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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기범 Aug 23. 2019

[아빠매뉴얼#1]아빠도 아기를 잘 돌보고 싶습니다만

[부부공동육아를 위한 아빠매뉴얼 #1] 아빠 육아 속성 코스 개발 방법


퇴근 뒤 집에 들어오자마자 샤워를 한다. 몸과 마음(?)을 단정히 한 뒤 하루 종일 고생한 아내를 도우러 나선다. 아이를 안아 올렸는데 금세 칭얼대기 시작하더니 이내 울음을 터뜨린다. 아빠는 당황한다.
표정을 보니 뭔가 단단히 짜증이 났는데 이유를 알 길이 없다. 보다 못한 아내는 아이를 빼앗아(?) 간다. 아빠는 허탈하다. 손을 덜어주러 저녁 약속도 마다하고 하던 일도 놓아버리고 왔는데 말이다.
'일찍 퇴근해봐야 뭐하나' 싶은 마음에 살짝 삐뚤어지고 싶은 아빠. 아기 보는데 도움이 안 되니 빨래하고 젖병이나 닦으라는 엄마. 두 사람 모두 험난한 저녁 시간이 이어진다.


아직 돌이 되지 않은 아기를 키우는 집이라면 한 두 번은 겪었을 법한 이런 상황. 우리 집에서도 종종 벌어지곤 한다. 며칠 전에도 퇴근한 뒤 무리해서 터미 타임을 하다가 아기를 크게 울리고 말았다. 짜증을 얼마나 내는지... 부인에게 민망할 정도였다. 


이런 일이 한두 번 있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에는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았다. 신생아 때부터 열심히 육아를 함께 한다고 했는데 왜 나만 바보가 되는 걸까? 허탈하고 민망하고 짜증도 나는 그 기분, 모든 아빠들이 한 번쯤은 느껴봤을 것 같다. 


보통 이럴 때는 남성과 여성의 뇌구조 차이를 많이 언급한다. 엄마는 공감 우선인데 비해 아빠는 학습과 체계화를 통해 아기를 바라보기 때문이라는 것. 


어떤 사람은 전통적 가장 역할을 하던 아빠의 모습을 무의식적으로 답습할 수밖에 없는 아빠들의 성장 배경 때문이라고 한다. 아기를 안아주기보다는 훈육하는 법만 배웠기 때문에 서툴 수밖에 없다는 것.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육아 전문가들이 내놓은 답이니 모두 틀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렇게 깊게 고민할 필요가 없는지도 모른다. 좀 더 단순하게 생각해보자. 아빠가 엄마보다 육아 센스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매우 간단한 것일지도 모른다. 전문가들의 글과 내 경험을 종합해보면 그 이유는 이렇다.



첫 번째,

절대적으로 경험치가 적다


출퇴근을 하는 아빠가 아기를 만나는 시간은 기껏해야 하루에 12시간 미만이다. 주말에는 하루 종일 볼 수 있겠지만, 평일 기준으로는 그렇다. 그나마도 12시간 중 대부분은 수면 시간이고, 실제로는 서너 시간에 불과하다.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후배 직원보다 적게 얼굴을 본다. 당연히 아기의 표정과 상태를 읽는 능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생후 100일을 전후로 아기는 의사표현이 점차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말로는 못하지만 자신만의 미세한 시그널 차이로 상황을 설명한다. 우리 아기의 경우 80일을 전후해 분유를 먹고 싶을 때와 그냥 쪽쪽이를 빨고 싶을 때를 구분해 의사 표현을 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면 칭얼댈 때 쪽쪽이를 물려줄 경우, 쪽쪽이를 너댓 번 빨아보고 '뭔가 나오는' 느낌이 없으면 손등으로 쪽쪽이를 뽑아낸다. 그리고 다시 칭얼댄다. 이럴 경우 보통은 배가 고프다는 신호다. 


아기는 이런 자신만의 신호를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 신호는 뚜렷하기보다는 미세하다. 예를 들면 똑같이 울음소리를 내고 눈물이 날 때가 있고 안 날 때가 있다.


이걸 하루 종일 관찰하는 엄마와, 기껏해야 하루에 네 시간 동안 아기를 보는 아빠가 같은 육아능력(?)을 갖추길 기대하는 건 지나친 욕심일 수밖에 없다. 하다 못해 온라인 게임을 해도 하루에 10시간을 게임한 사람과 하루에 4시간을 한 사람은 경험치와 노하우가 다를 수밖에 없는데, 그보다 더 힘든 육아는 말할 것도 없다.


두 번째, 

아기의 리듬을 알 길이 없다


아빠는 최소 두 개의 공간을 가지고 생활한다. 회사와 집이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모드 전환'을 하더라도, 아빠는 집이라는 공간에 금세 적응하기 어렵다. 저녁 모임에 뒤늦게 도착한 사람을 생각하면 쉽다. 어떤 사람이 모임에 서너 시간을 늦었다고 해보다. 이 사람의 할 일은 뻔하다. 눈치를 보면서 분위기를 읽어야 한다. 내가 없는 서너 시간 동안 이들이 무슨 얘기를 했는지, 분위기는 어땠는지 파악해야 적절히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와 엄마가 있었던 공간도 마찬가지다. 아기가 하루 종일 어떤 상태였는지 아빠는 알 길이 없다. 하루 종일 잠을 잘 자서 컨디션이 너무 좋은 상태인지, 낮잠을 못 자서 짜증이 머리 끝까지 올라 있는 상태인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변은 잘 봤는지, 낮에 땀을 너무 많이 흘리진 않았는지, 외출이 고되지는 않았는지, 알 길이 없다. 


그런 상황임에도 아빠는 마음이 급하다. 뭐라도 돕겠다는 마음에 섣불리 아기를 들어 올리고 놀아주려고 한다. 그런데 만약에 아기가 하루 종일 잠을 못 자 피곤해하고 있었다면? 단박에 울고 말 것이다. 아빠가 아기를 못 보는 것이 아니다. 그냥 상황이 그런 것뿐이다.



현실적으로 아빠가 육아휴직을 하지 않는 이상 이런 조건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이 간극을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말하지 않아도 아는' 건 없다

엄빠의 팀워크를 기르자 


아빠가 집에 오면 엄마는 아빠에게 아기가 하루 종일 어떤 상태였는지, 수유는 몇 시간 텀으로 했고 마지막 수유는 언제였는지, 배변은 잘하고 있는지, 잠은 잘 잤는지 등을 간략하게라도 알려줘야 한다. 그래야 아기가 칭얼댈 때 배가 고픈 것인지 졸린 것인지 아빠가 더 빨리 파악할 수 있다. 


요즘은 부부가 함께 아기의 하루 상황을 공유할 수 있는 스마트폰 앱도 많이 나와 있으니 꼭 설치하고 공유할 것을 권한다. 단순히 기록에 의미를 두는 것보다는 아빠가 아기의 상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핵심 정보만을 공유하는 편이 좋다. 우리의 경우 수면이나 배변, 샤워 정보는 큰 의미가 없어 수유 기록만을 공유하고 있다.


우리 부부가 쓰는 앱 <베이비타임>. 일일이 기록하기 어려워 수유 텀만 기록하고 있지만, 아기의 상태를 파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주말에 한두 번쯤은 

아빠가 주도하는 일과를 보내자


아빠도 아이의 하루 컨디션이 대략적으로 어떤 식으로 흘러가는지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평일에 아빠가 아기를 만나는 시간은 보통 저녁이다. 아기가 이미 잘 준비를 하는 시간. 놀아주려고 해도 시큰둥하거나 짜증을 낼 가능성이 높다. 통으로 쉬는 주말을 활용해 하루 종일 아기가 어떤 리듬으로 생활하는지 알 필요가 있다. 그래야 중간에 끼어들더라도 큰 걸림돌 없이 적응(?)할 수 있다.


아빠가 주도하는 일과 시간에 아빠는 아기가 아침에 눈을 뜰 때는 컨디션이 어떤지, 몇 분 정도 놀고 난 뒤에 잠이 드는지, 발달 상황은 어떤지, 무슨 장난감을 좋아하고 지루할 때는 어떤 표정을 짓는지 등등... 아기의 패턴은 어떤지 파악하는데 중점을 둔다. 자연스럽게 익힐 수 없기 때문에 '아기를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보다 좀 더 신경을 써서 열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엄마는 뭘 해야 할까. 아빠는 아기와 접촉점을 최대한 늘릴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럴 때 '너도 한 번 개고생 해봐라'는 심정으로 집을 훌쩍 떠나버리는 건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다. 아빠를 당황하게 해 학습 효과가 떨어지고 거부감만 커질 것이다. 엄마는 자질구레한 분유 타기, 젖병 씻기, 기저귀 치우기 같은 일을 도와주고, 아빠가 힘들어할 때마다 옆에서 아기가 왜 저러는 것인지 설명해주자. 아빠의 학습 속도가 훨씬 빨라질 것이다. 



KBS <슈퍼맨이 돌아왔다>에서 엄태웅 편을 유독 열심히 봤던 기억이 난다. 프로그램 속에서 엄태웅은 딸의 모습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도 하고, 아기의 의사소통 방식을 깨닫기도 한다. 그러면서 스스로도 한 단계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요즘 아빠들도 비슷한 모습일지 모른다. '나도 잘하고 싶은데, 시간과 여건은 허락을 안 하고, 막상 해보겠다고 나서면 아이만 힘들게 하고 상처만 주는 것 같다'라고 자책하고 있을지 모른다. 첫술에 배부른 일은 없다. 일만 공평하게 나눈다고 부부공동육아가 되는 것도 아니다. 부부가 함께 끌고 당기며 함께 가야 한다. 




* [부부공동육아를 위한 아빠매뉴얼]은 부부공동육아 시대에 맞춰 엄마 중심으로 편중된 육아 정보를 개선하고 실질적인 공동 육아 꿀팁을 제공하기 위해 진행하는 개인 프로젝트입니다. 개인적인 경험담뿐만 아니라 연구결과와 전문가 기고문 등을 바탕으로 실질적인 매뉴얼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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