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o, Dutchman!

2023년 1월 20일(금)(15일째)-취리히에서 암스테르담

by 오스칼

이번 여행의 유일한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 다들 7시 전에 일어났다. 부스스한 모습으로 간단히 정리만 한 후 조식 식당으로 갔다. 오이 절임, 토마트, 치즈, 크루아상, 각종 빵들, 잼, 달걀 등이 있는 간단한 세팅이었다. 커피가 맛있어서 카푸치노, 카페 라테, 에스프레소를 다 먹어봤다. 식사를 마치고 아침 산책으로 주변을 돌아보기로 했다. 호텔 바로 옆에 위치한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캠퍼스를 거닐어 보았다. 아인슈타인과 폰 노이만 등 세계 석학들이 공부한 곳이고 지금도 유럽 최고의 공과대학으로 이름 높은 곳이라 지나다니는 학생들이 대단해 보였다. 캠퍼스를 지나 시가지를 한 번 둘러보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짐을 챙기고 체크 아웃을 하는데 카운터 직원이 어디 가는지, 어떻게 가는지 등 물어보고 안전한 여행이 되라는 말도 해줘서 생각에 남았다.


취리히 연방 공과 대학 ETH HG 앞에서 아이


취리히에서 하이 파이브


취리히 역에서 공항까지 기차 티켓을 사는데 어른 2명에 아이 1명이 17스위스프랑이 나와서 놀랐다. 겨우 한 정거장 거리인데도 가격이 비쌌다. 역내에는 떠나는 사람들이 많았고 도착한 공항에도 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목적지를 향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우리도 발권을 하고 마지막 목적지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행 비행기에 올랐다. 이륙을 해야 하는데 순서가 많아 대기하느라 20분 늦게 출발했다. 그리고 1시간 30분 정도를 날아서 암스테르담 스히폴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화창했던 취리히와는 다르게 흐리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짐 찾는 곳이 착륙했던 곳과 멀어서 한참 걸어갔는데 짐이 늦게 나와서 예정 시간보다 1시간은 더 늦게 공항 밖으로 나왔다. 공항 크기에 비해서 항공이나 수하물 소화하는 양이 넘치는 듯했다.


잔망스런 스위스 항공 초콜릿


짐을 찾고 기차를 타러 공항 역으로 갔다. 공항 밖으로 나가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좀처럼 기차가 오지 않았다. 10분 지연되어 기차가 오고 거의 꽉 찬 상태라 서서 갈 수밖에 없었다. 암스테르담 중앙역까지 15분 정도 걸렸지만 이미 예정시간보다 늦게 나오게 되었다. 호텔은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숙소 중에서 가장 크고 좋은 호텔이었지만 체크 인하는데 시간이 꽤 걸려서 이미 예정보다 1시간 30분 늦게 암스테르담 일정을 시작하게 되었다.


드디어 암스테르담 도착


바다보다 낮은 땅, 운하의 도시, 자전거의 도시 느끼기 위해 구시가지 쪽으로 서둘러 갔다. 먼저 호텔에서 가장 가까운 NEMO 과학박물관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길에 보이는 레스토랑이 이색적이고 자유로운 분위기가 나서 이 도시의 느낌을 보여주는 듯했다. 배가 둥둥 떠있는 청록색 모양의 건물이 인상적인데 파리 퐁피두 센터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의 작품이라고 한다. 초등학교 저학년 아이가 있다면 좋아할 만한 구성으로 우리나라의 과학체험관 같은 포지션이었다. 그리고 OBA 공립도서관을 지나 렘브란트의 집으로 갔다. 네덜란드가 자랑하는 화가를 꼽으라면 빈센트 반 고흐와 렘브란트 반 레인일 것이다. 렘브란트는 네덜란드 17세기 황금시대의 대명사 같은 화가로 빛과 어둠을 절묘하게 쓴 화법으로 유명하다. 자화상, 성서를 주제로 한 대작들도 많이 그렸지만 특히 유명한 그림이 1642년에 제작된 야경이다. 렘브란트의 집은 그가 20년 동안 살았던 곳으로 생전에 화가로 살았던 그의 흔적을 찾아보기에 좋은 장소였다.


NEMO 과학박물관 가는 길에 있던 노천 레스토랑


다닥다닥 건물이 붙어있는 암스테르담의 거리


암스테르담은 엽서 자체


이어서 암스테르담의 명물 다리 중 하나인 알루미늄 다리로 갔다. 운하의 도개교로 유명한데 운하 자체가 크지 않기에 도개교라고 해서 눈에 띌 정도로 큰 것은 아니었지만 독특한 외관으로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많은 운하가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고 이 운하 사이를 연결하는 아름다운 다리가 참 많아서 아무 데서나 찍어도 배경이 아름답게 나왔다. 실제로 운하를 다니는 배도 있고, 거주하는 배도 정박해 있어서 같은 유럽이지만 이탈리아 베네치아와는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저 멀리 시계탑이 보이는 운하는 특히 더 운치 있었다.


알루미늄 다리


암스테르담은 운하의 도시


담 광장을 가는 길에 출출해서 뉴욕 피자를 슬라이스로 파는 식당에 가서 각자 한 조각씩 사 먹으며 잠시 쉬었다. 네덜란드는 벨기에와 한솥밥 먹던 나라였다가 갈라졌지만 가톨릭과 프랑스 문화권인 벨기에와는 달라서 개신교 문화의 청빈에 따라서 식문화가 발달하지 못했다. 그래서 음식이랄 게 특정되거나 자랑할만한 것은 아니었고 인도네시아, 수리남 등 옛 식민지를 통해 들어온 음식, 향신료 등의 영향으로 오히려 외국 요리가 많이 외식으로 선보이는 나라이다. 네덜란드 음식 하면 치즈, 와플, 팬케이크 정도로 식사라고 하기엔 부족한 게 있다. 굳이 꼽자면 청어 절임이 있는데 이건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치즈처럼 호불호가 있을 수 있다. 피자로 속을 달래고 가는 길에 팬케이크 카페가 있길래 바로 들어가자 해서 와플과 더치 미니 팬케이크, 핫 초코, 라테 마키아토, 카페 라테 등을 주문해서 나름 네덜란드 음식을 먹어보았다. 우리나라 카페에서 먹는 맛과 큰 차이는 없었다.


네덜란드 팬케이크


거리를 걷는데 자전거의 도시답게 곳곳에 자전거가 있었고 타고 다니는 사람도 굉장히 많았다. 인도 옆에 자전거 도로가 따로 있어서 자전거들이 쌩쌩 달리기 때문에 길을 건널 때 자전거를 꼭 살펴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칫 사고가 날 수 있기 때문에 이 도시에 있을 땐 습관이 들여야 했다.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파는 가게를 보면 여러 물건을 진열해 놓아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데 아이와 보기 민망한 물건들이 버젓이 놓여있어서 아이 눈을 가리고 가는 경우가 생겼다. 불 빨간 가게들, 우리가 홍등가라고 부르는 곳들도 영업 중이라서 다른 의미로 자유분방한 도시 같았다. 아내는 젊은이들이 놀기 좋은 도시이고 아이를 데리고 여행하기엔 조금 걸리는 게 있는 도시 같다고 했다. 내에게 이곳은 튤립의 도시였는데 점점 이미지가 바뀌어갔다. 그래도 우리가 모르는 자유와 관용에 대한 책임을 네덜란드 사람들은 짊어지고 갈 거라고 생각했다.


담 광장과 네덜란드 왕궁


거리마다 거리 이름과 각종 디자인된 조명들이 반짝여서 아직 연말 축제 같은 느낌이 나는 암스테르담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담 광장이 나왔다. 여느 유럽의 대도시 광장같이 압도적이거나 크지는 않지만 운하와 다리만 보다가 널찍한 광장을 보니 탁 트인 기분이 들었다. 광장을 마주 보고 네덜란드 왕궁과 제2차 세계 대전 희생자를 기리는 기념비가 있었다. 왕궁은 모르고 가면 지나칠 정도로 왕궁 느낌이 나지 않은 건물이었다. 나라 규모에 맞게 소박하지만 광장을 끼고 있어서 가까운 느낌이었다. 지금 왕실이 살고 있는 왕궁은 헤이그에 있고 이곳은 의전 행사가 있을 때 사용한다고 했다. 왕궁에서 안네 프랑크의 집으로 가는데 하링 샌드위치 노점이 있어서 사 먹고 싶었는데 주인아저씨가 영업 종료라고 해서 너무 아쉬웠다.


하링 샌드위치 노점


왕궁을 지나서 더 가면 안네 프랑크의 집이 나왔다. 안네 프랑크 하면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독일 나치의 희생자로서 매우 유명한 인물이고, 그녀가 쓴 일기는 전 세계에서 읽히고 있다. 안네와 그의 가족이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숨어 있던 곳으로 지금은 박물관이 되어 전 세계 수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있었다. 지금은 리모델링되어 현대적이고 세련된 외관에 놀랐지만 그녀의 가족이 2년 동안 숨어 지냈을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생각해 보았다. 추운 날씨였지만 이날도 줄을 설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왔다. 유럽이 독일 나치의 전체주의 고통을 받고 그 흔적이 이러한 유산으로 남겨져 교훈이 되고 있다면, 사실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 35년을 겪고 태평양 전쟁, 제2차 세계 대전의 고통 속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역사를 기억하는 장소에 대해서 우리의 장소에도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안네 프랑크의 집


네덜란드 소설가인 물타툴리 동상을 지나서 암스테르담 구교회가 있어서 둘러보았다. 1213년에 세워졌고 종교개혁 이후 칼뱅파의 개신교 교회로 1578년 바뀌게 되는데 더 이상 신을 찾지 않는 암스테르담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지금은 교회라기보다는 콘서트, 전시회 등으로 쓰인다고 했다. 홍등가 근처에 위치해 있다는 걸 나중에 알았는데 어쩐지 가는 길의 분위기가 다르기는 했다. 구교회를 끝으로 1889년에 개장해 네덜란드의 심장 같은 암스테르담 중앙역을 지나 호텔로 돌아왔다. 아이가 걷다가 힘들어해서 결국 중앙역을 지날 때 업고 걸었다. 저번 여행보다는 잘 걸었지만 그래도 아직은 어린이였다. 업고 중앙역을 지나서 나와 더 걷다가 나도 힘이 빠져나가서 호텔까지는 금방이라 내려서 같이 걸어 갔다. 겨울 칼바람이 매서워 호텔의 따뜻한 공기에 안도했다.


물타툴리 동상과 크리스마스 트리, 암스테르담 홍등가


암스테르담의 밤 거리


암스테르담 중앙역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취리히의 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