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amos, Barcelona

2023년 1월 07일(토)(2일째)-바르셀로나

by 오스칼

피곤에 푹 절어있는 채로 잠들었지만 시차 때문인지 현지 시간 2시쯤 깼다가 5시 40분 정도에 다시 깨서 잠들지 못했다. 아이와 아내 역시 잠에서 깼고 아이는 이미 에너지 충전이 되었는지 조잘거리며 장난을 쳤다. 어젯밤에 아침 식사할 곳을 보긴 했는데 늦게 시작하고 여유를 부리는 스페인 특성상 오전 10시에 여는 가게가 많았다. 그래서 일단 생각해 둔 카페를 두고 거리를 일찍 나서보기로 했다. 지중해를 끼고 있는 도시답게 영하권인 한국보다 10~15도 이상 기온이 높아서 가을 옷을 입고 나가도 충분했다. 이는 여행 전에 본인 수첩에 적어놓은 간단한 스페인어 회화를 보면서 스페인 사람을 만나면 사용할 준비를 마쳤다.


스페인 제2 도시인 바르셀로나는 카탈루냐 지역의 중심도시로 지역색이 매우 강하고 수도인 마드리드와 경쟁 관계에 있으며 수도보다 유명한 관광 도시로 전 세계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매력적인 도시이자 역설적이게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도시이다. 나에게는 프레디 머큐리가 불렀고, 바르셀로나 올림픽 주제가가 될뻔한 노래로 어렸을 적에 기억된 도시였다. 이 방사형의 거대한 도시는 크게 6 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으로 대표되고 우리 숙소가 있는 에이샴플레 지구, 람블라스 거리와 보케리아 시장이 있는 라발 지구, 시내를 조망할 수 있고 우리에겐 바르셀로나 올림픽으로 친숙한 몬주익 지구, 대성당이 있는 고딕 지구, 아기자기해서 산책하기 좋은 보른 지구와 해변을 끼고 있는 바르셀로네타 지구가 있다. 오늘 볼 곳은 개선문, 바르셀로나 대성당, 보케리아 시장, 람블라스 거리, 구엘 저택, 콜럼버스 기념비, 해양 박물관, 카탈루냐 광장, 카탈라냐 음악당 등으로 라발과 고딕, 보른 지구 쪽이었다.


두 눈에 처음 들어온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아직은 새벽 기운이 가시지 않은 아침에 길을 나섰다. 일출 시간이 8시 이후여서 푸른 빛깔이 감도는 세상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아내의 제안으로 사그리아 파밀리아 성당을 구경하자고 해서 그리로 향했다. 월요일에 투어 예약을 해놓아서 외관만 보기로 했다. 호텔 근처여서 금방 성당이 보였다. 화면으로만 보던 웅장하고 거대한 모습이 드러나자 내 눈앞에 실제 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계속 사진과 영상을 찍자 아이가 배고프다며 가자고 했다. 그래서 근처에 봐둔 카페에 가서 카푸치노 제일 큰 것 2잔과 초코우유, 연어 샌드위치, 시금치 파이, 치즈 케이크, 하몬파이 등을 주문해서 든든하게 하루 열량을 채워나갔다. 거리는 화창해서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세상이었다. 왜 이렇게 한적한가 싶었는데 토요일이어서 거리가 한산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오늘 내내 그럴 줄 알았는데 람블라스 거리에서 보기 좋게 빗나갔다. 먼저 개선문을 향해가는 길에 바르셀로나 모누멘탈 투우장이 보였다. 도심 한가운데 투우장이라니 역시 투우의 나라다웠다. 1914년에 지어진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로 지금은 내부가 박물관과 공연장으로 사용된다고 했다. 아이는 나중에 꼭 투우를 볼 거라면서 다시 오자고 했다. 사실 카탈루냐 지방은 투우가 금지라서 투우장에서 현재 투우를 하고 있지는 않다. 거리의 축구 연습장에는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경기를 하고 있었고 조깅하는 사람들도 종종 보였다.


카페 앞에서 바라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모누멘탈 투우장 앞에서 아이


개선문은 파리의 개선문과 비슷한 아치형의 거대한 붉은 모습을 드러냈다. 1888년 세계박람회를 위해 지어진 개 개선문은 크기도 파리 개선문에 비견될 정도로 압도적인 크기를 자랑했고, 회색의 파리 개선문과 다른 매력을 보여주었다. 이곳에서 사진을 찍고 르셀로나의 한가로운 주말 거리를 걸으며 바르셀로나 대성당으로 갔다. 아이는 왜 맨날 성당을 가냐며 투덜거렸지만 잘 따라다녔다. 몸도 커지면서 생각도 자라나 자기 생각을 이야기하는데 표현력이 좋아지는 게 보였다. 대성당은 1913년에 완공되었지만 최초 공사는 1298년 자우메 2세 때 시작되어 오랜 시간 동안 건설된 성당으로 정면의 파사드는 19, 20세기에 카탈루냐 고전 양식으로 지어졌다. 현재는 부분적으로 보수 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내부에는 바르셀로나의 수호 성녀인 산타 에우랄리아의 순교 장면이 조각되어 있고, 거위들이 살고 있어서 나름 이색적인 곳이며 고딕 지구의 대표적 랜드마크이다. 성당을 지나서 근처에 있는 산 하우메 광장으로 갔다. 하프 소리가 들리길래 방송을 틀어놨나 싶었는데 거리의 악사가 아름다운 선율을 들려주고 있었다. 문득 피렌체의 시뇨리아 광장이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좋은 음악을 받아서 아이에게 1유로를 주고 갖다 놓고 오라고 했다. 성당 옆에 있는 산 하우메 광장은 그리 크지 않은 광장이지만 의미가 있는 곳이었다. 르셀로나 시청과 카탈루냐 정부 청사가 자리해 있고 축제가 열릴 때 그 시작을 알리는 곳이기도 했다.


개선문 앞에서 아내와 아이


바르셀로나 대성당 앞에서 아이와 나


성당에서 산 하우메 광장 가는 길


이곳에서 람블라스 거리는 금방이었다. 바르셀로나의 대표적인 거리로 아직 오전이어서 사람들이 많지 않았지만 관광객 상대로 장사하는 테라스 가게, 화가들이 늘어선걸 보니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세계 여러 나라의 언어가 들리는 곳이면서 담배는 어찌나 피워대는지 연기를 피해 가는 것도 고역이었다. 먼저 구엘 저택과 레이알 광장을 들렀다. 구엘 저택은 1889년에 지어진 가우디의 든든한 후원자로 유명한 구엘 가문의 저택으로 가우디의 명성과는 다르게 외부는 평이하지만 야외 옥상 정원과 건물 내부는 가우디 특유의 아르누보 감성이 잘 드러나는 곳이다. 레이알 광장은 가우디가 학교를 졸업하고 1879년에 처음 만들었던 가스 가로등이 유명해서 한번 보고 싶었다. 원래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설치될 예정이었는데 이곳에만 설치가 되어서 특별함을 더했다. 그러고 나서 호안 미로 모자이크를 지나 점심 식사를 할 보케리아 시장으로 갔다. 바닥 모자이크는 1893년에 태어나 스페인 미술계의 입체주의와 초현실주의에 큰 영향을 끼친 탈루냐 출신의 유명 화가인 안 미로가 1976년에 환영의 의미로 만든 바닥 모자이크로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모자이크를 배경 삼아 사진을 많이 찍었다.


레이알 광장에서 아이와 아내


가우디의 가로등


호안 미로 모자이크 위에서 한 컷


보케리아 시장은 바르셀로나의 전통 시장이고 아직도 수많은 이들이 방문하는 시장으로 싱싱한 해산물, 과자, 과일, 주스, 햄, 고기 등이 즐비했다. 우리의 목표는 분명했는데 바로 하몬을 먹는 것이었다. 하몬은 돼지 뒷다리로 만든 염장 햄인데 그 맛이 일품이라 꼭 먹어봐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는 돼지 뒷다리가 고급 부위나 선호하는 부위가 아니어서 가격이 저렴하지만 이렇게 수개월 이상 염장해서 만든 하몬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하몬은 크게 세라노 하몬과 이베리코 하몬으로 나뉘는데 세라노는 백돼지, 이베리코는 토종 흑돼지이다. 이베리코도 도토리를 먹인 비율에 따라서 등급이 나뉜다. 우리도 기대가 컸기에 들어와서는 그 가게부터 찾았다. 시장 입구부터 하몬 가게가 있었지만 한 바퀴 둘러보면서 구경을 하고 괜찮아 보이는 가게에서 추천을 받아 두 번째 등급의 슬라이스 되어 있는 이베리코 하몬 1컵을 샀다. 생각보다 시장이 크지는 않아서 둘러보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아이는 이게 뭐냐, 뭐가 맛있냐는 등 질문을 곧잘 했다. 한 입 먹어보곤 짭짤하고 고소하면서 감칠맛이 도는 게 입맛에 맞았는지 잘 먹었다. 과일 주스도 사 먹고 시장 안에 있는 바에서 달걀과 새우 요리, 상그리아 등을 곁들여 먹고 만족스러운 식사를 즐겼다. 레드와인과 탄산수, 얼음, 레몬과 오렌지 등의 과일을 넣은 상그리아의 취기가 살짝 올라와서 조금 당황스러웠다. 나는 중간에 화장실이 급해서 50센트를 내고 공용 화장실을 이용했다. 아이가 시장에서 나올 때 하몬을 한 번 더 먹고 싶다고 해서 아까 먹은 등급보다 더 높은, 가장 좋은 블랙 라벨 등급을 먹어보기로 했다. 아이는 한 입 먹고는 부드럽다며 살살 녹는다면서 나중에 방학 생활을 이야기할 때 꼭 말하고 싶다 했다.


보케리아 시장에 있는 하몬 가게들 중 하나


시장 안에 있는 바에서 간단한 식사


시장을 나와서 해변 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점점 더 많아져 있었다. 람블라스 거리 끝에 있는 콜럼버스 기념비를 지나쳐 해변에서 잠깐 앉아서 고생한 두 다리에게 쉼을 선물했다. 12시였는데 이미 만 걸음 이상을 걸었었다. 콜럼버스는 아시다시피 이탈리아 제노바 사람으로 스페인에서 활동한 신항로 개척자로서 이 기념비에서는 왼손에 미국산 파이프를 들고, 오른손은 지중해를 향하고 있었다. 이 기념비 역시 개선문과 같이 1888년 세계 박람회를 기념해 세워졌는데 그의 탐험과는 별개로 잔인했던 만행을 아는 사람으로서는 씁쓸한 뒷맛이 느껴졌다. 기념비 근처에 있는 해양박물관에 들어가서는 스페인의 항해 시대 역사를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아인은 우리만 있을 정도로 스페인 현지인들이나 오는 곳 같았는데 여러 범선, 선박 모형과 지도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압권은 레판토 해전에서 활약한 로열 갤리선 복원품이었다. 1971년에 400주년을 기념해 만들어진 이 갤리선을 보니 해양강국 스페인의 모습이 보였다. 아내는 해양박물관으로 쓰이는 옛 정비소 건물 자체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다시 람블라스 거리를 가로질러서 어제 공항버스에서 내렸던 카탈루냐 광장을 지나 카탈라냐 음악당로 갔다. 카탈라냐 음악당 건물은 도메네크 이 몬타네르의 작품으로서 가우디 작품에 비견될 정도로 스타일은 다르지만 모자이크 타일과 기하학적인 조각, 장식들이 멋졌다. 토요일 오후의 거리는 엄청난 인파로 붐비고 있었다. 겨울 비수기였지만 이 정도라니 여름 성수기는 어떨지 놀라웠다.


콜럼버스 기념비 앞에서 나와 아이


해양 박물관의 로열 갤리선 복원품


아이는 계속된 도보에 힘들어했지만 함께 잘 걸어줘서 고마웠다. 지친 두 다리를 쉬게 하고 우리도 충전을 할 겸 카페에 가서 초코에 찍어먹는 추로스와 봄본치노 등을 주문해 먹고 여유를 부렸다. 한참 쉬고 난 다음에 바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스페인은 대개 점심 식사를 2~4시, 저녁 식사를 8시~10시에 하지만 우린 4시에 저녁을 먹기로 했다. 점심 막바지인지 많은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고 우리는 잠시 기다렸다가 자리를 잡았다. 스페인 명물인 파에야와 이베리코 돼지 스테이크, 감바스 요리를 주문하고 마실 것은 상그리아를 점심때 마셔서 콜라만 주문했다. 아마 종업원은 우리가 늦은 점심 식사를 하러 왔다고 생각했을 것 같았다. 요리는 다 괜찮고 나쁘지 않았지만, 가게 분위기가 바빠서 그런지 다소 어수선해 보이긴 했다. 감바스는 적절히 간이 배서 씹는 맛이 있었고 게 눈 감추듯 순식간에 없어졌다. 이베리코 돼지 스테이크는 구워진 풍미가 있었다. 우리가 제일 기대했던 파에야는 각종 해물과 밥의 간이 잘 배어 있어 짭짤하면서 시큼하고 매콤한 맛이 일품이었다. 그릇에 눌은밥까지 깨끗이 긁어먹었다. 아이는 내가 자꾸 희생한다고 좋아하는 가재와 새우 살을 발라주었다. 우리는 저녁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데 스페인 사람들은 그때가 점심 식사를 마치는 때였다. 어둑해진 거리를 걸어서 마트에 들러서는 호텔에서 간단히 먹을 과자, 주스, 물 등을 사고 오늘의 여정을 마쳤다.

카페에서 잠시 쉬어가기


이른 저녁을 먹었던 가게 내부


스페인의 대표 메뉴들


마트에서 찾은 등급별 하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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