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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Oct 28. 2018

13계단

사형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사형제도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 그런 질문에서 시작된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이 작품은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으로 미야베 미유키가 심사위원으로 있는데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되었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소설을 읽고 있을 때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또 책을 덮고 난 이후에도 헤어진 전 연인과 그녀의 가족들을 살해한 사건도 일어났고 (부산 일가족 살인사건), 혼수 문제로 다투다가 약혼녀를 살해한 사건도 일어났다. 또 조현병 환자가 지나가는 행인을 칼로 찌른 사건도 일어났다. 어찌보면 분노조절장애로 인한 범죄인 것 같은 범죄가 여러 건 일어났다고 보여진다.

이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사형 집행 경험으로 죄의식을 갖게 된 교도관 난고와 상해치사죄로 2년간 복역을 한 후 가석방된 준이치라는 청년이다.

상해치사죄라고는 하지만 준이치는 자신의 행동으로 한 사람을 죽게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이에 대한 죄의식은 없다. 그 이유는 죽인 사람이 악인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추리소설이지만 결말이 궁금해서 미리 읽고 읽었는데, 그런데도 재미가 반감되지 않았다. 그만큼 이야기가 탄탄했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쓴 작가는 이 소설로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에 영화 시나리오와 드라마 극본을 집필했던 사람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묘사가 생생하고 섬세해 한 장면 한 장면이 머릿속에서 구체적으로 그려지는 느낌이었다.  속도감 있게 전개되어 후반부로 치달을수록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사실 사형제도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논란이 아직까지 거세다. 나 역시 공지영 작가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으며 그런 문제에 대해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러나 답을 내리지 못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으면 그런 답을 내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소설을 읽으며 사형제도가 꼭 필요한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누군가를 살해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그 살해범에 의해 죽은 사람이 살아서 돌아올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때의 사형제도라는 것은 결국 이 소설에도 등장하는 응보 사상 때문이 아닐까. 결국은 복수에 지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또 잡혀온 사람이 정말 살인을 저지른 살인범이 아닐 경우 그를 사형대에 세움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도 있을 것이다. 또 그 사형을 집행한 사람과 그런 결정을 내린 사람이 갖게 될 트라우마와 죄책감에 관한 이야기까지 작가는 세밀하게 그려내고 있다.

난고와 준이치는 기억을 잃은 사형수를 구해내기 위해 사건을 추적한다. 그가 겨우 떠올린 것은 그 시간에 '13계단'을 오르고 있었다는 것. 단서라고는 그것 밖에 없지만 이들은 힘을 합쳐 사건을 해결한다. 기억을 잃고 사형수로 누명을 썼던 사가키바라 료가 자신의 재심이 청구되고 그것이 받아들여지면서 울던 순간, 나 역시 눈물을 흘렸다.

읽으면서 여러 생각들을 하게 되었던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출간 직후 화제가 되며 베스트셀러 목록에 이름을 올렸고 영화화가 결정되어 영화로도 나오게 됐다고 한다. 작가는 영화에 그다지 만족하지 못했다고 미야베 미유키는 이 책에 실린 '에도가와 란포상 수상작 심사과정'에서 밝히고 있다.

재미있으면서도 묵직한 주제를 깊이 있게 그려내고 있어서, 이 책을 읽는 시간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다.


육체의 상처에만 상해죄가 적용되고,
망가진 사람의 마음은 방치되는 것입니다. 법률은 옳습니까? 진정 평등합니까?
지위가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머리가 좋은 사람이나 나쁜 사람이나,
돈이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나쁜 인간은 범한 죄에 걸맞게
올바르게 심판받고 있는 것입니까?
-13계단, 에필로그 _367쪽에서.
다카노 가즈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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