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스칼 May 31. 2021

대륙이여, 짜이찌엔

2017년 10월 5-6일(5-6일째)-상하이 루쉰공원,다종 공항 호텔

루쉰 공원 도착

어느덧 여행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일은 아침 비행기로 귀국하기 때문에 오늘이 실질적인 마지막 날이었다. 푹신한 침대와 멋진 뷰가 있는 호텔에서 12시가 다 되도록 느릿하게 시간 보내고 식사를 하러 나왔다. 아침 겸 점심으로 고른 메뉴는 뜬금없지만 일본 라멘이었다. 계속된 중국 음식으로 인해 기름진 것을 많이 먹었고 다양하게 중국 음식을 즐길 줄 아는 수준은 아니어서 국물이 있으면서 매콤한 것을 먹고 싶은 우리의 정서가 고른 것이 라멘이었다. 내가 일본 유학 시절에도 갔었던 유명한 일본 라멘 체인점이 입점해있어서 다 같이 가서 라멘과 교자로 첫 끼를 달랬다. 마늘을 잔뜩 으깨 넣어 속을 잡아줄 수 있어서 괜찮았던 선택이었다. 편안하게 오늘은 상하이를 둘러보기로 해서 상하이하면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와 더불어서 잊을 수 없는 훙커우 공원으로 가기로 했다. 훙커우 공원은 현재 사라지고 루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루쉰 공원으로 갔다. 1시간 이상 지하철을 타고 가야 해서 나름 멀었지만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역사의 현장을 간다는 설렘을 가지고 갔다.


루쉰 공원 앞 놀이터에서

지하철 역에서 내리니 바로 보이는 것은 훙커우 경기장이었다. 상하이 지역 축구팀인 상하이 선화의 홈구장이기도 한데 그 경기장 바로 근처에 루쉰 공원(鲁迅公园)이 있었다. 이 공원은 중국의 대문호이자 사상가인 루쉰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공원인데 과거에 훙커우 공원(虹口公园)이라고 불려서 우리 역사 교과서에는 훙커우 공원이라고 등장한다. 윤봉길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으며 한국인이라면 응당 알아야 할 역사책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윤봉길 의사의 의거가 일어난 곳, 상하이 훙커우 공원이 바로 이곳이다. 지금은 외곽의 한적한 공원이 되어 지역민들의 사랑받는 공원으로 산책하거나 조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만 백 년 전에는 뜨거웠던 조선 청년의 의거로 일제의 통치에 경종을 울려준 사건이 일어난 곳이다. 호수와 이름 모를 나무들, 운동하는 중국인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있는 이곳에 1932년 4월 29일 히로히토 천황의 천장절 기념행사가 열렸고 조선의 청년 윤봉길 의사가 물병 폭탄을 던져 당시 일본군 사령관 대장 시라카와 요시노리, 해군 중장 노무라 기치사부로, 육군 중장 우에다 겐키치, 주중공사 시게미츠 마모루 등이 죽거나 다쳤는데 특히 육군대장 시라카와는 일개 병사에서 대장의 지위까지 오른 인물이라 일본인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었다. 주중대사였던 시게미츠는 죽지 않고 살아남아서 1945년 9월 미 군함 미주리호에서 항복문서에 서명하는데 그때 발을 절둑거린다. 바로 훙커우 공원에서 벌어진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인한 후유증이었다. 윤봉길 의사의 의거 후 전 세계는 이 사건을 대서특필했고 당시 중국 국민당 총통이었던 장제스가 감탄을 금치 못하며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지원했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윤봉길 의사는 체포되고 12월 19일 가나자와 육군형무소에서 총살로 거룩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R2D2와 함께 공항으로

비가 촉촉하게 내린 후에 공원은 약간 가을 냄새가 나면서 걷기에 더없이 좋아 보였다. 아이와 함께 이런 역사의 현장에 오게 되어 좋았지만 아직은 전혀 이런 내용을 알지 못해서 아쉽기도 했다. 학교에서 배우고 난 다음 이런 역사의 현장에 와서 상상해보면 더 크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사람들의 열기와 함성, 윤봉길 의사와 김구 선생의 의지가 생각나는 곳이었다. 루쉰 공원을 한 바퀴 돌고 나오는 길에 놀이터가 하나 있어서 그곳에서 아이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중국 할아버지들이 운동을 많이 하고 계셔서 우리도 잠깐 그 속에 들어가 이것저것 기구를 만져보면서 여유로움을 즐겼다. 상하이 시내로 돌아와서는 저녁으로 또 샤오롱바오를 먹었다. 여기 와서 샤오롱바오를 참 많이 먹은 듯했다. 아내와 동생이 많이 좋아해서 자주 먹었는데 한동안 생각이 안 날 정도였다. 저녁에는 짐을 챙겨서 공항 호텔로 갔다. 아침 8시 30분 비행기여서 시간을 맞추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마지막 중국 식사

상하이로 들어왔던 자기 부상 열차를 타고 다시 공항으로 갔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는 다종 공항 호텔(大众空港宾馆)로 처음 공항 안에 있는 호텔을 이용해봤다. 체크 인을 하고 공항 안에서 저녁을 사 먹었다. 벌써 떠나는 기분이 들어서 아쉬움이 컸다. 우육면과 닭다리 조림, 볶음밥, 곱창 국수, 채소볶음 등을 주문해서 먹고 스타벅스에서 여행 마지막 날의 끝을 나눴다. 그리고 다음날 6시 30분이 되자 다들 벌떡 일어나 짐을 챙겨 수속을 마친 다음 비행기를 타고 황해를 건너 인천 국제공항으로 왔다. 비행기 안의 스튜어디스들이 아이를 매우 귀여워해 줬다. 도착한 우리나라는 비 내리고 다소 흐렸던 상하이와는 다르게 푸른 하늘 이름대로 화창하고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아이는 잠을 못 자서 피곤해했지만 다들 아픈 곳 없이 무사히 도착했다. 수많은 대륙인의 모습이 뇌리에 남는 여행이었다.

윤봉길 의사 기념관


다종공항호텔


이전 21화 동방의 파리에서 독립을 외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