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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Feb 24. 2016

IT를 무시하는 상사에게 바치는 책

"당신이 다니는 이 회사보다 더 늙은 게 컴퓨터야"


요 몇 년 새 갑자기 다들 IT, IT 하는데 말이야. 내가 한창 일할 땐 수십 장 짜리 보고서도 다 줄 맞춰서 손으로 쓰는 시절이었어. 내가 나이가 몇인데, 컴퓨터 못하는 게 당연한 거 아니야?


…네, 아닙니다.


물론 저도 예전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본 뒤로 생각을 고쳐 먹기로 했습니다.


이노베이터(오픈하우스, 월터 아이작슨 作, 정영목·신지영 역, 2015).



이 책은 IT광(狂)이 아니라 IT맹(盲)을 위한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컴퓨터(Computer)'라고 부르는 물건과 인터넷이라고 부르는 산업의 역사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컴퓨터가 정말로 컴퓨터(Comput-er·계산기)였던 시절에서 시작해, 레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구글을 만드는 시절까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겁니다.


다만 '사건' 중심이 아니라 그 역사의 중심에 있었던 '사람' 중심으로 이야기를 짜임새 있게 풀어 나갑니다.



에이다 러브레이스(1815~1852) 책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이 사람은 19세기 중반에 이미 현대 컴퓨터의 개념을 제시했습니다. (먼치킨 of 먼치킨)



많은 리뷰어들은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협업과 소통을 통해 선지자들의 몽상을 현실로 만든 혁신가들에 대한 이야기. 컴퓨터와 IT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꼭 읽어볼 만한 책.'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저는 약 보름(한국어 버전 기준 700페이지가 넘습니다)간의 독서를 통해, 이 책은 아주 '특정한 사람들'이 읽었을 때 '엄청난 효율'을 낼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습니다.



그게 누구?



그들은 바로 '나이 많은 사람들이 컴퓨터와 IT를 모르는 것은 당연하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입니다.


또는 영업 사원 출신으로 수많은 전설을 남기곤, 임원이 되어 'IT 부서' '디지털 마케팅 부서' '온라인 영업 부서'에 발령을 받은 뒤 부하 직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입니다.




아래 인용구는 발암물질을 포함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디지털 그까짓 거, 뭐 다를 거 있어? 웃긴 거 재미있는 거 퍼다 올리면 사람들 몰리는 거 아냐?"
"SNS 그까짓 거에 전담자를 두자고? 그런 시답잖은 일 하지 말고 더 중요한 일을 하란 말이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코멘트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당장 서점에 가서 이 책을 구매하세요. 그리고 상사의 책상에 집어던.. 아 아니 선물하세요.




다시는 컴퓨터를 우습게 보지 마라.


물론 이런 상황을 기대하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 IT 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지인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 같이 개발 언어나 통계 프로그램이 어려워 배울 수 없다고 한다. 물론 쉽지 않다.

그런데 영어 공부를 보자.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많은 이유가 영어가 쉬워서인가? 아니다.

어쩌면 사람들은 인터넷과 컴퓨터에 대한 공부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은연중에 생각하고,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건 아닐까?

하루에 8시간씩 컴퓨터 공부를 하는 사람이라도 과연 컴퓨터가 어렵다고 할까?"



저는 이 말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컴퓨터를 클릭 몇 번, 터치 몇 번만 하면 뭐든 해결해주는 신기한 기계로 생각하고 접근합니다. 100년의 역사에 대해서는 철저히 무관심합니다.


모니터-본체-키보드와 마우스로 엮인 이 단순한 기계가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뇌했는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글거리는 표현을 쓰자면, 컴퓨터와 IT에 대한 근본적인 존중(리스풱트?!)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들이 이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으로 치면 개당 수백 원에 불과한 트랜지스터(증폭기)가 만들어지는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노력이 있었는지, 개인용 컴퓨터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하는지를 둘러싸고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고민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알고 나면 이 기계를 이렇게 쉽게 대할 수 없을 겁니다.


100년의 역사를 따라잡기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기울여야겠다는 결론을 내게 될 거라고 확신합니다.




"내 나이가 몇인데…"

"대학생이실 때 벌써 매킨토시가 나왔는데요"


사실 그분들이 백 년이 넘는 컴퓨터의 역사를 짧은 시간의 노력으로 따라잡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들이 태어난 1960년대는 이제 갓 '집적 회로(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등장한 먼 옛날입니다.


'개인용 소형 컴퓨터'라는 개념이 처음으로 본격 시도된 지 이제 50년이 되어갑니다.


더군다나 요즘 IT 환경은 예전보다 더욱 복잡해졌습니다. 결국 요즘 IT 환경에 쉽게 접근하기란 굉장히 어려운 일이 됐습니다.



1970년대 앨런 케이가 그린 스케치. 다시 한번 말하지만 1970년대에 그려진 스케치입니다.




그러니 컴퓨터는 어려운 게 당연한 겁니다.


역사가 100년이 넘은 개념이 쉬울리가 없습니다. 당연한 겁니다.


1900년대부터 시작된 블루스 음악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 옛날 로버트 존슨부터 존 메이어까지 두루 섭렵해야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천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쌓여온 철학의 깊이는 그 끝을 알 수 없을 만큼 깊죠.


컴퓨터의 발전 과정은 100년이 넘는 엄연한 역사입니다.  그리고 <이노베이터>는 그 역사에 대해 경의를 표하는 훌륭한 역사서입니다.


이 책을 다 읽으신다면, 한 마디 이상의 경구를 꼭 건지실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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