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서양의 끝, 리스본으로

2023년 1월 08일(일)(10일째)-세비야에서 리스본

by 오스칼

구름 한 점 없는 파스텔의 푸른색으로 그려진 세비야의 아침, 스페인의 마지막 날이 밝았다. 이번 여행의 전반기에 해당하는 스페인에 대해 태양처럼 눈부시게 마음속에 담고 갔다. 호텔 체크 아웃을 하고 근처 살바도르 성당 앞 광장 카페에 가려했지만 노천에 자리가 없어서 세비야 시청 광장 쪽으로 나왔다. 따사로운 햇살 아래 한가로운 낮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 노천카페의 자리에 앉아 크루아상, 햄치즈크루아상, 추로스에 카푸치노, 카페 콘 레체, 오렌지 주스를 먹으며 공항 가기 전까지 여유를 즐겼다. 여행의 8할은 날씨라고 생각할 정도로 날씨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스페인은 다행스럽게 하루도 비가 온 날이 없었다. 리스본에는 우리가 3일간 머무는데 2일이 소나기 소식이 있어서 다닐 걱정이 되긴 했다. 오늘 도착하는 대로 여기저기 둘러봐야 할 것 같았다.


스페인에서 마주한 마지막 커피


포르투갈은 스페인과 같은 이베리아 반도를 공유하고 있어서 우리에겐 비슷한 이미지이나 유럽인들에겐 전혀 다른 이미지로 스페인의 정열과는 다르게 차분하고 여유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아무래도 대서양을 접하며 망망대해를 바라보는 나라여서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언어도 물론 달라서 급하게 핸드폰으로 필요한 말 몇 마디를 배워놓았다. 세비야 대성당 쪽에 택시 승강장이 있어서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갔다. 기사님이나 나나 영어가 짧아서 스페인어 번역기로 대화를 했다. 스페인을 떠나게 돼서 슬프고 우리가 여행한 곳은 바르셀로나, 마드리드, 그라나다, 세비야라고 했다. 기사님은 세비야 출신이어서 맛있는 음식을 물어보니 우리가 먹었던 소꼬리 찜을 말했다. 아담한 공항에 도착해서 수속을 밟고 들어와서는 탑승 전까지 카페에서 카페 콘 레체, 오렌지 주스, 요거트, 샐러드, 달걀마요 샌드위치로 위장을 채웠다. 그리고 고속버스처럼 좁은 비행기에 몸을 싣고 1시간 하늘을 날아서 우리는 더 서쪽으로 대서양의 끝, 리스본, 리스보아(Lisboa)에 도착했다.


더 서쪽으로, 리스본 도착


공항 안에서 짐을 찾는 데까지 꽤 오래 걸어야 했다. 나와서는 택시 승강장에 차례 대로 대기 중인 택시에 탑승했는데 우리 차례의 택시는 벤츠 대형 택시여서 시내 목적지까지 가는데 꽤나 가격이 나오겠다 싶었다. 20여 분을 달려서 리스본 크루즈 항구를 지나 우리 숙소가 있는 골목에 도착했다. 계단이 있어서 그 이상의 진입은 어려웠다. 짐을 내리고 골목 계단을 조금 올라가니 계단이 별거 아니구나 싶었지만 우리 방이 3층이어서 가파른 내부 계단을 24kg 캐리어를 들고 올라갔다. 고생은 잠시, 창문 밖 경치가 정말 멋있었다. 푸른 테주 강의 물줄기와 하늘, 주황빛 기와지붕, 하얀 벽의 색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했다. 일단 짐을 놓고 바로 거리로 나갔다. 먼저 들를 곳은 상 빈센테 드 포라 수도원이었다.


숙소에서 바라본 전경


오늘 둘러볼 곳이 다 가까운 데에 있어서 언덕이 있는 것만 빼면 다니기가 굉장히 쉬웠다. 숙소에서 한 6분 걸어가니 수도원 건물이 나왔다. 가는 길의 폭이 넓지 않은데 트램 노선도 있어서 신기했다. 상 빈센테 드 포라 수도원은 이베리아 반도의 이슬람교도인 무어인과 전투 중에 전사한 포르투갈과 북유럽 병사들이 묻혀있는 곳이다. 1755년 대지진으로 쿠폴라가 전부 파손되어 1855년에 지금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했다.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벽화로 매우 유명한 건물로 도시 한복판에 있는 수도원이 이색적이었다.


상 빈센테 드 포라 수도원으로 가는 길


그리사 전망대에서 바라본 리스본 시가지


조금 더 올라가면 그리사 전망대가 나와서 탁 트인 경치를 볼 수 있다고 해서 걸음을 옮겼다. 그라사 전망대는 1271년에 지어진 그라사 성당 앞에 있는 전망대로 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 바로 옆이 공사 중이어서 넓게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넓은 리스본 시가지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리스본에는 언덕이 많은 덕분에 좋은 전망대가 여러 군데 위치해 있다. 그다음 갈 곳은 상 조르제 성으로 이곳은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성으로 알파마 지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성이다. 리스본은 항구 도시이지만 바다가 아닌 거대한 테주 강을 끼고 있는데 그 테주 강에 있는 4월 25일 다리까지 조망이 가능할 정도였다. 이 성 역시 1755년 대지진 당시 파괴되었다가 1938년에 복원되었다.


상 조르제 성 입구


언덕을 내려와서 사람들이 모이는 광장 쪽으로 향했다. 오르막이 아닌 내리막이 아이에겐 더 위험해서 손을 잡고 조심히 다녔다. 10여 분을 가니 먼저 피게이라 광장을 만날 수 있었다. 피게이라 광장은 많은 버스와 트램이 지나가는 광장으로 중앙에는 항해왕 엔히크의 아버지인 주앙 1세의 동상이 있었다. 광장에 어느 빵집이 있어서 들어갔는데 나중에 찾아보니 포르투갈 왕실에도 납품했었던 유서 깊은 빵집이라고 했다. 우리가 발음하는 빵이라는 단어가 포르투갈에서 온 건 많이 아는 사실로 그런 나라답게 빵집이 정말 많았다. 에그 타르트 3개에 레몬 크림이 들어간 도넛 1개, 롤빵 1개를 사서 걸어 다니며 먹었다. 첫 빵이었는데 괜찮은 선택이었다. 아내는 따뜻하지 않아서 조금 아쉬워했다.


피게이라 광장, 콘페이타리아 나시오날 빵집, 호시우 광장


포르투갈의 수준을 알게 된 빵들


호시우 광장은 페드로 4세 광장으로도 불리는데 리스본의 중심 광장으로 한쪽에는 화려하게 만들어진 27m의 분수대가 있었다. 겨울이라 그런지 물줄기를 뿜고 있지는 않았다. 중앙에는 광장 이름에 걸맞게 페드로 4세 동상이 있었다. 물결무늬 바닥을 보니 마카오의 세나도 광장이 떠올랐다. 이곳에서 어떤 시위를 하고 있는지 경찰들이 출동해서 제지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


광장에서 얼마 못 가 나오는 산타 후스타 엘리베이터는 리스본의 명물로 꼭 방문하는 장소 중에 하나이다. 관광객들이 타는 목조 엘리베이터로 바이샤 지구와 바이후 알투 지구를 연결해 준다. 전망대는 45m 높이로 호시우 광장과 테주 강까지 보였다. 이곳으로 가는 길에 도로에서 요란한 바이크 운전자가 자동차 운전자에게 시비를 걸어 서로 주먹질하는 상황이 벌어져서 경찰이 출동하는 일까지 있었다. 한 시간도 안되어 경찰 출동을 2번 보다니 첫날치곤 시끌벅적한 인상이었다.


리스본 대성당과 트램


그곳을 지나 우리는 리스본 대성당을 향해 다시 언덕을 올라갔다. 가는 길에 트램을 몇 번 봤는데 아담하고 클래식한 트램은 꽤나 신기한 운치를 더해주었다. 리스본 대성당은 스페인의 유수한 대성당과 비슷하게 이슬람으로부터 이곳을 되찾은 후 알폰소 왕이 1147년에 건축한 성당으로 로마네스크 양식을 모태로 고딕과 바로크 양식의 혼합을 보여주고 있다. 리스본은 알다시피 1755년에 이베리아 반도를 강타했던 리스본 대지진 참사의 중심인데 이 성당은 무너지지 않고 유지되었다고 했다. 유럽 여행은 도시 방문할 때마다 성당이 빠지지 않고 들어가서 매번 비슷한 걸 보는 게 그랬는지 아이가 신은 여기에만 있는 게 아닌데 왜 맨날 가냐고 투덜댔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됐다.


전망대에서 테주강을 바라보는 아이


대성당을 지나 조금 더 올라가면 유명한 포르타스 두 솔 전망대가 나왔다. 이곳은 리스본 배경의 다큐에서 빠지지 않는 명소로 구 시가지인 알파마 지구의 언덕을 오르면 등장하는 광장이다. 이미 어둑해진 시간은 금세 야경을 선물로 내주었다. 아이는 이런저런 포즈를 하더니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이곳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바다로 착각하기 쉽지만 탁 트인 테주강을 배경으로 선박 불빛이 별빛처럼 반짝였다. 도시 야경이 아쉬워서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까지 가보자고 했다. 아이는 또 걸어야 하니 질색했지만 같이 하는 여행이니 잘 걸어주었다. 15분 정도 올라가니 리스본 시내가 탁 트여서 상 조르제 성은 물론이고 4월 25일 다리까지 보였다. 두 눈에 리스본 야경을 가득 담고 내려왔다.


세뇨라 두 몬테 전망대에서 본 야경


저녁 식사를 마트 가는 길에 레스토랑에서 하려 했는데 일요일이라 그런지 마땅한 곳이 없어서 마트에서 대구, 새우, 소고기, 문어, 모둠 해산물, 파스타, 샐러드 등과 포르투갈의 명물인 그린 와인, 비뉴 베르데(Vinho Verde)까지 샀다. 비뉴 베르데가 그린 와인이라고 불리는 건 녹색이어서가 아니라 어린 포도를 가지고 와인을 만들고 1년 안에 소비되기 때문이다. 숙소까지는 택시를 타고 돌아왔다. 골목길 사이를 요리조리 다니는 기사님이 대단해 보였다. 숙소에 들어올 때 내부 문 열쇠가 잘 안 돼서 또다시 파리 숙소 생각이 나서 아찔했다. 주인에게 물어보고 다시 해보니 얼떨결에 돼서 무사히 들어왔다. 저녁 메뉴는 포르투갈에서 유명한 대구 구이, 스테이크, 새우와 문어 펜네 파스타를 하고 와인을 곁들였다. 지붕 테라스가 있어서 테주 강에 정박한 크루즈를 보며, 밤하늘을 보며, 별을 보며, 계단 가로등을 보며 식사를 했다. 랑훼즈 협주곡을 들으며 느긋하게 리스본의 밤공기와 분위기를 즐겼다. 마지막엔 컵라면까지 하나 끓여서 방점을 찍었다. 2시간이 넘어간 식사때문에 이미 밤 12시가 되어 늦은 잠자리에 들었다.


야외 테라스에서 저녁 식사


테라스에서 바라본 동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세비야의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