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누구나 무언가 기다리는 것이 있다
지난 주말에 친척의 감 농장이 있는 밀양에 다녀왔다. 밀양에 들어서니 ‘날 좀 보소 밀양 보소’라는 문구가 새겨진 관공서가 보였다. 밀양 아리랑을 개사한.
땡감으로 홍시를 만든다. 땡감 상태로 출하가 된다. 이미 너무 익어 홍시 상태가 되어버린 감들도 있었다. 올해는 감 농장에 늦게 와서 감 따는 일이 늦었다고 하셨다. 이웃의 다른 감나무를 보니 이미 텅 비어 있는 곳도 많았다.
이렇게 수확된 감은 감말랭이를 만드는 식품 회사에서 사가기도 한다고 했다.
감 따는 일은 처음 도전해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장대 끝에 감을 걸어 감주머니에 넣어야 하는데 가지가 단단해서 감을 톡하고 따내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하나 따긴 땄지만. 감 따는 건 남편한테 맡기고 박스를 접고 전지가위로 감 꼭지를 잘랐다. 짧게 잘라줘야 한다고 했다. 아이는 시키지 않았는데도 박스 포장을 돕고 싶다며 박스에 골판지를 넣는 일을 하고 5kg짜리 상자를 씩씩하게 날랐다. 어린이가 하기엔 힘든 일일 거 같아 힘들지 않으냐고 하니 괜찮다며 하고 싶다고 하더니 두 번이나 날랐다.
반나절 정도의 경험이었지만 가을을 느끼기엔 충분했고, 농사란 정말 품이 많이 드는 일이구나 새삼 느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감 나무 블루스라는 노래를 들었다.
감 따러 가세 내 님 줄 감 따러 가
따도 따도 못 따면 가지째 꺾으리니
-감 나무 블루스, 박원장
감 나무 블루스라는 노래의 가사에서 ‘따도 따도 못 따면 가지째 꺾으리니’라는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다. 감 나무 감은 따도 따도 끝이 없었다. 그래도 작년에 비해 파지 감이 많이 나오지 않았고 감 농사가 잘 된 거 같아서 (비록 나의 감 농장은 아니지만) 기분이 좋았다.
며칠 전 아이와 서점에 다녀왔다. 전날의 약속대로 서점에 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사고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 도착 시간을 가늠해서 알려주는 애플리케이션을 열어 시간을 보니 버스는 10분 뒤에 도착할 예정이었고 버스를 기다리며 아이와 단풍잎을 바라보았다.
시간의 흐름을 붉은 단풍나무가 나무의 몸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사이 어떤 여학생이 지나갔다.
“그냥 있는 거야“
말소리 뒤에 까르르 다소 가볍게 느껴지는 웃음이 꼬리표처럼 붙어 굴러다녔다. 아마도 버스의 시간을 알려주는 기계가 설치되어 있지 않은 버스 정류장에서 짐을 든 채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노인 두 명과 나와 아이를 보고 한 말이었을 것이다. 아마도 하염없이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보았으리라.
그 순간 ‘우리는 누구나 무언가 기다리는 것이 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버스든, 사랑이든, 꿈이든. 다가올 미래의 어떤 한 장면이든. 며칠 전에 수확한 감도 기다림 속에서 열매를 맺은 것이다. 기다림에도 연습이 필요할까?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기다림을 배우는 일일지도 모른다.
기다림을 가르치는 학교에 입학해 기다림을 배우는 일이 농사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시간도 흘러 겨울에 닿겠지. 시간 속에서 곱게 익어갈 열매를 기다리며 사는 일이 어쩌면 우리들의 삶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