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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06. 2016

화양연화

마주보지 못하는 사랑

감독 왕가위

출연 양조위, 장만옥


양조위의 담배 피는 손, 함께 밖에서 사온 국수를 나눠 먹는 모습, 목소리가 듣고 싶어 그녀가 일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거는 양조위의 모습, 옛날 사람들은 비밀을 말할 곳이 없어 커다란 나무를 찾아가 그 밑에 흙을 파서 구덩이를 만든 후 거기다 비밀을 속삭이듯 말하고 흙으로 덮었다는 이야기, 캄보디아 사원에 가서 기둥에 난 구멍에 대고 그녀와의 사랑에 대해 털어놓던 그의 모습, 2046이라는 숫자가 인상 깊었다.  


델리스파이스의 노래 중에 '차우차우(아무리 애를 쓰고 막아보려해도 너의 목소리가 들려)'가 있다. 화양연화를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인데, 이 노래가 화양연화 보고 만들어진건가 싶은? 주인공 이름이 차우이고 옆집 여자가 일하는 사무실로 전화를 하고. 여자가 왜 전화했느냐고 물으니 "당신 목소리가 듣고 싶어서"라고 하는 장면을 보면서.

영화는 한 아파트에 이사를 가는 두 부부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작된다. 유난히 좁은 아파트로 이사를 가는 남녀의 모습을 보면서 왜 저렇게 좁은 곳으로 이사를 갈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복도만 좁았는지도 모르겠지만.


영화 화양연화

아무튼 복도가 좁고 아파트 한쪽에는 휴게실이 있다. 이렇게 좁은 공간을 영화의 배경으로 삼은 것은 의도적인 영화적 장치로 보였다. 좁은 복도는 사람을 밀착시키고 타인의 삶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이런 공간에서 '사랑'이 싹튼다니. 영화에 주로 등장하는 이 공간이 이 영화가 어떤 영화라는 것을 압축해서 잘 드러내주는 느낌이 있다. 보기 싫어도 보게 되고, 알게 되고, 들여다보게 되고, 누군가 들여다볼까봐 두려워지는.


영화 화양연화


이 공간 속에는 거울이 있다.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은 거의 등을 지고 있고, 거울 속에 비친 모습으로 상대방을 들여다본다. '마주볼 수 없는 사랑'의 이미지가 이 스틸컷 한 장에 모두 담겨 있는 느낌이다.

키샤스, 키샤스, 키샤스.

어쩌면, 어쩌면, 어쩌면. 키샤스, 키샤스,키샤스가 흐를 때 어쩌면 여기 아닌 다른 곳에서 그녀와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싱가포르로 함께 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그녀는 가지 않는다. 자신의 남편이 그의 아내와 외도를 저지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리고 그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으면서도 그녀는 선뜻 떠나지 못한다.

그리고 두 사람은 헤어지고 여자는 그 아파트를 떠나고. 남자는 다시 돌아와 그녀의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가 아파트를 떠났다는 사실을. 그러나 그녀는 다시 돌아온다. 그와의 추억이 있었던 아파트로.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의 아이를 낳아 키운다.  

남편과는 헤어진 것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정확한 것은 알 수 없다. 화양연화는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뜻하는 말이다.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절을, 함께 할 수 없었던 사랑에 관한 이야기였다. 마주보지 못하는 사랑, 은밀하게 속삭여야 하는 사랑은 슬프고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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