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상욕 노트
아버지에게는 노트가 있었다. 자물쇠가 달린 고풍스러운 수납함에 넣어 놓은. 아버지가 줄노트에 뭔가를 열심히 기록하시는 모습을 종종 보곤 했지만 그 노트는 무척이나 비밀스럽게 관리되어 흘끔 엿볼라치면 닫히곤 했다.
그 노트를 열어보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의 일이다. 아버지가 노트에 뭘 적어 놓으셨는지 내내 궁금했던 나는 열쇠를 가져와 보관함을 열었다. 그 노트에는 비망록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그 검정 표지의 노트 속에 적혀 있는 것은 아버지의 땀이고 눈물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처음 펼쳤을 때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상욕(常辱) 노트였기 때문이다. 개인택시를 운전했던 아버지는 진상 손님을 만나 억울했던 일, 힘들었던 일을 적으며 속풀이를 하셨던 것 같다. 정말 별라별 진상 손님들이 많았다.
우리 아버지가 이렇게 힘들게 일하셨구나 깨닫게 되면서 약간의 눈물이 나왔다.
그러나 그 노트에 나쁜 일들만 기록되어 있는 건 아니었다. 때때로 손님들에게 칭찬을 받거나 손님과의 기분 좋았던 일들도 빼곡하게 담겨 있었다.
아버지는 나쁜 일도, 좋은 일도 모두 기록으로 남겨 놓으셨다. 자식이 자신의 부모님이 일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간접적으로나마 아버지가 일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게 도와준 노트는 어머니가 “뭘 이런 걸 적어놓았어!”라는 말과 함께 불길에 던지는 바람에 타서 재로 변해 사라졌지만 그 속에 담긴 것은 아버지의 분노만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버지의 시간이었다. 가장으로서, 또 직업인으로서 느끼는 고충이 담긴. 일의 기쁨과 슬픔이 담긴. 그 비망록이 사라진 것이 조금은 아쉽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