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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스칼 May 31. 2021

上有天堂 下有蘇杭

2017년 10월 3일(3일째)-항저우 성황각, 서호, 청하방, 신천지

엄청난 인파의 상하이 훙차오 역

눈을 뜨자마자 오늘 가게 될 항저우에 대한 생각보다는 어떻게 항저우까지 갈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상하이, 난징에서 계속된 인해전술을 격파하는 게 이제는 과장해서 표현하자면 두렵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어젯밤에 나뿐만 아니라 다들 인파 속에서 헤쳐 나오는데 진력을 다했는지 표정이 지치고 무거워 보였다. 그래도 어제보다는 낫겠지 하는 마음으로 산뜻하게 숙소를 나섰다. 난징시루 역에서 역시 똑같은 검문검색을 마치고 지하철을 타고 출발지인 상하이 훙차오 역(上海虹桥站)으로 갔다. 어제 한번 인파를 경험해봐서 여유가 있다고 느꼈었는데 검문검색을 마치고 들어온 상하이 훙차오 역은 상하이 역보다  컸다. 과장하지 않고 축구장 같은 역에 사람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2011년에 문을 연 고속철도역인 상하이 훙차오 역은 홍콩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이곳이 기차역인지 공항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로 거대한 시설을 자랑했다. 서울 역이나 용산 역보다 훨씬 큰 규모를 자랑해서 웬만한 공항보다도 커 보였다. 아무래도 중국 고속철도의 중심 허브 역이고 바로 옆이 상하이 훙차오 국제공항이기 때문에 이렇게 거대하게 지은 듯한데 살면서 이제까지 본 기차역 중에서 가장 컸다. 하지만 우리가 도착할 항저우 동부 역이 이곳보다 크다하니 고개가 절로 저어졌다. 고속철도는 굉장한 속도를 내면서 1시간도 안되어 우리를 항저우에 내려주었다. 고속철도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굉장히 청결하고 깨끗해서 KTX라고 생각해도 무방할 정도였다. 


항저우 도착

항저우는 저장성의 중심 도시이면서 남송(南宋) 시대(1127~1279년) 수도로 자연경관이 매우 수려하기로 유명하다. 그래서 '하늘에는 천국이 있고, 지상에는 쑤저우와 항저우가 있다.'라는 속담이 있을 정도였다. 남송 때에는 임안(臨安)으로 불렸다. 항저우 중심에 있는 서호(西湖)는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된 명승지로 본래는 전당강과 연결된 강의 일부였는데 흙과 모래로 막아서 인공 호수로 만들어진 것이다. 굉장히 넓은데 둘레가 15km에 이른다고 한다. 이곳은 그 유명한 소동파가 자주 시를 읊었던 곳으로 문인들의 성지로도 유명하다. 그 유명한 마르크 폴로의 동방견문록에도 항저우에 대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한족의 중심지로 번성하다가 원, 명, 청나라를 거치면서 도시는 계속 성장했지만 청나라 말기 홍수전이 일으킨 태평천국운동으로 인해 도시가 파괴되고, 아편전쟁에서 패배한 청나라가 난징조약을 맺고 상하이를 개항하자 강남의 무역항 자리를 상하이에 가져가게 되어 경제적 쇠퇴를 하게 된다. 


적어서 제출

역에서 나오니 후덥지근하면서 습기를 머금은 공기가 조금 느껴졌다. 지하철을 타고 항저우 시내로 들어와서 점심을 먹기 위해 거리를 걸으면서 식당을 찾아보았다. 걷다가 현지인들이 많이 있는 식당을 찾아서 먹으려고 했는데 길가에 작은 노포가 있어서 들어가기로 했다. 작은 식당으로 테이블이 많지 않았지만 여러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었고 역시나 현지 식당이라 그런지 영어 메뉴판은 커녕 영어가 한 마디도 통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메뉴판을 보고 한자를 찍어서 번역을 한 다음 동생의 핸드폰이 메모장 기능이 있어서 거기다가 내가 글씨를 써서 보여주었다. 솔직히 무얼 시켰는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지만 면과 밥 정도는 구분할 줄 알았기에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주문했다. 이윽고 음식이 나왔는데 완탕에 하얀 국물 면, 오이절임과 고기 덮밥 등이 나와서 나름 성공했다고 다들 이야기하면서 먹었다. 아내는 너무 현지식이라고 하면서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듯했는데 별로 가리지 않는 나는 맛있게 먹으면서 배를 채웠다. 



성황각에서 바라본 서호

식사를 마치고 난 다음 천천히 항저우 시내를 거닐면서 성황각에 오르기 위해 오산(吳山)에 올랐다. 오산은 그렇게 높지 않은 야트막한 산으로 우리가 가는 성황각은 악양루, 등왕각, 황악루와 더불어 중국 강남의 4대 누각으로 손꼽히는 누각이다. 삼국지에 등장하는 영웅 손권이 진을 쳤던 오산 정상에 위치해있다. 처음에는 아이도 씩씩하게 잘 걸었는데 올라가는 게 힘든지 안아달라고 해서 내가 안고 올라가다가 나도 힘들어서 잠시 내려놓고 같이 걷기도 했다. 아이는 안 올라간다고 떼쓰면서 울다가 잠들었다. 잠든 아이를 안고 기어이 성황각에 올랐는데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어서 꼭대기 층까지 쉽게 갈 수 있었다. 날이 다소 흐려서 선명하게 보이지는 않았지만 서호의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항저우 시내까지 조망이 가능해 그 경치를 두 눈에 담으니 뿌듯했다. 잠든 아이를 안고 있어서 저린 팔은 덤이었다. 구경하다가 아이를 깨워서 경치를 함께 감상했다. 그리고 내려오는데 팔팔해진 아이는 나의 저린 팔도 모른 채 귀여운 몸짓을 해댔다. 


아이와 어머니

성황각에서 내려오면서 항저우의 옛 거리가 그대로 남아있는 청하방(清河坊)으로 갔다. 청하방에 가니 항저우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듯했다. 국경절 연휴로 인해 이곳에도 사람들이 빽빽했다. 서울의 인사동 거리나 전주 한옥마을과 비슷한 정취를 느끼게 했는데 현대적인 가게 안과 대조적으로 건물과 거리는 옛 그대로를 유지해놓은 듯했다. 각종 먹을거리를 팔았는데 그중에서 취두부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하지만 먹을 엄두는 내지 못하고 덥고 텁텁한 날씨를 털어내기 위해 버블티와 냉차를 사서 먹었다. 거리 옆에는 작은 개울가가 있었는데 떨어지지 말라고 경고 표시를 해놓은 경고판에 한국어로 번역은 '조심스럽게 떨어'라고 되어 있어서 다들 웃었다. 남송시대의 거리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역사적으로 가치가 높은 거리에서 약 700년이 지난 지금도 사람들이 뭔가를 마시고 먹으면서 정취를 느낄 수 있다는 게 좋아 보였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문화 역사 거리를 보존하거나 아니면 잘 복원해서 남기면 어떨까 생각해보았다. 


더 엄청난 인파의 항저우 동부 역

청하방 거리에서 간식도 먹고 걸어 다니며 구경을 하다가 다시 상하이로 돌아가기 위해 지하철 역으로 갔다. 어제 난징과는 다르게 사람이 엄청 붐비지 않아서 압사의 위험 없이 안전하게 항저우 동부역까지 갈 수 있었다. 동부역에 들어가기 전에 어김없이 검문검색을 받고 안에 들어갔다. 여기는 기차역이 축구장보다 훨씬 넓었다. 중앙 로비를 2층에서 바라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상하이 훙차오 역에서 한 번 놀랐는데 여기서는 두 번 놀랐다. 기차를 기다리면서 심심한 입을 달래기 위해 편의점에서 간식을 샀다. 오이 감자칩을 팔길래 그것과 이것저것 사서 군것질을 했다. 역사 안을 도는 셔틀 차량이 있었는데 아이가 타고 싶어 해서 그것도 타면서 구경했다.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워낙 많아서 어마어마한 역의 규모에 계속 압도되었다. 중국에서 놀라는 건 자연경관이나 마천루보다 사람들 때문에 놀라는 게 더 많았던 듯했다. 


상하이 노천에서 즐겼던 한 때

무사히 상하이까지 와서 지하철을 타고 아내가 알아놓은 맛집 탐방을 했다. 크랩을 파는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이었는데 가격은 다소 있었지만 처음 먹어보는 매운 크랩과 볶음밥, 밥으로 만든 듯한 떡튀김, 파인애플 주스와 망고 주스 등으로 만족스러운 저녁 식사를 즐겼다. 그리고 신천지(新天地)로 이동해서 중국인, 외국인들이 뒤섞인 그곳을 걸으며 산책했다. 신천지는 고전적인 건물과는 다르게 상하이의 핫플레이스로 많은 레스토랑, 카페, 쇼핑샵 등이 들어서 있어서 젊은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다들 노천 가게에서 맥주 한 잔을 시켜놓고 담소를 나누는 모습들이어서 우리도 분위기 좋은 노천 가게에 들어가 맥주도 한 잔 하고 상하이의 밤을 즐기다가 숙소로 돌아왔다.


성황각이 있는 오산








성황각



청하방 거리
상하이 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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