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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Jun 14. 2019

독자의 비아냥에 대처하는 일제강점기 기자의 자세

[일제시대판 개드립 열전 4] 1936년 돌아온 '응접실' 다시 보기

1935년 '동아 살롱' 이라는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러운 이름으로 돌아왔던 1문 1 답 코너는 1936년 3월 다시 '응접실'이라는 원래의 코너명으로 바뀌어 돌아옵니다. 여기에 설문 방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는데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첫 번째, 설문은 한 사람이 한 번에 한건만 하는 '일건주의'를 엄수함.

두 번째, 용지는 엽서로 하되 내용은 간결한 것 위주.

세 번째, 투함은 동아일보사 편집국 '응접계'로.


아재들만 안다는 '줄을 서시오~~'



귀여운 시비는 말장난으로,

화가 나면 도리어 역정


그런데 이런 원칙을 보고 이런 시비를 거는 이도 있었죠. 1936년 4월 23일 내용입니다.


독자: '1인 1차 1건 주의'라니 1전5리(돈의 단위)... 돈은 많지 않지만 널따란 지면을 공연히 허비하게만 되니 귀하와 체신국장과는 대체 몇 촌간입니까?


이 말을 해석하면 이렇게 됩니다. "한 사람이 한 번에 한 건만 물을 수 있다니! 돈도 없는데 엽서 하나에 한 건의 질문만 써서 보내라니! 엽서에 빈 공간이 너무 많다! 너 체신국장(현재의 우정사업본부장)이랑 친척이냐???!!"


이렇게 비아냥대는 독자를 보면 요즘 기자들은 뭐라고 생각할까요? 악플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냥 모른척하고 말 것 같은데요. 그 시절 기자는 악플에도 꿋꿋이 대꾸해줍니다. 이런 내용의 질문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지면까지 할애해 답변해준 데서 그 시절의 유쾌한 갬성이 느껴집니다.


기자: 한 번에 한 건씩만 보내라는 건 절대 조건입니다. 정리상 여러 가지 점으로 부득이 이러지 않고는 될 수 없는 이유가 많습니다. 그리고 나와 체신국장과는 몇 촌간(寸間)은 고사하고 몇 분간(分間)도 안 되는 새빨간 남입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시비도 있습니다. 독자 코너를 너무 작은 곳에 만들어놨다는 비판인데요. (4월 24일)


독자: 독자란을 컴컴한 구석 백 이면에 놓아주는 것, 이름을 소형(小型) 논단이라고 한 것은 도무지 신통치 못하니 개정하지 않는 한 망중한 씨(응접실 코너 속 기자의 ID)와 절교하겠소.
기자: 소형이라고 깔보시는 그 맘이 벌써 틀렸소이다. '적어도 호초'(작아도 후추)라고 키가 크면 대체로 싱겁고, 글이 길면 대개는 너저분합니다. 응접실 이 설문 응답도 짤막짤막한 데서 흥취와 묘미가 용출하는 것입니다. 자리가 나쁘다니? 그게 말이 되오? 개 진흙 구렁이에 있어도 연꽃은 연꽃. 여기까지 쓰는데 학예부 기자가 지나다가 "독일의 베데킨트란 작가는 한편 구석의 행복이란 말도 했고 책도 지었지요"하는군요. 이것 보시오. 구석이 웨 나뻐요!


저는 이 답변에서 묘한 기운을 느꼈는데요. '짤막한 데서 흥취와 묘미가 용출한다'는 데서는 트위터가 떠오른 것도 있지만, '자리가 나쁘다니 그게 말이 되냐'와 '구석이 왜 나쁘냐'는 반문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지면에 들어가는 단신 기사 하나라도 꼼꼼하고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회사 선배들의 조언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이전에는 수습기자 교육 때 선배들이 이런 말을 하셨다고 합니다. "너 이 지면 이만한 공간에 기사 안 넣고 광고 넣으면 얼마인 줄 알아? 1000만 원이야 1000만 원. 거기 광고를 안 넣고 기사를 넣었으면 그만한 가치가 있어야 할 거 아냐." 과거에는 사실상 대중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었던 지면이라는 공간을 한 명의 기자에게 내어준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조언을 하는 선배 기자는 없을 겁니다. 5G 시대에 그런 식의 윽박이 먹힐 리도 없고요. 용량으로 치면 많아봐야 몇 킬로바이트에 불과한 기사들이 갖는 물질적 비용은 얼마나 될까요. 잘은 몰라도 '0원'에 수렴하지 않을까요. '기자'라는 사람들이 매일처럼 쏟아내는 기사들의 가치도 그렇게 0원에 수렴하고 있지는 않은지, 반성해볼 대목입니다.


웨 나뻐요!! 를 보며 문득 떠오른 짤..


그런가 하면 "신문을 보기 싫다"라고 징징(?) 대는 독자도 있었는데요. 거기에는 이런 답을 내놓습니다.


독자: 신문에는 매일같이 농민의 궁상이 보도되오니 미간 펼 날이 없구료. 신문만 보면 우울증이 생겨서 명랑함을 잃게 되오. 그래도 신문을 보아야 하나요? 명랑한 생을 위하여 안 보아야 되나요?
기자: 당신 홀로 명랑한 생을 구하신들 무엇이 신통하단 말입니까? 차라리 만 명의 대중과 더불어 울고불고 하심이 이치에 있어 당연, 정에 있어 당연치 않겠소?


흠,

지금도 그러한가요?



그리고 그 시절 생활을

엿볼 수 있는 자잘한 이야기들


4월 24일

독자: 조선요리는 서양 각국에 장려될 가능성이 있을까요?
기자: 우리 조선요리도 훌륭한 요리지요. 다만 너무 매운 것, 일품 독립성이 적은 것 등등이 결함인데 세계인 공통 구미에 맞을는지는 의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줄평: 이 글을 김윤옥 여사가 싫어합니다.


의문의 1패..


4월 23일

독자: 현재 조선 사람으로 '톨스토이'만 한 분이 누구십니까?
기자: 글쎄올시다. 없다고 하기에는 자존심이 허락지 않고, 있다고 하기에는 응접자 과문이고... 진실로 땀나는 설문이로소이다.


한줄평: 아니 톨스토이 만한 인물을 가진 나라가 몇 곳이나 되나..



4월 25일

독자: 기계적으로 된 사람을 인조인간이라고 하면 우리는 무엇이 만든 사람이오?
기자: 우리는 천조 인간(天造人間)입니다. (키야..)


한줄평: 1000조 인간이 되고 싶... 죄송합니다.



4월 26일

독자: 저는 46세의 남자. 아들을 보려 하나 자꾸 여자만 산출(출산) 하니 이는 아버지의 부족인지 어머니의 부족인지 곡절을 모르겠으니 그 이유는 뭐다?
기자: 어느 편이고 부족이랄 것이 없습니다. 딸인들 상관있습니까? 인위적 공작으로 남녀를 자유로 생산케 한다는 방법들을 연구하는 모양이나 아직까지는 조화의 신공에 맡길 수밖에는 없는가 봅니다.


한줄평: 유전자 구성에 따르면 남자가 부족해서입니다. (아니 애초에 '부족하다'는 생각 자체가..)



4월 26일

독자: 독일의 히틀러와 이태리의 뭇소리니(무솔리니) 관상, 어느 편이 남자다운 골격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자: 설문을 다섯 개나 하셨는데 한 건만 대답합니다. 하는 일이 비슷해서 그러한지 남자답기도 비슷비슷하더군요. 응접자는 히틀러의 풍채가 좋더군요.


한줄평: 음... 1936년이니까... 음.. 선배 왜 그러셨어요



5월 3일

독자: 대관절 술 안 먹도록 하는 약이 없습니까? 술에 대한 폐단은 너무도 잘 압니다마는 유혹이랄까,, 어찌 못하겠으니 꼭 비방을 하교해 주십시오.
기자: 문의를 보건대, 술만 보시면 잡수시지 않고는 못 배겨내시는 분인가 봅니다. 이런 분에게는 약쯤으로는 안 안 될 것이오. 묘방까지는 몰라도 효과가 있음 직한 방법으로는 바가지 잘 긁는 분을 아내로 모셨으면 어떨까요?


한줄평: 아래 짤을 추천합니다. 음주 억제기


이걸 보면 술을 끊을 수 있습니다.


5월 3일

독자: 금년 16세의 소년이온데 자전거를 실컷 타고 싶어서 죽겠습니다. 무슨 도리가 없을까요?
기자: 그게 뭘 그렇게 죽을 일이람.. 정녕 그렇거든 자전차 수선 점방에 점원이 되거나 직공 될 길을 찾아 보구려.


한줄평: 위 짤에 나오는 엄모 씨를 찾아가십시오. (실제로 1926년에 엄복동이 자전거 가게를 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하지만 장물을 팔았지.)



5월 14일

독자: 4월 25일 귀보에 의하면 세계 희극왕이 촤플린은 급서하였다 전하였는데 사실인지 아닌지 그 뒤 소문은?
기자: 촤플린이 죽었다는 외신 보도가 있은지 뒤에 그 속보가 기다려도 오지 아니하므로 응접자도 아직껏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는 중입니다.


팩트: 찰리 채플린이 1936년 인도차이나에서 죽었다는 소식은 오보였음.



그 시절 기자의 아이디는?

'망중한' 씨, ‘응접자’ 씨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여기서 기자들도 닉네임을 쓴다는 건데요. '망중한' 혹은 '응접자'가 이분 아이디(...) 되겠습니다. 그래서 독자들도 '망중한 씨 발 아래 보냅니다'라든지, '망중한 씨 무사태평양(...저세상 말장난) 하십니까' 같이 친근한 호칭으로 기자를 부르곤 하죠. 생각해보면 ID니 닉네임이니 구독자 애칭이니 하는 것도 다 새로운 게 아니라는 말씀.

그 시절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동그란 안경을 쓰고 독자들의 엽서를 뒤지며 재치 있는 질문을 찾고 있었을 기자의 모습을 생각하니 재미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바쁜 와중에 엽서를 통한 독자와의 만남은 아무리 허튼 질문이라도 즐거운 시간이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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