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을 법한 디스토피아의 세계
있을 법해서 조금은 두렵게 느껴지는 디스토피아의 이야기였다. 이 소설집은 어떤 위기 의식에서 출발한 이야기의 모음집처럼 다가왔다. 고령화 사회의 암울한 미래를 그린 듯한 이야기(니니코라치우푼타)나 묻지마 범죄로 촉발되는 고립의 이야기를 심도 있게 다룬 이야기(노커)나 정보 과잉의 시대에서 가짜 정보와 올바른 정보를 쉽게 걸러낼 수 없는 문제에 대해 다룬 듯한 이야기(Q의 진혼)나 코로나19와 같은 바이러스로 인해 폐쇄된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움직이는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이동과 정동) 이야기를 읽으며 그러한 것을 느꼈다.
언제나 사람은 다가올 미래를 되도록 희망적으로 밝게 내다본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당면한 사회 문제를 디스토피아의 세계에 녹여낸 작품들의 모음집인 이 소설집은 언젠가 닥쳐올지도 모를 암울한 미래를 그리며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해결해야 할 과제를 생각하게 만든다. 생각하는 것만으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는 달라지는 게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야기하고 궁리하는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뚫고 나아갈 의지와 방법이 떨어져 나오기도 한다. 그래서 이런 이야기를 만들고 꺼내고 읽고 하는 것이 무용한 일만은 아니라 믿는다.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소설집이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야기는 만연하고, 창궐하고, 범람하고, 난무한다. 그것을 이야기의 개화開花라고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어쩌면 이야기하는 것이 더이상 설 땅을 잃어버린 시대의 끝에 와 있는지도 모른다.”*
뭔가 이대로는 좀 아닌 것 같은데 구체적으로 뭐가 아닌지 말해보라면 순식간에 그것이 무엇인지 혹은 무엇이 아닌지 모르게 되고 마는 상태로 나날을 보내고 있으며, 잘 전해질지 모르겠지만 이 소설집 가운데 절반은 그 혼란의 메모들로 빚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있을 법한 어떤 것과 있을 법한 모든 것 사이의 어디쯤에 당신이, 촉발되고 솟아오르고 흘러넘치고 울려퍼지고 자리잡으니.
*폴 리쾨르, <시간과 이야기2>, 김한식•이경래 옮김, 문학과지성사, 2000, 66쪽.
2023년 여름 구병모 (작가의 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