 생각했고 그래서 상처 받은 것 같았다. 의도와 다르게 상처를 입혔으니 사과를 해야했다. 사과를 하면서도 너와 내가 다르다는 것이, 내가 이해를 받지 못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는 과정이 주는 맛은 쓰디 썼다. 나는 그 사람이 나를 쉽게 어떤 사람이라 단정 짓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문장을 책 속에서 접했을 때 왠지 위로 받는 기분이 들었다.


애쓰고 애쓰고 또 애써온 시간이 그애의 얼굴에 그대로 남아 있어서 나도 그애를 대할 때는 불성실하고 싶지 않았다. 무성의하게 공무가 이런저런 사람이라고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

(모래로 지은 집 _ 최은영)


그래 무성의한 것이었구나. 어떤 사람인지 더 알아보려는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단정 짓는 것. 그렇게 규정되는 나의 존재가 나는 싫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든 가까이 지냈다는 이유만으로, 그 시간의 무게로 사람을 쉽게 단정 짓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 노력했었으니까. 그러면서 나는 그동안 내내 내가 그 사람에게 어쩌면 적의를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사람과 나의 관계가 깨진 접시처럼 산산조각 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어쩌면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가깝지만 먼 사이였는지도 모르겠다고 느끼며 시간을 보냈다고 말하지 못했다. 나 역시 솔직하지 못했다. 그리고 적의를 가졌던 것 같다. 표현할 것을 제때 표현하지 못해 쌓인 그 적의가 알게 모르게 그 사람을 상처 입힌 것은 아닐까.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내가 상처를 받고, 또 나 역시 그 사람에게 상처를 준 순간도 있었을지 모르는 것처럼.

그렇게 상처를 주고 받을 수밖에 없는 관계들 속에서도 무해함을 원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내게 무해한 사람을 찾고, 또 누군가에게 나 역시 무해한 사람이기를 바랐는지도.


늘 엄마를 만날 수 있었던 그때의 기다림을
윤희는 아프게 기억했다. 어른이 된 이후의 삶이란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것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윤희야, 온 마음으로 기뻐하며 그것을 기다린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지나가는 밤 _ 최은영)


상처를 받고, 상처를 드러내지 않으려 애쓰고, 끝내 상처 받으며 삶을 견디는 나날들에 관한 이야기였던 것 같다.  읽으면서 나의 일을 생각했다. 나를 둘러싼 관계들을. 적의는 어쩌면 작은 오해에서 비롯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데에서. 그리고 또 우리는 상처 받는다. 그리고 상처 받을 것이다.


무해함은 어디에서 오는가. 사랑일 것이다. 존재에 대한 지극한 사랑. 그런 사랑을 가지고 싶은 마음 하나를 책을 덮으며 내 안에서 발견했으므로 이 책을 읽는 순간은 내게 유익했다.


초가을이었지만 새벽공기가 쌀쌀했다. 어릴 때처럼 주희는 이불을 발로 밀어내고 있었다. 윤희는 주희가 깨지 않도록 조심스레 이불을 들어 덮어줬다.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윤희는 주희가 추워하지 않기를, 추워 잠에서 깨어나지 않기를, 따뜻한 단잠을 자기를 바랐다. 쌀쌀한 밤, 이불이라도 덮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주희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윤희의 마음에 작은 빛을 드리웠다.

(지나가는 밤_최은영)
매거진의 이전글 아무튼, 계속 살아가는 것 _아무튼, 계속 행복할 것.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