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 지은 밥과 같은 말
나에겐 아이의 말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다. 아이가 말을 하기 전부터 아이의 말을 차곡차곡 기록해 수집하는 순간을 꿈꿨다.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엄마와 아빠를 얘기했을 때. 아빠를 하던 순간에는 그 순간을 영상으로도 담아 두었기에 아이가 아빠를 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지를 알고 있다.
아이는 아빠를 발음하기 위해 입술를 오므렸다 뗐다를 두번 반복했다. 마치 차에 시동을 거는 것처럼. 아이는 말에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아빠아빠아빠아-빠”를 힘겹게 웃으며 내뱉곤 뭔가 뿌듯한 얼굴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아빠했어? 아빠?!”라며 아빠도 아닌 엄마가 기뻐하는 표정을 아이는 방긋 웃으며 바라보았다.
그 이후에 아이가 어떤 말이라도 하면 옹알이를 하던 아이가 그렇게 말을 잘하는 것만으로도 신기해서 그 말을 받아적기 바쁜 나날들이 이어졌다.
지난 주말 저녁에 떡만둣국을 끓였는데 국자로 휘젓다가 만두가 터졌다. 사골 국물이 만두소 때문에 벌겋게 변했다. 아이가 국물을 마시며 웃으면서 “얼큰하네”라고 말했다. 아이는 사실 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매운 맛이 미미하기는 했지만 살짝 매콤함이 묻어 있는 맛이라 내심 미안했다.
뽀얀 국물의 떡만둣국을 먹여주고 싶었기에 미안했는데 얼큰하다는 아이의 말이 어쩐지 위로가 되었고 고마웠다.매운 음식을 잘 먹지 못하는 아이가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아서 더 그랬을 것이다.
어느날은 아이가 내 마음을, 또 내가 아이의 마음을 잘 읽어주는 순간이 있다.
그런 순간이 있었다. 네가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았구나 생각되는 순간이.
어느날 아이가 초록색 색종이로 하트 모양의 팔찌를 접어왔다. 팔찌에 연필로 “같이 있어”라고 적혀 있었다.
누구랑 같이 있으라는 말이니? 나는 아이의 여자친구 이름을 대며 그 친구를 생각하며 쓴 것이냐 말했고 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했다.
“아니. 엄마를 떠난 할아버지. 떠나지 말고 같이 있으라고 적었어.”
어릴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남몰래 그리워하는 나의 마음을 아이가 알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걸 듣는 순간 눈물이 났다. 어떻게 알았을까?
아이의 말에 위로를 받은 순간이었다.
아이가 내 마음 한 조각을 들여다 보고 그걸 떼어다가 말을 지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 한 조각을 떼어다가 말을 짓는다. 그 말이 오래도록 갓 지은 밥처럼 따뜻하고 정신적 허기를 달래주는 기운을 북돋는 말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의 말들이 서로를 당황시키기 보다 이해하는 쪽으로 걷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