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발 0시 50분
대전 부르스라는 오래된 노래가 있다. 가왕이라고 불리는 조용필의 노래. 이 노래를 잘 부르는 친척이 있어 알게 된 그때에도 꽤 오래된 옛날 노래였다. 내가 어릴 때 우리집에는 가정용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음주와 가무에서 ‘무’만 빼고 음주가를 즐기셨던 아버지는 노래방 기계와 마이크를 준비해 집에서 종종 노래를 즐겨 부르셨다. 사촌은 그 가정용 노래방 기계로 우리집에서 그 노래를 불렀다.
잘 있거라 나는 간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가는 새벽 열차 대전발 영시 오십분
어린 마음에 왜 0시라고 표현했는지 내내 궁금했다. 자정도 아니고 밤 12시도 아닌 0시.
무(無)의 상태를 표기한 숫자. 어떤 수에 0을 더하거나 빼도 그 수는 변하지 않고 0을 곱하면 어떤 수도 0이 되는.
이 노래에서 0시는 자정(밤 12시)을 의미한다. 0시는 오늘이 어제가 되고 내일이 오늘이 되는 특별한 시간이다. 어제와 오늘을 가르는 시간. 0시는 과거와 현재의 경계에 있는 시간이다. 0시는 모든 것이 무로 돌아가는 시간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오늘의 시간이 새로운 시간으로 덮어쓰기 되는 시간. 24시간이 새롭게 리셋되는 시간. 24시간이 초기화되는 0시가 있어 우리는 어쩌면 매일 내일은 오늘보다 더 나을 거라는 희망으로 오늘을 살아낼 수 있는지도 모른다.
대전발 부르스에서 노래에 등장하는 연인에게 0시 50분은 새로운 시간을 향해 가는 시간이다. 이별의 말도 없이 떠나는 이에게는 사랑했던 이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려는 시간이고 남겨지는 사람에게는 사랑하는 이와의 이별을 예감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너 없는 내일로 가는 기차에 누군가는 올랐고 남겨진 이는 떠나는 사람을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 기차는 앞으로 달려가 끝내 너와 내가 없는 시간에 빠르게 닿을 것이다. 대전발 0시 50분이라는 가사가 유독 구슬프게 들리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모든 것이 끝난다. 삶도 사랑도. 그러나 삶이 지속되는 한 우리의 시간은 늘 0시를 기점으로 이어지며 새로워질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별로 끝나버린 사랑도 때로는 내일의 추억이 된다. 물론 추억이 되지 못하는 사랑도 있기는 하겠지만.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삶에는 언제나 희망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