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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19. 2019

알아두면 쓸데없는 기자들의 말버릇

"아 그러니까" "아니 근데" "에이"

18일 방영된 JTBC 썰전 방송을 보던 중이었다. 공시지가 인상 논란에 대해(경알못이라 내용은 잘..) 열심히 이야기하는 이철희 의원은 꽤 격앙돼 있는 듯했다.


"아니 그러니까 0.4%를 두고.. 모든 사람들이 세금 폭탄 맞았다, 또는 징벌적 부과라는 것은 틀렸다는 말이에요." (이 의원)


그 모습을 빙긋빙긋 웃으며 지켜보던 이진우 기자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아아, (정부 입장에서는) '세금 폭탄'이라는 말이 부담스러우니까?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같이 방송을 보던 홍보 전문가 J가 한 마디 했다. "어우 기자들 저렇게 말하는 거 진짜 스트레스받아!" 나는 당황했다. 나도 즐겨 쓰는 표현이었기 때문에.. "아아 그러니까.."


J의 설명은 이랬다. 브랜드 홍보를 담당하던 시절, 부정적 이슈를 두고 전화를 걸어온 기자들이 특정한 코멘트를 끌어내려고 할 때 저런 말투를 쓰곤 했다는 것이었다. 아무리 방침대로 설명을 해도 전화 건너편에서는 "아 그러니까 ○○○이라는 거죠?"라는 말만 고구마처럼 돌아오곤 했다는 것.


그러고 보니 나도 그랬던 적이 있는 것 같은데, 라는 생각이 들어 뜬금없이 정리해본다. 알아두면 쓸데없는 기자들의 대화 습관 top 3! (물론 주관적인 기준이다. 드립을 허용하지 않는 슬픈 팩트체크 본능...)


표정이 참 기자같다. 출처: 넷플릭스(...jtbc 아닙니다 사장님!!!)


1. "아아 그러니까~" "아아 ~~ 라고요?"


이것은 바로 정리 본능이다. 취재원이 구구절절 내뱉은 말을 핵심만 추려 정리해야 하는 습관 때문이다. 말의 요지를 파악해 기사에 적합하게 녹여내야 하는 기자들의 직업병이다.


상대의 긴 말을 짧게 압축하는 능력은 연차가 어느 정도 차면 점차 올라가기 마련이다. 그러나 똥인지, 똥인지 찍어 먹어봐야 아는 수습기자 시절에는 그러지를 못한다. 그래서 코멘트 한두 줄을 위해 바쁜 교수님들을 붙잡고 30분 동안 괴롭히는 일도 생긴다.


노하우가 점점 올라오다 보면 취재원의 구구절절한 설명을 습관적으로 정리하고 싶어 지기 마련. 한 이슈에 대해 여러 가지 예시와 이론을 들어가며 설명하는 취재원의 말을 '딱 한 줄'의 요지로 줄이고 싶은 것이다. 그게 가능하냐고? 1, 2%의 무리가 있다 해도 어쩔 수 없다. 우리는 기사를 쓰는 사람이지 논문을 쓰는 사람이 아니니까.


이 습관이 좋은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취재원으로부터 일종의 컨펌을 받을 수 있기 때문. 내가 "아 그러니까 XXX라는 말씀이시죠?"라고 물었을 때 상대방이 '그렇죠' '네 그래서'라는 말로 받아준다면, 이는 내가 취재원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잘 따라가고 있다는 뜻이 된다. 반대로 상대가 '아니 그게 아니고' '아니 그것 보다는'이라는 말로 받아친다면? 대화의 흐름을 다시 잡아가야 한다.


두 번째는 취재원의 횡설수설을 한 줄기로 모아나갈 수 있다는 점. 취재원은 녹음기나 유튜브 방송이 아니다. 당연히 기자와 함께 커뮤니케이션하면서 대화를 이어나간다. 이때 기자들은 취재원의 '말하고 싶은 욕구'를 잘 자극하기 위해 "그러니까~"를 쓴다. 일종의 추임새다. 기자가 툭툭 내뱉는 정리를 확인해주는 과정에서, 취재원은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인사이트를 발견하거나 참신한 해석을 즉석에서 내놓기도 한다.


그러니까 혹시 기자들이 "아아 그러니까~"를 시전 한다면 대화를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생각해주시길. 물론 '택도 없는' 정리를 들이댄다면 끊임없이 "아니 그게 아니고"를 반복해주셔야 한다.


아, 이쯤에서 '그래서 썰전에서 이 의원의 반응이 뭐였는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바로 아래와 같았다. 귀를 만지며 "아니 팩트가 안 맞는데.."라고 했다. 굳이 한 마디로 정리하라면(으 정리벽) '머ㅡ쓱'에 가까웠는데, 이 정도 반응이라면 이 기자의 정리가 딱 맞았다고 볼 수 있겠다.


이건 사실상 ㅇㅈ각으로 봐야겠죠? 출처: 넷플릭스(!!!)


2. "아니 근데~"


이 말을 처음 들어본 기억은 아마 '나꼼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물론 나는 그때 기자도 아니었다. 그리고 나중에 우연히 주진우 기자의 책을 보았는데 그곳에도 이런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아니 근데에~~" 이건 기자들이 일종의 '국면 전환용'으로 쓰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는 공식적인 것보다는 사석에서 주로 쓴다.


사실 이는 뭐 대단한 것도 아니다. 우리도 평소 친구들을 만날 때 많이 쓰지 않는가. 엉덩이를 살짝 들었다 떼며, '아 이거 정말 내가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 참에 한번 물어볼게!'라는 느낌으로 말이다. "아니 근데 너 그때 만났다던 썸녀는 어떻게 됐어?" "아니 근데 그때 부장님은 왜 그렇게 짜증을 한 바가지 부린 거야?" 뭐 이런 용례가 있겠다.


이쯤에서 "아니 근데"를 쓰는 사람들의 심리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것 같다. 능청스럽게 정말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기 위해서다. 그것도 상대방에게 조금은 구체적이고 명쾌한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 약간의 '호들갑'을 양념으로 치는 것이다.


그러니 기자들이 "아니 근데"를 시전 한다면 조금 디테일하게 이야기해주시길 바란다. 혹은 이슈에 대한 호불호를 분명히 표현해주신다면 최고! 그러고 나면 아마 당신을 바라보는 기자의 표정에서 '상쾌함'(쾌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아니 근데 왜 누리꾼들은 이런 짤을 만드는 거지? 출처: 원저작자 찾슴미다..


3. "에이~"


능청능청. 거짓말하지 마. 그렇게 오피셜 한 코멘트 말고, 정말 속마음을 말해봐. 정제되지 않은 너의 속마음을 꺼내봐!!!!!


'에이'에는 기자들의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고 본다. 아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상대방이 조금만 더 솔직해졌으면 하는 마음에서 약간의 애교를 섞어 졸라 보는 것이다. "에이 시장님 그래도 한번 살펴봐 주셔야 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과장님 경찰이 아직까지 압수수색도 안 했다는 게 말이 돼요?"


능청스러움은 어떻게 보면 기자들이 갖춰야 할 소양 중 하나다. 아무것도 모른 상태로 취재원을 만나서 능청스럽게 다 아는 척을 해서 중요한 자료를 받아내거나 특종을 물어왔다는 후일담을 누구나 하나씩은 갖고 있다. 나는 그 능청스러움이 부족해서 두고두고 후회 중이기는 하다만.


수습기자 때 이런 적은 있었다. 하루에 한 번씩 찾아가던 경찰 지구대가 있었다. 내가 매일같이 찾아가자 그곳 근무자들도 내가 귀찮거나, 반갑거나 애매모호한 감정이었나 보다. 한 번은 정말 피곤에 쩔어 아무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또 그곳을 찾았다.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인사를 하자마자 팀장님이 말했다. "권 기자 오늘 진짜 조용해 사건이 없어." 나는 순간 욱했던가, 혹은 귀찮았던가 그랬다. 뭐 새삼스레...라는 생각이 들어 아무 생각 없이 구시렁거렸다. "에이 언제는 뭐 사건 있었어요?" 그러자 나를 뻔히 보던 팀장님이 팀원들을 바라보며 한마디 했다.


어우~ 이제 기자 다 됐네? 흐하하ㅏㅏㅏ.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는 걸 보면 내 나름대로 인상 깊었던 순간이었나 보다. 기자들은 뭐 그렇게 경험을 통해 완성된다.


"에이"를 시전할 때 표정은 아마 이런 것이었지 않을까? 아니 이건 '음흉'인가... 출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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