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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Sep 28. 2018

소설 보다 봄•여름 2018

이번 추석 연휴에 고향에 가서 다 읽고 온 책이다. 이 책은 소설집인데 여러 작가의 단편 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챕터는 크게 봄과 여름으로 나뉘어져 있다. 봄에는 김봉곤의 소설 '시절과 기분', 조남주의 '가출'이 자리를 차지하며 여름에는 김혜진의 '다른 기억'과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김봉곤 작가의 소설은 내게 무해한 사람의 최은영 작가의 소설을 일부 떠올리게 했는데 그 이유는 그 소설집에 수록된 작품 중 데자와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 책에도 데자와가 나온다. 데자와는 권해봄 PD의 인스타그램에서 처음 접해 이름을 알게 된 밀크티이다. 공교롭게도 최근에 읽은 책들에 데자와가 자주(?) 나오다 보니, 데자와가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걸까? 일종의 PPL인가 하는 생각도 약간 들었지만 공대생과 명문대생들이 즐겨 마시는 음료수라고 한다. 그런 이미지를 심기 위해 의도적으로 이 음료수를 등장시켰을까 하는 생각도 조금 해봤는데 잘은 모르겠다.

데자와 자체에 대한 호불호도 많이 갈린다고 하니 아마도 데자와를 나눠 먹는다는 것은 같은 음료수를 좋아하는 나와 당신의 관계가 얼마나 친밀한 것이었는가를 드러내기 위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살짝 들기는 했다. 김봉곤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소설로 쓴다고 했고, 이 소설은 주인공이 게이이므로 김봉곤 작가가 게이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역시 조금 리서치를 해보니 커밍아웃을 한 게이 소설가라고 한다. 현재는 게이이지만 소설 속 주인공은 과거 여자를 사귄 적이 있다. 이 소설은 그 여자를 만나러 가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다.  소설 속 주인공은 그 여자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것으로 그려지기 때문에 양성애자로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시절과 기분은 지금은 동성애자가 된 내가 이성애자였던 과거의 나를 만나러 가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그때로 돌아가기에는 이성애자와 동성애자의 간극만큼이나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시절을 통과한 어떤 감정과 현재의 감정 사이의 간극에 대한 이야기, 좁혀지지 않는 차이에 관한 이야기로도 읽혔다.

조남주의 가출은 '아버지의 가출'이라는 사건과 맞닥뜨리는 가족이 등장한다. 아버지가 가출을 했지만 가족들은 적극적으로 아버지를 찾지 않는다. 일상은 그런대로 흘러가고 다들 그럭저럭 괜찮게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페미니즘 소설로 읽히기도 하는 '82년생 김지영'을 쓴 저자이기 때문에 가부장적인 아버지를 의도적으로 작가가 부재하게 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작가 인터뷰를 보니 의도적으로 가부장의 부재를 그렸다고 한다.

김혜진의 다른 기억은 '윤리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저마다 갖고 있는 윤리의식. 내게는 선善인 것이 그에게도 선인가 묻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건과 상황에 대한 해석이 각기 다른 데서 오는 소통의 부재와 관계의 단절을 선명하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지돈의 '빛은 어디에서나 온다'는 예전에 읽었던 '건축이냐 혁명이냐'와 같은 선상에 놓여진 작품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그다지 새롭게 느껴지지 않았다.

정지돈의 소설은 인물과 인물 사이에서 일어나는 어떤 일들에 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기에 인간이 배제된 그의 소설은 사실 내게는 읽기 쉬운 작품은 아니었다. 이것을 새로움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을 것이지만 한결같은 그 인물의 서사에  관한 철저한 배제는 그의 작품 세계를 구성하며 어떤 스타일을 만들어낸 것 같다.

그러나 그로 인해 어떤 지루함과 식상함을 불러일으켰다. 만약 '건축이냐 혁명이냐'를 먼저 읽지 않고 이 작품으로 정지돈의 소설을 처음 접했다면 신선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인물이 보이지 않는 그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문득 내가 인물이 선명하게 보이는 소설을 좋아하는구나라는 것을 느꼈다.

젊은 작가의 엄선된 신작을 계절마다 만나게 하기 위해 이렇게 계절별로 나눈 것 같지만 딱히 그렇게 나뉘지 않아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 실린 작품들은 모두 계절과의 연관성은 그리 깊게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리즈물로 기획하기 위해 붙여놓은 제목인 것 같아 약간 아쉬웠다. 작품을 하나의 주제와 키워드로 묶어서 네이밍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약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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