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
12. 상식
아이는 만나자마자 의심스런 눈초리로 나를 위아래로 열심히 훑었다. 그러더니 대뜸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이는 그녀에게 내가 정말 자기 아빠가 맞느냐고 묻더니 뛰쳐나가버렸다. 그녀도 나도 꽤 당황했지만 그녀는 아이의 그런 행동을 예상이라도 한듯 파우치에서 공갈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아, 케이크 값 드려야죠. 얼마 주셨죠?”
그녀는 가방에서 반지갑을 꺼냈다.
“케이크 값은 됐습니다. 그나저나 뒤따라가봐야 하지 않나요?”
“저거, 걔 주특기예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저는 가봐야겠습니다. 따라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가게를 뛰쳐나와 아이가 사라진 쪽으로 전속력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아이는 얼마 못가 햄버거 가게로 들어갔고 나도 따라 들어갔다. 햄버거 세트 하나와 콜라 두 잔을 주문했다. 원래 햄버거 세트 두 개를 시키려 했지만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사고 나니 남은 돈이 별로 없었다. 주머니를 탈탈 털어 주문을 하고 가죽 크로스백에서 호일에 싼 감자를 꺼냈다.
간간히 들어오는 대행 아르바이트만으로는 수입이 시원찮아 새벽마다 인력 시장에 나갔다. 일이 있으면 어떤 것이든 마다하지 않고 했지만 계속되는 경기불황 탓인지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공치는 날을 대비해 간단한 안줏거리를 넣어 다녔다. 싸고 요기도 되는 것, 조리하기 쉬운 것르로 찾다 보니 감자가 눈에 들어왔다.
새벽 일찍 나가 일감을 찾을 때는 끼니를 거르는 일이 다반사였으므로 돌아오는 길에 버스 안에서 감자를 먹었다. 며칠 공을 쳐서 기분이 꿀꿀할 때는 소주에 감자를 안주 삼아쓰린 속을 달랬다. 감자는 보기 좋게 식어 있었다. 군데 군데 타서 볼품없어 보이기까지 했지만 배가 너무 고팠다. 너무 허겁지겁 먹으면 허기져 보일까봐 좋아하지도 않는 콜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감자를 크게 한 입 베어 무는데 맞은편에 팔짱을 끼고 앉아 햄버거만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아이가 한마디 툭 내뱉었다.
“왜 그런 걸 먹어?”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고 감자를 목구멍으로 밀어 넣은 다음,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콜라를 한 모금 삼켰다. 햄버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둘러댔다. 내 가방에 감자가 들어 있는 이유를 솔직하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러면 아이는 더 실망할 테고, 나는 아이를 더는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왜 그토록 보고 싶어했던 아빠를 눈앞에 두고 전속력으로 달려 도망을 갔을까? 그래야만 했던 이유가 있었던 걸까? 나는 문득 궁금해져 아이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아이는 대답해줬지만 어쩐지 ‘거짓말’처럼 들렸다. 말하고 싶지 않았다면 대답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센 척하는 착한 아이라는 생각에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이는 싫은 티를 냈지만 분명 웃고 있었다.
13. 솔꽃내
“이제 뭘할까?”
그가 컵에 담긴 얼음을 와그작 와그작 씹으며 말했다.
“그걸 왜 저한테 물어봐요?”
“생일인데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생일이 뭐 별건가?”
“별 거지. 한 살 더 먹는 날인데.”
“새해에 떡국 먹어도 나이는 먹거든요, 나이 먹는 게 뭐 좋은 거라고.”
마음과는 다르게 벌처럼 톡톡 쏘아댔다.
“좋은 거지, 살아서 맞이하는 거잖아.”
“네?”
“생일이라는 건 말이야. 태어난 걸 축하하는 날이 아니야.”
“그럼 뭘 축하하는 날인데요?”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
“……”
“지금까지 무사히 살아온 걸, 그걸 축하하는 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