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필요한 마음에 관하여
아이들은 더이상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나의 어린 아들도 언젠가부터 그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작년 크리스마스에는 산타할아버지는 늙은 사람이라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다. 선물은 엄마, 아빠가 사주는 거라고. 이미 몇 년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알면서도 속아준 것이라 했다.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것이 산타할아버지가 한 사람이면 아주 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할아버지인 상태로 그대로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할 법도 하다. 수년 전에도 할아버지였고 올해도 내후년에도 할아버지로 남아 있는 존재이니 말이다.
12월은 무언가가 사라지는 달이다.
한 해가 소멸로 향해 가는 달. 언젠가부터 그런 12월에 자리하고 있는 크리스마스가 그 자체로 선물이나 축제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말라고, 아직 축하할 일들과 기쁘고 행복할 날들이 한 해의 끝자락에 남겨져 있다고. 크리스마스가 그것을 증명해주고 있지 않으냐고. 거리는 색색의 전구로 장식되어 환하게 반짝거리고 그 반짝임이 거리를 지나가는 이들의 일년의 시간을 밝혀주고 있지 않으냐고.
‘크리스마스’가 되면 해마다 떠오르는 삶의 어떤 순간에 자리하고 있는 풍경의 조각들이 있다.
어린시절, 과자나 간식 따위에 홀려서 처음 발을 들였던 동네의 작은 교회에서 (요즘 교회에서도 그런 것으로 아이들을 홀린다) 크리스마스에 보여줬던 예수 탄생의 이야기가 담긴 인형극이나 어린시절 양말을 놓아두고 자면 산타할아버지가 선물을 놓고 갈 거라는 아버지의 말씀에 머리맡에 양말을 놓아두고 설레는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던 날의 기억 같은 것들.
양말이 너무 작아 선물이 들어가지 않으면 어떡하냐고 걱정하는 나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걱정하지 말라며 아버지가 껄껄껄 웃음을 터뜨리던 풍경 같은 것들.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아이와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던 날의 기억.
그런 기억들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흘러도 닳아 없어지지 않고 마음 깊숙한 곳에 남아 특정한 때가 되면 꺼내어진다. 머릿속에서 재생되는 삶의 장면들이 그때의 그 마음으로 돌아가게 만들어주기도 하고, 또 지나온 날을 되돌아 보게도 한다.
사라진 줄 알았지만 아주 사라지지는 않은. 어떤 감정들과 그 감정의 색깔이 뚜렷하게 손에 잡힐 것처럼 때때로 다시떠오르기도 한다.
김금희 작가의 크리스마스 타일은 그렇게 삶의 어느 한 순간에 자리하고 있는 오래된 기억과 그 기억들이 꺼내놓는 인물에 관한 이야기로 채워져 있다. 소설집에 실린 몇 편의 소설은 릿터에서 접한 작품들도 있었지만 천천히 다시 읽었다.
이야기가 이야기끼리 포개지는 부분. 딱 맞는 퍼즐 조각을 찾아가는 것 같은 재미가 있는 연작 소설집이었다.
그러니까 눈 내리는 희귀한 부산의 크리스마스에 우리가 했던 일들은 겨우 그런 사실에 대해 알게 되는 것 아닌가. 모두가 모두의 행복을 비는 박애주의의 날이 있다는 것. (크리스마스에는, 305쪽) _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