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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May 07. 2019

행운의 편지, 일제 강점기 신문에 등장하다

[일제시대판 개드립 열전 3] 1935년 '동아 살롱' 다시 보기

벌써 3탄 째를 맞이한 '응접실' 베스트 드립 찾기 열전.


이번에는 신간회가 탄압을 받던 흉흉한 1929년에서 조금 시기를 건너뛰어, 엄혹한 1935년으로 날아가 볼까 합니다. '응접실' 꼭지는 당시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지 지면에서 나왔다 사라졌다를 반복했는데요. 1935년 3월 15일, '동아 살롱'이라는 화려한 이름(외래어를 쓰면 고급져 보인다는 편견은 이때부터)으로 부활했습니다. 


물론 이름만큼이나 재미없는 내용이 반복되다 같은 해 사라지고야 말았습니다만..(이듬해 '응접실'로 다시 부활) 그중 재미있었던 것을 꼽아보았습니다.



이 글을 9명에게 

공유하지 않으면..


7월 28일 동아 살롱에는 이상하게 익숙한 질문이 오릅니다.


독자: 요사이 미국의 어느 사관(士官)이 시작을 했다는 행운 편지란 것을 받았는데 미신 같으면서도 어째 그 말대로 지인 아홉 사람에게 똑같은 편지를 보내야만 될 것 같은 생각도 없지 않으니, 어떡하면 조흘까유?(id: 반신반의) *id는 생(生, 사람의 성 뒤에 붙어 '젊은이'라는 뜻을 나타냄)을 번역한 것입니다.
기자: 그것은 배부르고 할 일 없는 사람들의 장난입니다... 받는 대로 찢어버리십시오.


... 하지만 동아 살롱의 고결한 계몽활동은 별반 효과를 내지 못하고 1970년대까지 대유행하고 말았죠. 아니 사실은 요즘에도 '해볼 만한 장난' 축에 속하는 듯. 


최근까지도 '페이스북 개인정보 유출과 법적 보호를 위해 남깁니다'로 시작하는 행운의 편지가 유행했었죠. 그러고 보면 불안을 자극하는 마케팅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잘 먹히는 것 같네요. 


아니 사실 21세기에도...


그나저나 편지를 보낼 대상을 5명에서 7명으로, 7명에서 10명으로 늘린 자는 대체 누구인가.. 마케팅 천재..



일본이 좋아하던 

'순위 매기기 놀이'


4월 2일입니다.


독자: 공자, 석가, 소크라테스, 기독 을 칭하여 흔히 '세계의 사성'이라 하잖아요? 그밖에는 성인이라고 칭할 사람이 없나요?(id 시내의 성인연구자)
기자: 타카야마 초규(高山樗牛)의 '세계 사성'(정확히는 세계의 사성)이라는 글 이후에 당신이 말한 네 명을 '성인'이라고 하는데, 그 표준을 어떻게 세웠는지가 첫째 문제입니다. 까딱하다가는 '세계십성'도 될 수 있고 '세계십오성'도 될 수 있겠죠? 성인이라고 하면 흔히 윤리의 규범을 도학적으로 실천궁행한 사람이라 하겠는데, 그러한 성인이 있다면 얼마든지 있고 아주 없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고 이름을 들기는 좀 어려운데요.


이 4대 성인이라는 개념은, 정말이지 일본이 좋아하는 '~대 00'의 개념과 딱 들어맞는 개념입니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세계 3대 기타리스트'도 일본에서 나온 것이라고 하니까요.


 요즘에야 이 '4대 성인'에 놀아나는 사람이 없겠지만, 그래도 택도 없는 '정리병'은 자제해야 하겠습니다. 중요치 않은 논쟁을 일으키기 딱 좋은 소재니까요.(어그로는 역시 일본)


일러스트까지 그려가며 진지할 필요가 없다 이겁니다.


윤달이라 나이를 

못 먹어요ㅠ가 팩트.ssul


독자: 저는 윤달이 생일인데요. 해마다 생일을 바로 못 쇠는 것이 한이옵니다ㅠ 기유년 윤달인 2월 23일이 양력으로 1909년 4월 며칠인가요? 알려주시면 천만감사하겠습니다. (id 윤2월생)


4월 10일에 올라온 간절한 질문(ㅋㅋㅋ). 윤달이라 생일을 진짜 제때 못 챙기는 게 슬픔이었던 시대가 정말 있었군요. 음력으로 하면 자꾸 생일이 사라지니 양력 생일을 쇠려고 했던 모양입니다.(태양신이 한 명을 살렸습니다


"생일이 2월 29일이라 나이를 못 먹는다ㅠ"는 썰이 깔깔유머집에나 들어가는 농담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걸 진심으로 고민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굉장히 놀랍습니다. 기자도 안쓰러웠는지 다음과 같은 장문의 답글을 남깁니다.


기자: 음력 생일의 양력 환산은 너무 개인적인 필요에 국한된 것이므로 일절 대답하지 않습니다. 살롱 개방 이후 처음으로 물어본 당신에게만 귓속말로 일러드리는 것이니 다른 이 에게는 살롱에서 알았단 말을 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생일은 양력 4월 13일입니다. 


물어보지 말라면서 알려주는 츤데레 클라쓰..

따.. 딱히 널 위해 지면을 할애하는 것은 아니라구!



짜증 나는 질문은 

응.징.한.다


가끔 보면 기자를 테스트하는 듯한 선문답을 올리는 사람도 있는데요. 요즘 트위치나 유튜브를 봐도 어려운 과제를 던지는 사람들이 많죠? 그때라고 뭐 다를 바가 있었을까요. 3월 17일 글입니다.


독자: '새는 울기'만 하고 웃지는 아니합니까?(id 송도인)


뭐지..?


... 이 선문답 같고 말장난 같기도 한 질문. '새는 운다'는 프레임을 씌워 새를 부족하거나 비련에 처한 존재로 만들고, 그로 인해 새의 주체성을 제거하려는 집권 세력의 음모다!라는 것은 아닐 테고, 어쨌든 대답하기 난해한 질문인데요. 기자는 재치 있는 대답을 내놓습니다.


기자: '새가 노래한다'고도하잖아요? 노래할 때는 웃기도 하겠죠.... 자, 다음에는 내가 비슷한 난문(어려운 질문) 하나를 내겠습니다. 꽃은 웃기만 하고 울지는 아니합니까?


아아 끝내 독자의 답장은 지면에 오르지 않았습니다......

가 아니었습니다!! 5월 25일 거만 터지는 답장이 왔습니다. 아 물론 그때와 동일인인지는 알 수 없지만요.


독자: 전번에 물으신데 명답을 드릴 터이니 귀를 세우고 들으시오! 꽃은 웃는다는데 우는 꽃은 없느냐고요? 흥 그것쯤이야. (ps 이거 맞춤법만 고치고 원문 그대로 옮긴 것입니다..) 뜰 앞에 무리꽃이 이슬을 머금고 머리 숙인 모양을 우는 것으로 볼 수밖에~. 어떻소 명답 아니오? 그런데 쌀롱 자씨(운영자님)! 우리 쌀롱을 모토를 지을 의사는 없으시오? 내 하나 지었는데! 말은 가볍게 입은 무겁게 얼굴은 밝게 가슴은 엄하게 어떤지오. (id 박박사)
기자: '우는 꽃'은 곧잘 된 대답입니다. 그러고 살롱의 모토-도 미상불 동감입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아 그렇습니다. '구독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채널'은 21세기 유튜브에만 있는 게 아니었던 것입니다.


뭐 이런 게 1930년대에 있었다는 말입니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B4J-nNjQOk0


어쨌든 여러분, 말은 가볍게 입은 무겁게 얼굴은 밝게 가슴은 엄하게 붙들고 좋은 하루 보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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