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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Apr 05. 2019

저…사실, 신문에 다 있었거든요

바뀌어도 바뀌지 않는 것이 있다.

요즘 인터넷 커뮤니티에 이런 게 돌아다니더군요.


출처: 인터넷 커뮤니티 .... (같지만 사실 원본 출처는 동아일보잖아?!)


1920~30년대 동아일보에 실렸던 '응접실'이라는 코너 내용 중 재미있는 것을 골라 소개한 겁니다.


'응접실'은 독자들이 짧은 질문을 보내오면 기자가 답을 해주는 짧은 꼭지인데요.


하나씩 읽다 보면 질문과 답이 '신문은 딱딱한 것'이라는 편견을 깰 만큼 유쾌하거나 지금 봐서는 '와 저렇게까지 비꼬아도 되나' 싶은 내용이 많아서 신기합니다.


예를 들자면 이런 내용입니다. (맞춤법과 표현만 다소 수정했습니다)

독자: 올해 열여덟 살의 애연자, 담배가 해롭다니 그만둘까요? 그대로 피울까요? (인천 사는 독자)
기자: 해로운 줄을 알면서도 가부(可否)를 남에게 물으시니 단연(금연)은 십중팔구로 틀렸다고 생각됩니다. 잘 헤아리십시오.


이전의 '질의응답'은 법률 지식을 물어보는 딱딱한 내용이 많았는데, '응접실'은 다릅니다. 독자와 기자들의 즐거운 놀이터처럼 운영되었습니다. 이런 것도 있네요.


독자: 한 남자가 한 여자를 마음에 두었는데 그 여자는 그 남자의 제일 친한 친구를 마음에 두었으니, 그 친한 친구가 어떻게 하여야 좋겠습니까?
기자: 문제는 간단합니다. '친구 남자가 그 여자에게 대하여 마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데 문제는 귀결이 됩니다. 만일 마음이 있다면 우정과 연애의 싸움이니 결국 승리는 친구 남자에게 있을 것이나, 취사(선택)는 자유이겠지요. 그러나 만일 마음이 없는 경우에는 그 사랑에서 피하는 것이 양책(상책)입니다.


(예로부터 '아는 사람 이야기'는 누구 얘기다..?)이쯤 되면 이게 뭔가 싶은데요. 또 하나 볼까요?(자꾸 보게 된다.. 중독성)


독자: 응접실 부활 만세! 만만세! 인제 다시는 문 닫지 말아 줘~
기자: 그래 보리다. 그러나 만세는 삼가십시오. 잘못하면 제령7호에 걸리시리다.


여기서 제령7호란 일제가 3·1 운동 참가자들을 신속히 처벌하기 위해 만든 제령 제7호 '정치에 관한 범죄처벌의 건'입니다. 기자 특유의 시니컬함이 묻어나는 대답이었네요.


당시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것도 많은데요. 예를 들면 이런 것입니다.


독자: 요새 남학생들은 길에서 여학생만 만나면 눈이 빠지게 보기만 하니 왜들 그 모양인지요.(시내 여고생)
기자: 남학생이 눈이 빠지게 보는 줄을 어떻게 아시는지가 우선 궁금합니다. 그 대답을 하시면 다시 대답해드리겠습니다.


아아, 자꾸 옛날 신문을 뒤져보면 안 되는데..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소개할까요? 이번은 '닉네임'을 눈여겨보셔야 합니다.


독자: 남자는 유처취첩(부인이 있지만 첩을 취한다), 여자는 불경이부(두 남편을 섬기지 못한다)라 하니 대관절 이 법을 누가 제정하였습니까? (재(在)동경 절대미인)
기자: '충신은 불사이군이요 열녀는 불경이부'라는 왕촉의 말이 있지만은, 유처취첩하는 것은 어떤 남자들의 월권적 행동이지 법적 제정이야 있을 리 없습니다.


'동경에 사는 절대미인'님은 누구셨을까요… 아무튼, 지금 시선에서 보면 다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도 있으나 그 당시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위트를 엿볼 수 있는 내용들로 가득합니다.



어 근데 이거 어디서 많이 봤는데


음, 그런데 잘 생각해 보니 이 '응접실'이라는 꼭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으신가요?


저는 이걸 보고 네이버의 '지식in'이 떠올랐습니다. 세상의 온갖 지식을 묻고 답하고, 때로는 '드립'으로 질문과 답이 오가고, 답변자가 말실수라도 하거나 잘못된 정보를 올리면 다음날 '대댓글'로 비판 글이 올라오는 곳 말이죠. 아아, 지식in은 사실 193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었군요.


사실, 옛날 신문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면 이런 비슷한 생각이 자꾸 듭니다. 신문 속에 들어 있는 내용과 비슷한 콘셉트의 '무언가'가 2019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보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면 1면 제호는 '네이버 로고' '앱 아이콘', 1면 광고는 '포털사이트 메인 배너 광고' 정도가 되겠고요, '인사 및 부고'는 페이스북 타임라인에서 '본인 피셜'로 자주 접하곤 하죠. 옛날 신문에서 많이 봤던 '통속적인 소설'이나 '유머글'는 요즘은 모든 커뮤니티가 사람이 모이도록 유도하는 '필수 요소'에 가깝습니다. 물론 날씨는 스마트폰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 정보이고요, '바둑 기보' 코너는 트위치 생방송 정도 되려나요?

직접 하나씩 대입해보세요. (왼쪽의 시화? 는 인스타그램 같지 않나요?^^)



"하늘 아래 새로운 것 없다"


이런 말이 생각납니다.


"야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어디 있냐?"


몇 년에 한 번씩은 반복될 법한 기획 기사를 썼거나, 유행하는 형식이나 작법을 재활용해 기사를 쓴 기자에게 농담 삼아 이렇게 던집니다   '뭐 이런 뻔한 기사를 썼냐?' 그러면 상대는 위의 대답으로 받아치고는 하는 겁니다.


콘텐츠와 플랫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어디 있을까요. 20세기 신문에서 21세기의 콘텐츠가 발견되는 이유일 겁니다.


지금 사람들이 '바이럴 콘텐츠'라고 부르는 다양한 시도들이 신문에는 이미 모두 녹아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1면에는 중요하고 어려운 기사를 싣지만, 2면, 3면, 계속해서 뒤로 넘어가다 보면 그 속에는 '황당한 사건'이나 '야한 소설' '통쾌한 만화' '유용한 정보'가 모두 들어 있습니다. 개편하기 전 네이버가 메인 화면을 운영했던 순서(뉴스 연예 스포츠 등등)와 미묘하게 비슷한 것 같다는 건 제 뇌피셜만은 아닐 겁니다. 문제는 수십년간 신문을 재미 없는 곳으로 만들어버린 우리의 타성이겠죠.


신문이라는 존재를 하나의 고정된 형태로 본다면, 신문은 구닥다리가 맞습니다. 그러나 신문을 '콘텐츠(news) + 플랫폼(paper)'이라는 관점으로 나누어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집니다. 신문은 20세기의 '종합 콘텐츠 제공자'이자 '최대 플랫폼'이었습니다. 디지털 사회에서 플랫폼이 다변화하며 그에 적응하지 못해 구차한 처지가 됐지만, '종합 콘텐츠 제작자 집단' 또는 '콘텐츠 제작자들을 관리해왔던 기업'으로서의 노하우는 누구보다 빵빵하다는 말입니다.



기자들이여 자학하지 맙시다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젊은 기자들 사이에 퍼지고 있는 인식 때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신문의 콘텐츠 가치 판단 방법은 완전히 잘못됐다'고 생각하시더라고요. 저는 여기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콘텐츠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바뀐 플랫폼'과 '바뀐 정보 환경' 속에서 가장 들어맞는 형태로 재가공되고 있을 뿐입니다. 생각보다 바뀐 것은 많이 없습니다.


결국 지금 시기 신문 기자들에게 필요한 덕목이란 '완전히 새로운 콘텐츠를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의 선배들이 100년간 키워왔던 '얘기되는 것을 찾아내고 키울 수 있는 직관적인 감각'을 더욱 갈고닦아 현재에 맞게 다듬고 적용하는 것이 필요한 때입니다. 물론, 이는 '과거를 고집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창조적 재해석이고 수용적 탐구여야 하겠죠.


어쨌든 기자들은 '우리는 얘기가 안 된다'는 자학을 그만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짜 '자학'을 해야 하는 것은 '신문'이라는 플랫폼과 그 브랜드 파워가 현재도 10~60대에 걸쳐 막강하며 동시에 영원할 것으로 믿고, 또한 자신의 판단력은 언제나 영민한 동시에 모든 대중이 원하는 것과 한치의 오차도 없을 것이라고 착각하며 살고 있는 '누군가'일 겁니다.


아니 그래도 신문이라면 이 정도는 근엄 진지해야 하는 거 아니야..? 네 아닙니다.



한 줄 정리: 폼은 일시적이지만 클라쓰는 영원하다.



덧. 리드에 언급했던 링크를 공유합니다.^^

최근 유행하는 펌글의 원본 게시물: http://egloos.zum.com/woowoo/v/395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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