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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Oct 04. 2018

슬픔의 비의

각자의 슬픔을 통해 느낄 수 있는 인생의 참맛

인스타그램에서 이 책 제목 태그로 피드를 살펴보던 중 박준 시인을 만난 어떤 분이 이 책의 알맹이만 들고 갔다가 박준 시인이 눈을 빛내며 쳐다봐서 책을 드리고 왔다는 내용의 글을 쓰신 것을 봤다.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이라는 제목의 산문집을 낸 시인이기도 하니 ‘슬픔의 비의’라는 제목의 이 책에 관심을 가지신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책을 보호하는 형태의 표지가 있다. 그것을 벗겨내면 일어로 쓰인 제목이 담긴 표지의책이 나온다.

이 책을 펼치기 전에 앞서 읽었던 책은 공교롭게도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었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신형철이라는 한국의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이고 슬픔의 비의는 와카마쓰 에이스케라는  일본의 문학평론가의 산문집이다.

같은 날 산 책 두 권의 주제는 슬픔에 관한 것이었기에 어딘가 통하는 데가 있었다.

이 책의 저자는 아내의 간병을 하며 슬픔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경험이 있는데 신형철 문학평론가 역시 아내가 수술을 하는 것을 곁에서 지켜보며 슬픔에 대해 생각한 경험이 있어서 두 분의 삶도 약간 통하는 데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와카마쓰 에이스케의 아내는 암 투병을 하다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그런 슬픔을 겪은 사람이 쓴 슬픔에 관한 글이기에 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며 자신의 고통 속에서 깨달은 이야기를 전하기에 더욱 진실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책에는 소리내어 읽으라고 적혀 있는 문장이 있다.

소리내어 읽으라고 나와 있어서 소리내어 읽었다. 왜 작가가 소리내어 읽어보라고 했는지 알 수 있었다.

미나마타 병에 걸린 여자아이가 벚꽃잎이 떨어지는 것을 보고 무언가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것을 집으려 들지만, 손발이 구부러져 집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집으려다 마루에서 아래로 굴러 떨어진다. 그 모습을 발견하고 달려오는 어머니에게 여자아이는 “엄마, 꽃”이라고 말한다.

여자아이는 결국 얼마 가지 않아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죽은 아이의 어머니는 죽은 딸 아이를 위해 꽃잎 한 장을 집어 달라며 그 병의 발병 원인이 된 화학 폐기물을 바다에 흘려보낸 기업에 부탁의 편지를 쓴다.

미나마타 병은 미나마타시에서 집단 발병한 병으로 수은 중독이 원인인 병인데 짓소라는 화학공장에서 화학 폐기물을 바다에 몰래 버리는 바람에 그 어촌 지역에 사는 물고기를 주로 먹는 어민들이 이 병에 걸렸다고 한다. 손발이 구부러지는 병이므로 꽃잎 한 장조차 손바닥 위에 올려놓을 수 없었던 것이다.

개인적으로 종이책을 선호하는 이유가 마음껏 밑줄을 긋고 또 마음을 두드린 문장을 필사해보며 그 책을 나만의 책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좋아서였는데 이 책의 저자도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 다음과 같이 해 두어서 공감이 많이 갔다. 공감하며 읽어내려가며 밑줄 그었던 문장이 많은 책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더 명확해질 때가 있고 쓰면서 나의 생각을 보다 분명히 알게 될 때도 있고, 글쓰기라는 행위를 통해 흐릿했던 것들이 구체적으로 드러날 때가 있어 글을 쓰는 것에는 그런 이유도 있지 않나 생각했는데 (내 생각을 발굴해내고 캐내고 구체적으로 만드는) 저자도 그런 생각을 이 책에 밝혀 놓아서 많이 공감이 됐다. 이 외에도 내가 평소 생각했던 것과 같은 생각을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밝히고 있어 공감을 많이 했고, 이런 이유로 저자에게 더없는 친밀감을 느끼며 읽었던 것 같다.

나는 이 책을 온라인 서점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을 구매하면서 이 책을 구매한 사람들이 많이 구매한 책으로 이 책이 소개되어 있어 알게 되었다. ‘슬픔의 비의’라는 제목과 미리 보기로 읽어본 문장에 매료되어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과 함께 구매하게 됐다. 국내에 잘 알려진 저자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이 책은 한국에 번역된 저자의 첫 책이라고 한다.

궁금하다면 읽어보기를 권한다.




질적인 것은 양적인 것과는 달리 대체가 불가능하다. 서점에 쌓여 있는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아 밑줄을 긋거나 포스트잇을 붙인다.

표시를 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 책을 가슴에 끌어안는다. 그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그 책은 더 이상 어디에나 있는 흔한 책이 아니라 세상에 단 하나뿐인 <책>이 되는 것이다.

똑같은 부분에 선이 그어진 책은 존재할 수 없다. 읽는다는 것은 양적인 것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다. (174쪽, 슬픔의 비의 _와카마쓰 에이스케 지음, 김순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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