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날 오전 엄마가 죽을 양껏 먹었고 여느 때보다 정신이 맑아 보인다는 말을 들은 터라 간병인이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자 간병인은 이미 복도에 나와 엄마가 들을 수 없는데도 소곤거리며 말했다. 원래 사람이 가는 날, 저래, 죽을 때도 힘이 필요하니까 막 먹고 곧 살아날 것처럼 그런단 말이야. 유안이 엄마, 해 지기 전에는 와요, 어? 내가 보낸 사람이 열몇이야, 꼭 그래야 해. _우리가 가능했던 여름, 김금희 소설집 [우리는 페퍼로니에서 왔어]수록작
이 문장을 읽는데 삶의 어떤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암 말기 환자로 임종을 앞둔 할머니께서 서울에 사는 남동생이 내려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남동생의 얼굴을 본 후 숨을 거두었던 일이.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동생을 기다리셨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동생의 얼굴을 본 직후에 숨을 거두셨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할머니의 지극한 손자 사랑이 떠올라 괜스레 코끝이 시큰거린다.
하지만 어느 한편으로는 할머니께서 마지막까지 힘을 내서 보고 싶은 얼굴을 보고 가셨구나 생각하면 어쩐지 위안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