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기록 생활자 Dec 08. 2016

초록 물고기

우리 모두의 초록 물고기

영화 초록 물고기


그때 내가 초록색 물고기 잡으려다가
쓰레빠 잃어버렸었잖아. 그때 생각나?   


기차에서 심혜진을 만나지 않았다면 막둥이의 삶은 좀 달라졌을까?  어떤 사람과의 만남으로 내 삶에 변수가 생기고 그로 인해 내 운명의 방향이 달라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일이지만, 우리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면서 살아가고 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웃고 화해하면서.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면서 누굴 만나고 그로부터 무엇을 얻을것인가 하는 문제는 선택할 수 있다.
 
그러나 필연적 만남이라는 것도 있기 마련이어서 그 시기에 그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안됐을 일도 생기기 마련이다. 내적인 성장이나 외적인 성장에 있어서 어떤 사람과의 만남은 큰 영향을 주게 되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내 삶에도 그 사람의 삶에도 변화가 생긴다.
 
그것이 긍정적인 결과를 불러올지, 아닐지는 오직 신만이 알고 계신다.  그래서 막동이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 짧은 스침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켜 놓을지를.  전혀 알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영화 초록 물고기

20대의 중간 지점, 스물여섯의 나이에 막동이는 그녀를 만났다.  아니, 그녀의 스카프를 만났다. 보라색 스카프였던가. 바람에 날려온 스카프는 그의 얼굴을 덮었고 스카프를 돌려주기 위해 그녀를 찾았던 막동이는 몇명의 사내들에게 희롱(?)을 당하고 있는 그녀를 발견하고 그녀를 도와주려다 오지게 얻어 맞는다.
 
이때 한석규가 너무 리얼하게 얻어 맞아 표정이 아주 압권이었다. 그 표정이 없었다면 나는 초록 물고기를 끝까지 보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흠씬 두들겨 맞고 군대에서 받은 표창장으로 그것도 모서리로 기차 안에서 자신을 때린 남자의 머리를 뒤에서 찍고 도망가는 한석규의 비열함도 어쩐지 싫지 않았다.  


실제로 17대 1로 싸워서 이겼다는 이야기는 영화에나 등장하는 이야기이고 현실에서는 대부분 막동이처럼 도망가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 막동이의 모습은 매우 인간적으로 느껴졌었다.
 
집에는 공장 나간다고 속이고 다방레지를 하는 여동생과 파출부 일을 나가는 엄마에게 '내가 돈 많이 벌테니까 이런 일 하지마' 라고 큰소리는 치지만 그의 현실은 다방 레지를 하는 여동생이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는 용돈을 아무말 없이 받아 챙기는 것이다.
 

영화 초록 물고기

막둥이는 그저 초록 물고기를 잡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어렸을 때 초록 물고기를 잡으려다 쓰레빠만 잃어버렸던 것처럼 초록 물고기도 잡지 못하고 어항 속에 갇힌 물고기처럼 죽었다. 입을 벌리고 눈을 뜬채로.     
 
어렸을 때는 쓰레빠만 잃어버리면 됐지만, 이미 어른이 되어버린 그에게 세상은 더욱 큰 대가를 요구했다. 그가 잃어버린 것이 그의 목숨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가 무엇을 잃어버리고 그렇게 흐느껴 울었는지 그건 막둥이만이 알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들은 잃어버린 다음에야 그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것들도 있어서  막둥이에겐 어쩔 수 없이 잃어버리는 것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그러지 않으면 그 소중함을 쉬이 깨닫기 어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영화 초록 물고기


막둥이는 삶을 잃어버렸다. 그가 하찮게 흘려보낸 시간들 속에 존재하던 그의 삶.  앞으로 더욱 소중해질 수도 있고 달라질 수도 있었던 삶.


그걸 팽개친 건 막둥이 자신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가 잡고 싶어했던 초록 물고기는 그의 삶 그 자체는 아니었을까. 다만 그만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을 뿐인지도 모를.
 
막둥이가 그토록 잡고 싶어했던 초록 물고기는 지구상에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쫓고 있는가, 그리고 무엇을 잡으려 하고 있는가, 당신의 초록 물고기는 무엇인가? 라는 질문들을 영화는 끊임없이 내게 던지고 있었다.
 
비상구도 탈출구도 없이 시작된 이 삶 속에서.
 
초록물고기는 어쩌면  그 자체로 소중한 이미 시작된 그리고 각자 살아내야 하는 삶 그 자체인지도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러브레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