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나타났다 06

약속

by 기록 생활자

9. 솔꽃내


“왜 하필 생일이야?”


엄마가 아빠와 약속 장소를 잡았다며 날짜와 시간을 일러주었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 선물이야, 뭐야? 생일 선물 이걸로 퉁치려고?”


“왜? 싫어? 아빠가 그날 네 생일이니까 축하해주고 싶으시대.”


“내 생일을 기억하는 사람이 그동안 감감무소식이다 이제야 나타나서 새삼스레 챙긴대?”


“싫어?”


나는 대답 대신 방으로 돌아와 문을 쾅 소리가 나게 닫고 방문을 걸어 잠갔다.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어 올라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생일을 잊지 않았단 말이지. 그랬는데도 내 생일에 소식 한통 없었단 말이지. 어떻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 아빠는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왠지 모르게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다. 그러다 문득 나도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된 것일까? 어쩌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쪽은 나뿐인지도 몰랐다.


실제로 아빠와 엄마는 서로의 존재를 잊은 채로 긴 세월을 건너왔고 그런대로 잘 지내왔는지도 모른다. 이제와서 아빠를 찾는다는 것이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는지 모른다. 헤어진 부부가 십수년 만에 우연히 거리에서 재회해 서로 인사를 나누고 안부를 묻다가 헤어지는 것처럼 가볍게 만나고 돌아설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어느날 갑자기 사라진 아빠를 엄마는 애써 찾지 않았다.


일본에는 몇 년 전에도, 그리고 최근까지도 자발적으로 실종되는 사람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신문 기사를 통해 접했던 적이 있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들을 ‘증발된 사람’이라 부른다는 것도. 살다가 싫어져 헤어진 것처럼 엄마는 증발된 것처럼 사라진 아빠의 부재를 덤덤히 받아들였다.


어쩌면 엄마의 그런 태도 때문에 나 역시 아빠의 부재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는지도 모른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아버지의 자리는 내게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지워져 있었다. 크레파스로 그리는 가족 그림 속에서 아빠는 늘 지워진 존재였고 엄마와 나만이 그려진 가족 그림을 나는 자연스런 가족의 풍경으로 받아들였다.


따뜻한 저녁 식탁도, 온기도 없는 차가운 집. 그렇지만 그건 사실이었고 어린아이의 눈에 비친 있는 그대로의 가족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새삼스레 그 가족 그림 속 풍경에 의문을 가지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아빠를 만나야겠어.”


그리고 그날 저녁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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