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항해 시대의 출발

2023년 1월 17일(화)(12일째)-리스본

by 오스칼

리스본 구시가지에서 서쪽으로 떨어진 벨렘 지구로 가는 날이다. 이곳은 대항해 시대를 이뤄냈던 포르투갈의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새벽녘의 빗줄기에 더욱 깨끗해진 수평선과 주황빛 지붕, 파란 타일을 바라보았다. 어제 마트에서 산 샌드위치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벨렘 지구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 숙소와 7km 정도 떨어진 거리여서 걸어가기엔 무리가 있서 미리 우버 택시를 불러서 가기로 했다. 아침의 리스본은 저마다 목적지를 가진 사람들로 바빠 보였다. 테주강변을 지나가는데 타구스강이라고 안내된 한국 가이드도 있어서 기사님에게 물어보니 테주강 발음이 맞았다. 우리의 첫 목적지는 아주다 궁전인데 가는 길에 코메르시우 광장을 지나쳐 갔다. 포르투갈 다큐에서 리스본 여행의 시작이라고 소개된 적이 있어서 기억이 났다.


여전히 아름다운 리스본의 아침


아주다 궁전에 도착하니 다소 약하게 비바람이 불고 있었다. 오늘도 어제처럼 변화무쌍한 날씨를 보여주고 있었다. 아주다 궁전은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들어진 궁으로 왕실이 사용했으며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평일 오전이어서 그런가 한적한 모습이었다. 왕가의 유물이 많고 꽤나 사치스러운 장식품, 내부의 모습을 이루고 있어서 포르투갈 왕국의 전성기를 보기에 충분했다.


아주다 궁전에서 시작


언덕에 위치해 있는 궁전에서 벨렘 궁전 쪽으로 천천히 내려왔다. 다소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 트램이 정겨워 보였다. 한 10분 정도 걸으니 벨렘 궁전이 보였다. 이곳은 1559년에 지어졌으며 예전 대통령 궁으로 지금도 행사가 열리는 곳이다. 리스본 대지진 당시 왕족들이 휴가 왔을 때 목숨을 구했던 곳이라도 전해진다. 국가 주요 시설물로 많은 전시품이 있었다. 문 앞에는 근위병 2명이 근무를 서고 있었는데 아이가 진짜 사람이냐고 궁금해하며 직접 가서 물어보기도 했다. 물론 대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파란 폭스바겐 비틀 옆에서 아이, 빌렘 궁전의 근위병들


도로 건너편에 있는 발견기념비를 향해 걸었다. 이때는 날씨가 화창해서 걸을 맛이 났는데 바람이 다소 셌다. 강바람이 바닷바람 같았다. 발견기념비는 어렸을 때 리스본 다큐에서 봤던 기억이 남아 있는 곳으로 이곳을 실제로 볼 수 있을까 하는 상상을 했었다. 해양왕 엔히크 왕자의 서거 500주년을 기념해서 1960년에 건립되었다고 하는 기념비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거대한 규모여서 놀랐다. 기념비 앞 광장 바닥에는 포르투갈이 발견한 세계 곳곳의 지리 위치가 표시되어 있었다. 거대한 범선 모양의 기념비에 각양각색의 인물이 조각되어 있는데 맨 앞이 엔히크 왕자이고 뒤에 기사, 천문학자, 선원, 선교사 등이 있다. 거대한 기념비를 보니 이 시대가 의미하는 포르투갈 역사의 황금기에 대해 지금 사람들의 자부심이 보였다.


바람이 세차던 발견기념비


바로 근처에 있는 벨렘 탑으로 걸어가는데 햇볕이 따사로워서 겨울 같지가 않았다. 벨렘 탑은 포르투갈이 자랑하는 유명한 항해사 바스쿠 다 가마가 인도 항로를 찾기 위해 출발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다. 탑 부분이 바다 쪽으로 튀어나와 있어서 독특한 모양새의 미누엘 양식 건축으로 1515년에 마누엘 1세가 항구 감시를 위해 세운 탑이라고 전해진다. 그 당시에 인도, 해외 식민지 등으로 배가 떠날 때나 입항하는 배를 확인하던 곳이라고 했다.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당시 수많은 탐험가, 항해사들이 이곳을 지나며 기대와 환희를 품고 갔으며 이곳을 다시 볼 때는 안도와 평온을 느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많은 항해사를 배웅한 벨렘 탑


점심때가 되어 아내가 찾아놓은 제로니무스 수도원 근처 빵집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여기에서는 파스탈 데 나타(Pastel de nata)라고 부르는 에그 타르트 맛집이고 유서 깊은 가게라고 했다. 입구부터 역사가 느껴지고 안으로 들어가니 굉장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벽에는 옛날에 쓰던 물건들을 전시 보관해 놓고 있었고, 빵 만드는 공간도 오픈되어 있어서 수많은 에그 타르트를 볼 수 있었다. 우리는 먼저 에그 타르트 6개, 카페 라테 2잔, 초콜릿 우유 1잔을 주문했다. 에그 타르트는 따뜻하고 페스추리가 내가 평소 먹던 것보다 식감이 더 바삭했다. 새로운 맛이어서 내가 그전까지 먹었던 것과 차이점이 확 느껴졌다. 공평하게 2개씩 먹고 추가로 에그 타르트 6개와 커스터드 크림 도넛 1개, 레모네이드 1잔, 착즙 오렌지 주스 1잔을 시켰다. 오늘이 마지막 리스본 여행날이어서 에그 타르트를 위장 속으로 가득 채워 넣었다. 아내가 너무 만족해해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에그 타르트 공장 같은 카페


1차전과 2차전 에그 타르트


그리고 땡땡(TIN TIN)의 모험 시리즈를 예전에 아이에게 선물로 줬는데 무척 재미있게 읽고 이번 여행 올 때에도 본인 캐리어에 2권을 챙겨 와서 땡땡의 고향이라 할 수 있는 벨기에 브뤼셀을 가면 어떨까 생각을 해서 아내와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브뤼셀에 땡땡 관련 기념품 가게와 장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암스테르담에서 2박을 하기 때문에 하루 당일치기로 갔다 오면 될 듯했다. 암스테르담에서 브뤼셀은 고속철로 2시간 정도라서 그렇게 무리는 아닐 것 같았다. 교통편을 알아보는데 토요일이라 다소 가격이 비쌌지만 아이가 정말 가고 싶어 해서 아침 일찍 출발하여 밤에 돌아오는 걸로 표를 예약했다.


수도원에서 아이


제로니무스 수도원 예약 시간이 되어 벨렘 지구의 백미인 수도원으로 갔다. 수도원은 마누엘 양식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1502년에 짓기 시작해 170년 정도 지어서 완공했다. 마누엘 양식이란 포르투갈의 전성기인 마누엘 1세 때 유행하던 건축 양식으로 밧줄, 바다와 관련된 장식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사각형의 내부는 화려하지만 단색의 정갈한 건물로 장엄하면서 평온한 분위기가 나타났다. 나는 수도원 안에 바스쿠 다 가마의 시신이 안치된 석관이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옆에 있는 성당에 있었다. 성당은 무료였지만 입장 제한이 있어서 조금 대기하고 들어갔다. 내부는 마누엘 양식으로 지어졌고 바스쿠 다 가마의 석관과 '우스 루지아다스'를 지은 포르투갈 민족 시인 카몽이스 석관이 있었다. 카몽이스도 대단한 인물이지만 나에겐 아무래도 바스쿠 다 가마의 인도 항로 개척과 3번의 인도 항해가 더 의미가 있어서 그의 석관을 보면서 그의 일생을 생각해 봤다.


맞은편에 서로 누워있는 카몽이스와 바스쿠 다 가마


저녁 식사는 알파마 지구에서 먹기로 했는데 시간이 남아서 거기까지는 걸어서 가기로 했다. 강변을 따라 쭉 걸어가는데 맑았다가 흐렸다가 비가 내렸다가 다시 맑아지는 날씨를 선사했다. 멀리 보였던 4월 25일 다리가 가까워지고 다시 멀어지기까지 걷고 또 걸었다. 한 시간 정도 걷자 아이가 힘들어해서 내가 업고 걷기도 했다. 아이는 여기가 한국이 아니어서 창피하지 않다고 했다. 근처에 타임아웃켓이라는 거대한 푸드코트가 있어서 간단히 요기를 하려고 방문했다. 거대한 실내에는 여러 가게가 입점해 있고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메뉴를 보려고 한번 돈 다음에 포르투갈의 자랑인 바칼라우, 대구 요리를 시켜보았다. 일반적인 푸드코트가 아닌 꽤나 퀄리티 있는 요리를 선보이고 있어서 놀랐다. 가볍게 맥주나 와인 마시며 시끌벅적한 분위기에서 식사하기에 좋아 보였다. 거기서 우리가 저녁을 먹으려고 생각해 놓은 레스토랑까지는 2km 정도였는데, 도저히 걷기에는 힘들어 보여서 택시 예약을 하여 편하게 문명의 이기를 느끼며 갔다.


4월 25일 다리를 지나며 아이와 나


타임아웃 마켓의 바칼라우 요리


레스토랑은 숙소 주인아주머니가 추천해 준 곳으로 입구는 좁아 보였지만 맛은 거대했다. 아마 알지 못했으면 그냥 지나칠법한 입구였다. 먼저 전채 요리로 주문한 생선 수프, 새우 구이, 소꼬리 찜은 완벽한 맛이라 할 정도로 너무 맛있었다. 메인 요리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메인 요리가 나오기 전에 접시와 포크, 나이프 등을 바꿔 주었다. 세팅에도 신경 써주는 게 레스토랑의 품격을 보여주었다. 메인 요리는 바칼라우 조림, 생선과 새우 찜을 시켰는데 이것도 입맛에 딱 맞고 온도와 간이 적당해서 너무 맛있게 먹었다. 서빙하는 웨이터가 맛이 어떠냐고 물어봤는데 맛있다며 칭찬했다. 디저트는 크림뷔릴레, 초콜릿 무스를 주문했는데 이것도 직접 만든 듯 본연의 맛이 느껴지는 괜찮은 디저트였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 주인아저씨에게 같이 사진 찍고 싶다 해서 사진도 찍었다. 기분 좋은 배부름을 갖고 숙소로 돌아왔다. 이제 내일 떠날 리스본의 짐을 쌌다. 리스본, 리스보아는 망망대해 대서양에서 빛나는 노을 같은 도시였다.


최고의 선택이었던 리스본 식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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