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6일(목) 타슈켄트
여행이라고 해서 꼭 바쁘게 움직일 필요는 없었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느긋한 마음으로 조식 뷔페 레스토랑에 들어섰다. 커다란 창문 너머로 부드러운 햇살이 스며들고, 사람들은 아직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느긋하게 아침을 즐기고 있었다. 조식 뷔페 테이블에는 과일, 치즈, 각종 빵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고, 그중에서도 내 시선을 사로잡은 건 작은 그릇에 담긴 하얀 크림, 카이막이었다. 카이막(Qaymaq)은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중동, 튀르키예, 발칸 지역에서 즐겨 먹는 전통 유제품으로서 주로 소나 양의 우유를 천천히 가열하여 표면에 형성된 진한 크림층을 걷어 내어 만든 음식으로 맛은 부드럽고 고소하며, 약간의 단맛이 느껴지는 게 특징이었다.
접시에 빵 한 조각을 올리고, 카이막을 넉넉하게 떠서 발랐다. 크림이 부드럽게 퍼지며 빵에 스며드는 모습이 먹음직스러웠다. 한입 베어 물자, 고소하면서도 약간의 단맛이 퍼지며 입안을 감쌌다. 꿀을 섞어서 달콤하면서도 보들보들한 크림과 갓 구운 빵의 조합이 완벽했다. 달콤한 꿀이 카이막의 깊은 풍미를 한층 끌어올렸다. 그리고 천천히 홍차 한 모금을 마셨다. 따뜻한 차의 쌉싸름한 맛과 카이막의 부드러운 여운이 입안에서 조화를 이루었다.
식사를 마치고 서둘러 어딘가로 나갈 필요가 없다는 사실이 이렇게 편안할 줄은 여행 중에 느껴보기 힘든 감정이었다. 조식을 마치고 나서 수영장으로 향했다. 평일이어서 그런지 사람도 거의 없었다. 잔잔한 물결이 부드럽게 일렁이고, 물속에 몸을 담그자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몇 번 가볍게 헤엄친 후 물 위에 떠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아무 생각 없이 흐르는 시간을 느끼는 것이 진짜 여유로움이 아닐까 생각했다. 수영을 마치고 나서는 사우나로 향했다. 뜨거운 증기가 온몸을 감싸며 긴장을 풀어주었다. 가만히 앉아있는데도 땀이 배어 나오고, 마치 몸속의 묵은 피로까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바쁜 여행도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이 필요하다. 호텔 수영장에서 유유자적 떠다니고, 사우나에서 느긋하게 땀을 빼고, 아이와 함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는 하루가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몸과 마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호텔 룸으로 돌아와서 나는 글을 쓰고, 아이는 저만의 시간을 보내며 저녁을 맞이했다. 저녁 식사는 호텔 근처 식당에서 우즈베키스탄 요리를 먹고 야식으로 가볍게 마트에서 먹을거리를 사서 룸에서 먹기로 했다. 어차피 내일 체크 아웃을 하고 타슈켄트 도심을 돌아다니기로 해서 온전히 여유 있는 휴식을 갖고자 했다. 가는 길에 곳곳 우즈베키스탄 식당들이 눈에 띄었다.
우즈베키스탄은 다양한 문화가 어우러진 중앙아시아의 중심지로 음식 또한 풍부한 향신료와 독특한 조리법이 특징이었다. 그중에서도 쁠롭(Plov), 샤슬릭(Shashlik), 라그만(Lagman)은 우즈베키스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현지인뿐만 아니라 여행객들에게도 큰 사랑을 받고 있었다.
쁠롭(Plov)은 우즈베키스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요리로 쌀과 양고기 또는 쇠고기, 당근, 양파, 마늘 등을 함께 기름에 볶아 만든 일종의 필라프였다. 지역마다 조리법이 조금씩 다르지만, 사마르칸트 스타일은 부드럽고 기름진 맛이 특징이며 타슈켄트 스타일은 상대적으로 가볍다. 플로프는 결혼식, 명절, 특별한 행사에서 빠지지 않는 음식으로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의 일상과 깊이 연결되어 있다. 주로 점심으로 먹는 건지 우리가 간 레스토랑에는 메뉴에 있지만 판매하지 않았다.
우리기 어제 먹은 샤슬릭(Shashlik)은 양고기, 쇠고기, 닭고기 등을 꼬치에 꽂아 숯불에 구운 요리였다. 고기를 양념을 하여 숙성한 후 구워 육즙이 풍부하고 풍미가 깊었다. 고기 한 점이 부드럽고 촉촉하며, 바삭하게 구워진 표면에서는 숯불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특징이었다. 라그만(Lagman)은 중앙아시아식 국수 요리로 중국의 란저우 라몐(拉面)에서 유래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손으로 직접 뽑아 만든 쫄깃한 면발에 양고기, 토마토, 피망, 감자, 마늘 등의 채소를 넣고 조리한 요리로 진한 국물 맛이 특징이었다.
슈퍼마켓 같은 마트에서 간식을 사고 다시 호텔로 걸어가는데 퇴근 시간의 타슈켄트 거리는 사람들의 표정도 평온해 보이고, 도로의 자동차들이 어디론가 가는데 노을이 지는 순간의 미장센이 너무나 좋았다. 이곳의 일상에 함께 스며드는 듯했다. 룸에 돌아와서 아이와 이것저것 먹으면서 내일 돌아다닐 곳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고, 이번 여행에 대해서 어땠는지 생각도 나누면서 첫 중앙아시아 여행에 대한 마무리를 했다. 얼마 전에 다녀온 호주, 뉴질랜드 여행에서 빡빡하게 다닌 것에 대한 피드백으로 이번에는 더 보려고, 더 걸으려고 하기보다는 덜 보고, 덜 걸으면서 여유를 찾으려고 했다. 아이는 어떤 스타일이든지 여행을 좋아하고, 스타일에 맞춰서 다니는 타입이라서 이번에 우리 둘이서 무리하지 않고 맛보기 같은 여행을 다닌 것에 대해서도 좋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