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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생활자 Dec 12. 2016

500일의 썸머

사랑은 다시 온다

감독의 특별한 메시지 (마치 전 여자친구에게 보내는 듯한)로 시작되는 영화. 500일의 썸머. 시작부터 큰 웃음 안겨주고 시작되는 이 영화는 시작부터 실제 이야기가 아닌 허구임을 강조한다. 만약 누군가가 생각난다고 하더라도 이건 그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하지만 특정인의 이름을 거론하며, 나쁜 년이라는 메시지를 날리는 걸로 봐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이 영화는 지금 연애를 하고 있는 커플보다는 실연한지 얼마 안된 사람이 본다면 더 좋을 것 같기도 하다.  


영화 500일의 썸머


이 영화는 건축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지만, 자신을 받아주는 회사가 없어 카드 회사에서 카드 문구를 쓰는 일을 하는 남자(톰)의 사랑이야기다.
 
썸머는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던, 톰 앞에 어느날 운명처럼 나타난다. 사장의 비서로 취직해 들어온 썸머는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는다. 그녀는 예쁘장한 얼굴과 4차원적인 엉뚱한 성격과 독특한 매력으로 사내에서도 인기가 높다. (여기서 썸머는 이름 그대로 계절을 뜻하기도 하고 썸머라는 여자를 뜻하는 것이기도 하다.)
 
톰은 썸머를 500일동안 만난다. 그러나 썸머는 톰을 만나면서 둘 사이가 연인 관계로 묶이고 종속되는 것을 피하려는 여자로 그의 속을 태운다. 썸머를 운명이라고 믿는 톰은 그런 썸머로 인해 매번 상처를 입지만, 썸머를 떠날 수가 없다.
 
그만큼 그녀가 그에게 특별한 여자였기 때문이다.


영화 500일의 썸머

썸머는 그러나 그런 톰이 부담스럽기만 하다. 그래서 둘 사이를 친구관계로 이름 붙인다. 썸머는 운명을 믿지 않는 여자였다. 썸머의 부모님이 어렸을 때 이혼을 했기 때문이다. 운명적 사랑을 믿지 않는 여자와 그런 그녀를 운명적 사랑이라 믿는 남자의 이야기.
 
그 끝은 어떨까?
 
둘은 특별한 사이가 되지만, 썸머는 결국 톰을 떠난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느날 이별 선언을 한 썸머와의 이별을 톰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괴로워한다. 톰은 썸머가 떠난 후 회사를 떠나 그토록 원하던 건축 디자이너로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영화 500일의 썸머

그리고 썸머는 톰을 떠난 뒤 다른 남자와 결혼한다. 다른 남자를 만나 결혼까지 하는 썸머를 이해할 수 없는 톰. 톰은 썸머와 이별한 이후에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되고, 운명적 사랑이라는 건 없다고 믿게 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된 썸머는 "너와 만날 때는 몰랐던 걸 깨달았다"고 말하며 운명적 사랑이라는 건 있는 것 같다고. 네가 옳았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단지 내가 네 운명의 상대가 아니었을 뿐이라고.


영화 500일의 썸머

그런 말을 하고 떠나는 썸머의 행복을 빌어줄 수 밖에 없는 톰은 씁쓸할 뿐이다. 하지만, 면접을 보러 갔던 한 회사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는 톰은 다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기로 마음 먹는다. 그 여자의 이름은 공교롭게도 가을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이었다. 여름(썸머) 이 떠난 자리에 가을(새로운 사랑)이 온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 마음이라는 것도 시시각각 변한다. 변하는 것들 앞에 서서 그저 바라볼 수 밖에 없는 우리들의 연애는, 그래서 그만큼 더 아플 수 밖에 없지만, 봄이 지나 여름이 오고 여름이 가고 다시 가을이 오듯이 사랑도 사람도 가고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계절이 변하는 것을 아파하거나, 안타까워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를 어쩔 수 없는 자연의 변화로 받아들이듯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도. 사랑도 그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떤식으로든 사람을 변화시키는 '사랑'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500일동안 썸머를 만나면서 톰이 행복해 했던 것처럼 그 사랑은 당신의 시간들을 행복으로 물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간에 대한, 그 시간을 경험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은 쉽게 변하기도 하고  한 마음에게서 다른 마음으로 떠나기도 하지만, 함께 했던 시간들 속에서 나누었던 감정과 행복은 진짜다. 그것이 진짜라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고, 그래서 의미가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나 사랑 때문에 행복했다가, 그 사랑이 떠나면 아파도 하지만 다시 사랑을 하는 것 아닐까?
 
봄이 되면 메말랐던 땅 위에서 새싹이 돋아나는 것처럼. 꽃이 져도 봄이 되면 다시 피는 것처럼. 다시 시작할 수 있다면, 지나간 사랑은 아픔은 아니다. 그것은 그것대로 아름답게 남는다. 정말 불행한 건 그 사랑의 아픔 때문에 다시는 누구도 만날 수 없고, 사랑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않다면, 모든 사랑은 아프게 끝나더라도 그 사랑 속에 존재했던 행복들 때문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것 같고, 그래서 "모든 사랑은 아름다운 것"이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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