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케이크
10. 상식
“생일이요?”
그녀는 약속 장소와 시간을 얘기하며 그날이 딸 아이의 생일이라고 덧붙였다.
“케이크를 준비해야 되겠군요.”
그녀는 자신이 준비하려 했었지만 내 말을 듣고 보니 내가 준비하는 것이 그림이 좋을 것 같다며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준비해달라고 부탁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라는 것을 사러 빵집을 여러 군데 들렀지만 찾을 수 없어 마지막으로 들른빵집에서 여종업원에게 물어보니, 아이스크림 케이크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서 사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때마침 그 빵집 맞은편에 그 아이스크림 가게가 있었다.
나는 영어도 제대로 읽지 못하지만 그곳이 아이스크림 가게인 것만은 분명하게 알아볼 수 있었다. 가게의 유리문에 아이스크림 사진이 떡하니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게 문에는 커다란 분홍색 숟가락이 손잡이 대신 달려 있었다. 가게로 들어서니 유리 진열장 안에 갖가지 색과 모양으로 멋을 낸 아이스크림 케이크가 들어 있는 것이 보였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생글거리며 다가오는 종업원에게 대답 대신 손가락으로 가장 크고 화려해 보이는 케이크를 가리켰다. 종업원은 진열장 안에서 케이크를 꺼내며 초가 얼마나 필요한지를 물었다.
“그러고보니 나이를 물어보지 않았군.”
“예?”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은 종업원의 눈이 커다래졌다.
“초는 됐어요. 얼마죠?”
그렇게 말하며 바지 뒷주머니에서 재빨리 지갑을 꺼냈다.
“선물이라니요?”
케이크만 덜렁 준비해 가는 것이 마음에 걸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떤 선물을 준비하면 좋을까 물었더니 그녀는 잔뜩 날이 선 목소리로 되물었다.
“생일 케이크만 덜렁 사 들고 가자니 좀 걸려서요.”
“뭐가 걸린다는 거죠?”
“그렇잖습니까? 오랫만에 만났는데, 그동안 생일 선물도 못 해줬고…아이가 커가는 모습도…곁에서 지켜봐주지 못했는데…“
“그래서요?”
“작은 선물 하나 정도는 해 주는 게 맞지 않나 해서요.”
피식-그녀가 실소를 흘렸다.
“이봐요, 뭔가 크게 착각하나본데 당신이 걔 아빠라도 돼요? 댁은 연기자예요. 난 연출이고. 우리는 함께 어렸을 때 헤어진 아빠와 딸의 만남이라는 무대를 준비하고 있고요. 당신은 미리 얘기되지 않은 선물이라는 소품으로 우리의 무대를 망치려고 하고 있어요. 당신은 막이 오르면 무대로 뛰어 올라가 아빠를 연기하면 돼요. 불이 꺼지면 무대에서 내려오면 되고요. 당신이 내 아이의 생일 선물까지 준비할 필요는 없어요. 그건 어떤 부분에서는 월권이예요.”
“네, 잘 알겠습니다. 그럼 선물은 관두죠.”
“알겠어요, 그럼 이따 봬요.”
“네. 그런데 저는 배우가 아닙니다.”
“네?”
“그럼 이따 뵙겠습니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전화를 끊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배우라니…”
이마에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감색 양복 재킷 안쪽에서 손수건을 꺼내 땀을 훔쳤다.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받았던 그녀의 꽃무늬 손수건이었다. 돌려주려고 깨끗하게 세탁해왔는데 돌려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덥군.”
후덥지근한 공기가 느껴졌다. 양복 재킷을 벗어 팔에 걸피고 한 손에는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들고 약속 장소로 향했다. 무대로 향하는 배우가 아니라 흡사 도살장으로 향하는 소라도 된듯 무거운 발걸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