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권기범 Jul 15. 2016

'팝콘 브레인'이 된 신문기자

집중력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초등학생이었던 시절, 한 학기에 한 번씩 받아 들던 성적표에는 항상 이런 평가가 쓰여 있었습니다.


'학습 능력이 뛰어나나(자랑 아님ㅎ), 주위가 산만합니다.'

또는

'주위가 산만해 집중하지 못하나, 성적이 뛰어납니다.(자랑 아님ㅎ)'


  산만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고, 국어사전을 찾아보기도 귀찮았던 저는 '산만하다'는 말은 으레 선생님들이 써주는 상투적인 문구인 줄 알고 살았습니다.

(그게 안 좋은 뜻이라는 걸 안 건… 중학생 때였던 걸로… )


당시 제 고향에 혼세마왕이 살았다면, 아마 저를 숙주로 삼았을 겁니다.


  요즘 같았으면 ADD(주의력결핍장애)로 병원 치료를 받았겠지만(…) 다행히 그 시절엔 그런 게 없었고요.

  나이를 먹으며(정확히는 수능을 준비하며) 산만함은 잦아들었고, 반대로 집중력이 높아졌습니다.


그리고 기자가

되었습니다…만?


  아시다시피 기자는 순간적으로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아침 조간신문을 15분 안에 훑어보고 보고를 해야 할 때, 혹은 15분 만에 단신 3개를 보내야 할 때 등등(…) 여전히 다소 산만한 저였지만, 다행히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디지털 부서에 발령이 났고, 1년 반을 머물렀습니다. '스낵 컬처'에 익숙해지기 위해 긴 글 대신 짧은 글을 찾았고, 30초짜리 영상이나 4분짜리 웹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분히 고의적으로 '산만한 현대인'이 되기로 한 거죠.


  그리고 다시 취재부서로 돌아온 3주 뒤, 제 머리에 뭔가 사달이 났다는 걸 깨닫고 말았습니다.


아아아 집중력이라는 것이 사라졌습니다... 출처: SK Energy 블로그


제가 느낀 현상은 이렇습니다.


1. 신문을 못 보겠습니다


  신문을 못 읽겠습니다. 정확히는 10매 이상 되는 기사들을 진득하니 읽지 못하겠습니다.

  그리고 1면부터 36면까지 훑어 읽어 내려가는 그 쉬운 일도 버거워졌습니다.

  이해력이 떨어졌다는 느낌도 있었지만, 정확히는 읽은 글들이 머리로 저장되는 게 아니라 어딘가로 훌훌 날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2. 집중을 못합니다


  마치 초등학생 때의 저를 보는 것 같습니다.

  10분 정도 A라는 주제를 취재하다가, 갑자기 다른 생각이 나서 또 10분을 B라는 내용을 살펴봅니다.

  그러기를 2시간가량 반복하면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저도 헷갈리게 됩니다.

  취재 성과가 낮은 것은 물론, 웹브라우저와 핸드폰이 혼란해져 더욱 정신이 없어집니다.


3. 자꾸 멀티태스킹을 시도합니다


  타사의 신문을 보고 있는데, 자꾸 손이 근지럽습니다. '캐주얼 게임을 하면서 신문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듭니다.

  가끔은 일을 하다가도 아무 생각 없이 스마트폰을 켭니다. 습관적으로 2가지 일을 동시에 하기 시작했습니다.

  당연히 제대로 되는 건, 두 개 중 하나도 없습니다.


  그… 그렇습니다. 전형적인 '팝콘 브레인'의 소유자가 되어버린 겁니다. 초등학생 때 그 고약한 습관이 디지털이라는 촉매를 만나 다시 재발하고 만 것이죠.



인사이트는

팝콘 뇌가 아니라

사색에서 나옵니다


  디지털은 정말 중요합니다. 스낵 컬처를 이해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새로 등장한 새로운 플랫폼에 어떻게 적응할지 연구하고, 가끔은 그 시장 한가운데로 직접 뛰어드는 것도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뭔가 본질적인 것을 잃고 있는 건 아닌지, 매번 뒤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많은 것이 바뀌어버리기도 하니까요. 많은 과학자와 IT 업계의 거물들이 인문학과 사색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 아니었을까요.


  당분간 e북을 사 모으는 버릇을 잠깐 고치려고 합니다. 되도록이면 책 한권만 들고 방으로 들어가 보려 합니다. 이동 중에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듣던 즐거움도 잠시 접어두려 합니다.


구차하게 또 잡스를 꺼내드는 나란 기자 상투적인 기자(…)


잘못된 것을 되돌리려면,

그만큼의 고통이

필요한 법이니까요.


(내 뇌야 미안하다ㅠ)

작가의 이전글 페이스북 인스턴트 아티클이 한국 한정 무매력인 이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