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생각상자

12월이 되면 생각나는 몇 개의 문장들

마음의 밑줄 긋기

by 기록 생활자


12월이라는 달(月) 위를 걸으며 꺼내보는 시와 문장들. 한해를 되돌아보게 되는 이 무렵이 되면 자연스레 떠오르는 시와 문장에 올해 읽었던 책의 다음과 같은 문장을 끼워넣어본다.


한 해의 마지막인 12월은
어떤 시간을 밀어내고
예정되어 있는 그 뒤의 시간을
적극적으로 끌어 오는 달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음에 올 시간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기대가
있는 때였다.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 <나의 블루지한 셔츠>, 김금희



ABC
- 비스바와 쉼보르스카

이제 절대로 알 수 없으리라
나에 대해서 A가 어떻게 생각했는지.
B는 결국 나를 용서했는지.

어찌하여 C는 괜찮은 척, 잘 지내는 척 했는지,
D의 침묵에 E가 어떤 방식으로 관여했는지,
F가 기대했던 건 무엇이었는지 (혹시라도 기대를 했었다면)
모든걸 알면서도 G는 왜 모른 척했는지.
H는 무엇을 숨기고 있었는지.
I가 덧붙이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었는지.

내가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그 어떤 의미라도 남겼는지
J와 K, 그리고 나머지 알파벳에게


마른 나뭇가지를 모으며 석양 무렵의 가문비나무 숲을 걷는다. 축축한 대기가 느슨하고 따뜻하다. 숲속 카펫에 떨어지는 무스(사슴과의 포유류) 똥에 물기가 조금 배어 있다. 버드나무의 새싹이 트기 시작했을 것이다.

붉은 다람쥐 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숲도 조금씩 꿈틀대기 시작했다. 작은 장작불이 흔들리고 있다. 타닥 타닥 타닥, 소리를 내며 나의 마음을 풀어 준다.

뜨거운 커피를 마시면 더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 역시 묘한 거야, 사람의 마음이란. 아주 자잘한 일상에 좌우 되면서도 새 등산화나 봄 기운에 이렇게 풍족해 질 수 있으니. 사람의 마음은 깊고, 또 이상할 만큼 얕다.

사람은 그 얕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밤이 되고 별이 나왔다. 랜턴을 켜놓고 일기를 쓴다. 올해가 다시 시작되었다.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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