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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3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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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은 외계인_ 익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바뀌는 순간의 공포

Brightburn, 2019 데이비드 야로베스키 감독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던 난임 부부. 그들 앞에 불시착한 우주선 안에 갓난아기가 나타난다.


아이를 입양해 키우게 된다.

브랜든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는 이 아이는 별탈 없이 자라는 거 같지만 칼에도 베이지 않고 상처도 입지 않는다. (외계인이니까) 자신이 남다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외계인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아이는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약간 충격 받은 듯한 모습을 보인다.


자신의 힘을 자각하게 되면서 감춰두었던 사악한 본능을 드러내는 브랜든.


아이가 포크를 씹어 먹다가 휘어 놓은 모습을 본 아버지는 그때부터 아이의 남다름이 걱정되기 시작한다. 아이의 명석한 두뇌는 자랑거리였지만 튀는 행동은 달갑지 않다. 우주선에서 데려온 아이라는 것을 새삼 자각하는 아이의 아버지는 양계장에 닭들이 모두 죽고 동서(아내 여동생의 남편)가 사망한 사건에 아들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아이를 죽이려고 하지만 아들은 외계인이다. (쉬울  없다)


사람은 언제 공포를 느낄까? 아마도 대부분 잘 모르는 것에 공포를 느낄 것이다. 잘 아는 대상, 익숙한 대상에 대해서는 축적된 데이터로 어느 정도 대처가 가능하지만 낯설다 못해 생경하기까지한 대상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럴 때 느끼는 불안감이 공포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한다.



잘 안다고 생각했던 대상이 낯선 것으로 변모할 때오는 공포는 매우 크지 않을까. 익숙한 것이 낯선 것으로 바뀌는 그 순간에 오는 공포를 영화적으로 잘 풀어낸 느낌을 받았다.


브랜든의 다름은 영화 초반부터 배척의 대상이 된다. 브랜든의 다름은 결국 영화 속에서 수용되지 못한다. 수용이 불가능한 다름은 없애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브랜든의 주변 사람들에게 느껴지는 브랜든의 다름은 불편함을 갖다 주기 때문이다.

깊이 있는 영화는 아니라서 그 점이 다소 아쉽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여러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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