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나타났다 05

쌈마이

by 기록 생활자

8. 은희


그는 하겠다고 대답했다. 아니, 한다고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별로 선택의 여지가 없는 삶을 살고 있는 행색이었으니까. 그에게 딸 아이가 싫어할 법한 아저씨 스타일을 알려줬다. 그는 입고 온 양복 재킷 안주머니에서 작은 수첩을 꺼내 사무용 볼펜으로 열심히 메모했다.


“그이도 왼손잡이였어요.”


그는 그 소리에 메모를 하다말고 나를 흘낏 쳐다봤다.


“왼손잡이가 흔치 않긴 하죠.”


그리고 그는 수첩 쪽으로 고개를 떨어뜨렸다. 메모한 내용을 살피는 것 같았다.


“쌈마이네요.”


“네?”


“따님이 싫어하는 부류.”


“쌈마이가 뭐죠?”


“단역 배우라는 뜻이죠. 삼류, 웃기는 놈, 덜 떨어진 놈. 하류 인생이죠, 한마디로. 쌈마이는 결코 주연이 될 수 없죠. 주연 주변이나 얼쩡거리다가 칼 맞아 죽거나 언제 있었냐는듯 홀연히 사라지죠. 사라져도 아무도 모르고. 그런 역할이라면 자신 있어요. 익숙하니까.”


그는 그렇게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조금은 슬퍼 보이는 자조 섞인 웃음이었다.


“그런데 실례가 안 된다면 뭐 하나 여쭤 보고 싶은데…“


“말씀하세요.”


“왜 남편이 죽었다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뚜렷한 근거가 있나요?”


근거라…근거 따윈 없었다. 솔직히 그렇게 생각하는 쪽이 마음이 편해서였을 수도 있다.


“아뇨, 근거는 없어요. 하지만, 살아있다면 돌아오지 않을 리가 없으니까요.”


“남편을 믿고 계시는군요.”


“믿는다기보단 아직 사랑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는 내 말에 놀란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나 역시 그렇게 말해놓고 적잖이 놀랐다. 어쩌면 그보다 내가 더 놀랐을 것이다. 당혹스런 얼굴을 감추기 위해 짐짓 태연한 척 말했다:


“그럼, 언제가 좋을까요? 첫 만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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