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출국 전날이 밝았다. 다행스럽게도 눈이 오거나 기상이 안 좋거나 하지 않은, 화창한 하루의 시작이었다. 자기 전까지 몇 번 확인한 짐을 다시 보고, 집 안 곳곳을 돌아보면서 여행동안 이상이 없도록 확인해 보았다. 성격이 그런지 여행 전에 여러 차례 확인해도 불안감은 남아있었다. 버스 터미널에서 고속버스를 타고 공항까지 갈 거라서 시간에 맞게 택시를 예약해서 나갈 채비를 마쳤다. 아이는 설레는 기분을 표현하길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다고 했다. 3년 만에 떠나는 장거리 여행이어서 우리 모두 뭔가 예전의 느낌을 갖기엔 아직 어색해 보였으나, 여행을 향한 마음은 어느새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대개 여행하는 날에 맞추어서 공항 가는 버스를 탔는데, 이번에는 비행시간이 낮이어서 시간을 맞추려면 새벽 4시에 일어나 준비하고 나가서 버스를 타야만 했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인천 국제공항은 3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였기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 출발하지 말고 전날에 공항으로 가서 하루 묵기로 했다. 장점은 미리 올라가서 덜 피곤하게 준비할 수 있다는 것이었고, 단점은 오후시간에 올라가니 도로가 막혀서 가는 것 자체가 다소 고역이었다. 매번 비행기 시간에 맞춰서 가다가 처음 해보는 시도였는데, 이번에 이렇게 해보고 다음 여행에서는 어찌할지 생각해 보기로 했다.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 발권을 하고 시간에 맞춰 버스를 탔다. 오랜만에 타는 공항 가는 버스였다. 의무적으로 버스 안에서는 마스크를 써야 해서 다시 열린 하늘 길이지만 코로나 19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게 실감 났다. 만석인 버스는 3시간 30여 분을 달리고 달려서 공항에 도착했다. 점점 실내는 더워지고 오후라서 잠은 오지 않고 마스크는 계속 쓰고 있어야 하니 답답한 마음이 쌓여갔다. 제1 터미널은 어떤 연예인들이 와서 그런지 묵직한 카메라를 든 사람들이 꽤 보였다. 우리는 제2 터미널이어서 내리지 않았는데 다시 출발 전에 버스 기사께서 우리 캐리어 개수를 묻더니 외국인들이 캐리어를 혹시 가져갈 수 있으니 내려서 한 번 확인해야 한다고 했다.
인천 국제공항에 도착
제2 터미널 가는 버스 안에는 우리만 있어서 기사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갔다. 캐리어 관련 돼서 만났던 이상한 손님들 이야기이나 버스 운행 관련 이야기를 들으니 참 쉽지 않은 일이구나 하는 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금방 제2 터미널에 도착했다. 기사님에게 인사를 하고 내려서 캐리어를 챙기고 숨을 한껏 들이마셔보았다. 지어진 지 얼마 안 된 터미널이어서 깔끔한 외관이 눈에 들어왔고, 시원한 겨울 공기가 폐에 가득 찼다. 예전 북미 여행을 할 때 제2 터미널이 완공되어 운영하게 돼서 출국은 제1 터미널, 입국은 제2 터미널로 했던 기억이 있다. 이번에 처음으로 제2 터미널로 출국하게 되었다. 아이와 아내와 함께 도착 사진을 찍고 안으로 들어갔다. 오랜만에 보는 세련된 공항 풍경에 이제는 그전에 누렸던 일상의 궤도에 올라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코로나 19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로 붐비지는 않았다. 호텔 체크 인 전이라서 먼저 저녁 식사부터 하기로 했다. 내일부터 한식은 안녕이니 역시 다들 한식으로 정했다. 우삼겹 정식, 소고기 미역국, 콩나물 국밥 등을 골라서 남긴 것 없이 깨끗하게 해치웠다. 식사를 마치고 근처 카페에서 쉬다가 호텔로 들어갔다.
3년 만의 인천 국제공항 입성
새롭던 공항 호텔의 밤이 지나고 여행 당일이 되었다. 설렘 때문인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들었는데 맞춰놓은 알람소리에 벌떡 일어나 짐을 챙기고 나갈 준비를 마쳤다. 아침은 오랫동안 한식을 먹지 못할 것 같아서 어제처럼 한식 한상을 챙겨 먹었다. 3층 출국장으로 올라가서 수하물을 맡기고 출국 수속을 받았다. 펼쳐진 면세점들을 보니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실감 났다. 아내가 살 것이 있어서 잠깐 쇼핑을 하고 커피 한 잔을 하며 기다리는 여유를 부렸다. 활주로에 세계 어디론가 갈 준비를 하고 있는 비행기들을 보니 여행이 주는 활기가 도는 듯했다. 우리의 목적지인 바르셀로나 출국 대기하는 곳에는 같은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이 이미 앉아 있었다.
탑승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여권과 티켓을 확인한 다음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니 승무원들이 우리에게 반갑게 인사해 주었다. 아이는 기대에 찬 얼굴로 기대감을 나타냈다. 앞으로 14시간의 비행을 마치면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에서 서쪽 끝 스페인으로 도착할 것이다. 만석으로 출발하는 비행기 안을 보니 세계 곳곳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참 많고, 활주로에 보이는 비행기들도 저마다 목적지를 향해 떠난다고 생각하니 코로나 19 이후 일상으로 돌아간다는 게 느껴졌다. 달라진 점이라면 기내에서도 마스크는 꼭 착용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창가 쪽에 먼저 턱 하니 앉은 아이, 통로 쪽에 앉은 아내와 가운데 앉은 나 이렇게 우리 가족의 14시간 비행이 시작되었다. 아이는 앉자마자 그렇게 고대하던 게임을 찾아봤지만 이 비행기 패널에는 게임이 설치되어있지 않아서 시무룩했다. 어쩔 수 없이 영화를 보며 내 핸드폰에 내장된 게임을 하며 즐겼다. 상기된 표정으로 여행의 기대감을 보인 아이를 보며 우리도 여행의 시작에 설레했다. 함께하지 못한 어머니는 탑승전 통화에서도 안전과 걱정을 이야기했다. 기내식 2번과 간식 1번을 먹고 틈틈이 어설픈 잠을 청하고 영화와 예능을 보면서 시간을 보냈다. 한국에서 가는 비행기라서 매운 컵라면도 주문해서 남김없이 먹었다.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은 역시 길었고, 서쪽으로 가기 때문에 떠나가는 태양을 좇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2시가 되어도 날이 밝아서 내내 태양빛이 떠나지 않는 하늘을 날았다. 그렇게 하늘길을 날고 날아서 이베리아 반도의 관문인 바르셀로나 엘프라트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안에서 한 컷
저녁이 된 바르셀로나는 어둠이 내려앉아서 진면목을 보기에는 내일까지 기다려야 할 듯했다.아이는 막바지에 설핏 잠이 들어서 그런지 도착해서 출국 수속받는 것을 굉장히 힘들어했다. 시차가 완전히 바뀌어서 우리나라 시간으로 새벽 4시 30분에 도착했으니 많이 피곤했을 것이다. 그래도 올라(Hola), 그라시아스(Gracias) 같은 간단한 스페인어는 하려고 하면서 점점 잠에서 깼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드디어 도착했다는 것에 감동받아야겠지만 다들 피곤해서 찾아놓은 공항버스를 타고 시내로 들어갔다. 카탈루냐 광장의 네온사인들이 멋졌지만 아직 우리 것이 아닌 듯했다. 숙소까지 2km 정도 되어서 걸어갈까, 버스를 탈까 고민하다가 결국 택시 타고 얼른 가는 게 좋을 듯해서 택시를 잡았다. 택시 기사님은 내가 "바모스(Vamos)"하고 외치니 웃으면서 출발했다. 가는 길에 스몰 토크를 좋아하는 나로서는 놓칠 수 없는 시간이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하길래 바르셀로나와 스페인을 처음 방문했다고 하니 기사님은 여기서 27년을 살았다고 했다. 출신을 물어보니 모로코라고 해서 이번 카타르 월드컵 때 4강 축하도 하고, 유명한 선수들 이야기도 하니 무척 좋아했다. 그러다 보니 금방 도착해서 호텔 체크 인을 하고 씻고 정리한 다음 내일을 위해 다들 일찍 잠에 들었다. 내일부터 본격적인 바르셀로나 모험을 위한 충전에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