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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07. 2022

다른 딸

우리는 모두 다른 존재입니다


죽은 언니에게 보내는 편지. 죽은 사람과 비교 당하는 일은  사람의 그림자로 사는 일이겠지. ​


그 사람은 이미 죽었기 때문에 절대로 넘어설 수 없는 존재인데. 심지어 그 상대는 내가 세상에 존재하기도 전에 세상에서 사라진 사람.  사람은 항상 잃어버린 것을 더 높게, 또는 더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하곤 한다. ​


그건 때때로 죽은 사람에게도 적용된다. 이미 죽은 사람이기 때문에 미화하는 경향도 있을 수 있고.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시간을 다시 되찾을 수 없다는 상실감도 어느 정도 작용할 수는 있겠지.

그러나 이미 이 세상 사람도 아닌 사람과 비교 당하며 사는 사람의 기분은 어떨까.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커다랗고 높은 장벽 앞에 서 있는 기분은 아닐까. ​


다른 딸이라는 제목은 결국 '다름'을 인정해달라는 작가의 항변처럼 들리기도 한다. 모든 인간은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인 개체이고 그 자체로 유일한 존재인데 때때로 그 다름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나 경멸의 이유가 된다. ​


패션계의 아웃사이더로 불리는 칼 라거 펠트는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다름(차이)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을 좋게 쓰고 있는가? 차이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있는가? ​


그렇지 못한 삶을 살았던, 누군가의 그림자로 살면서 느꼈던 저자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었다. 어쩔 수 없이 죽음을 떠올리게 만드는, 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고 한번도 본 적 없는. 작가는 죽은 언니에게 보낼 수 없는 편지를 썼다. 이 편지를 제일 처음 읽는 건 결국 작가 자신이며 불특정 다수의 독자들이다. ​


죽음으로써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존재가 된 언니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자신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작가는 이 편지를 쓴 것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


결국 언니의 부재조차도 그녀의 삶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야기로만 존재하고 살아있는 존재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야기로 존재하지만 나의 깊은 내면에서 어둠으로 자리하며 살아있는 언니. 그 언니를 ‘삶’이라는 이름이 붙은 폴더 파일에서 불러내는 일. 이야기로 존재하며 살아있는 언니를 자신의 삶에서 떼어내서 바라보는 일이 그녀에게 필요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딸’로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 그것이 이 글이 쓰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었다.


1945년 11월 7일은 이브토로 그들이 돌아온 후 3주가 지났을 때였지요. 그들은 당신 바로 옆의 무덤을 계약했어요. 1967년에 그가 먼저 그곳에 묻혔고, 그녀는 19년 후에 묻혔습니다. 나는 노르망디에 잠들어 있는 당신들 옆에 묻히지 않을 거예요. 그걸 원한 적도 없거니와 그렇게 될 거라고 상상조차 하지 않았어요. 다른 딸, 그들로부터 멀리, 다른 곳으로 달아난 딸은 바로 나입니다.


다른 딸_89쪽.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네야 할 필요가 있을지, 이 편지를 썼다는 게 부끄러울지 자랑스러울지, 편지를 쓰고 싶었던 욕구가 정말 있었는지 잘 모르겠어요. 아마 나는 당신의 죽음이 내게 준 삶을, 이번에는 내 차례가 되어 당신에게 돌려주며 가상의 빚을 털어내길 원했던 것 같아요. 아니면 당신과 당신의 그림자로부터 떠나기 위해 당신을 되살리고 다시 죽게 한 걸 수도 있고요. 당신에게서 벗어나려고. 죽은 자들의 오래 지속되는 삶에 대항해 투쟁하려고.


다른 딸_89쪽. 아니 에르노 지음, 김도연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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