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맞이하는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아침 식사는 간단하게 전날 사온 터키 빵 시미트와 아이란으로 대신했다. 아침부터 터키에서만 맛볼 수 있는 빵과 음료를 먹고 있자니 이스탄불이라는 것이 실감 났다. 먹고 정리한 뒤 문 밖으로 나왔는데 옷깃을 여미고 다녀야 하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여기는 그렇게 쌀쌀하지 않아서 입었던 패딩이 다소 무색해질 지경이었다. 지중해성 기후인지 옆 나라 그리스는 정말 따뜻했지만 터키도 추운 날씨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단벌신사인 나로서는 벗을 수 없었기에 묵묵히 입고 다녔다. 오늘은 오후에 비행기를 타고 괴레메로 이동을 해야 해서 짐을 모두 챙겨서 나와야 했다. 그래서 오전에 둘러볼 곳도 짐을 놓고 다닐 수 있는 박물관으로 정했다.
날은 다소 흐렸지만 적당한 겨울 날씨에 다들 마음은 포근했다. 아이만 빼고 말이다. 겨울이기 때문에 옷을 따뜻하게 입히고자 검은색 패딩 바지를 아침에 입히려고 했는데 안 입겠다고 계속 투정을 부렸다. 옷이 이상한 것도 아니고 재질이 안 좋은 것도 아닌데 고집을 피우면서 안 입으려고 하니 나도 그러면 안아주기와 목마 태우기를 오늘은 안 해주겠다고 선언했다. 그래서 아이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조금 두꺼운 면바지를 입었다. 이러한 대화가 오고 간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그래서 박물관까지 가는 내내 묵묵히 간혹 뛰기도 하고 잘 걸어 다녔다. 그리고 첫 목적지인 고고학 박물관 안으로 들어왔다. 이스탄불에서 꼭 가봐야 하는 박물관이라면 이 고고학 박물관이다.
다리가 아파서 앉아 있는 아이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은 백 만점이 넘는 문화재가 보관되고 있는 곳으로 메소포타미아, 고대 이집트, 아나톨리아 반도를 호령했던 로마, 헬레니즘, 오스만 제국의 문화재들이 있다. 고고학, 고대 동양, 타일 키오스크 박물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중에 가장 유명한 것은 알렉산더 석관으로 알려진 유물인데 도통 찾아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박물관 직원에게 물어보니 전시를 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 들려와서 조금 허탈하기도 했다. 그래도 이 지역은 수많은 나라가 오가고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유물이 많았다. 아테네나 로마에 많이 있을 석상을 비롯해 서아시아의 문명을 볼 수 있는 쐐기문자판, 타일 장식, 도자기 등도 많아 구경하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다. 그리스 석상 같은 경우는 실제로 본 적이 처음이라 열심히 찍고 있으니 그것을 보고 있는 어머니가 아테네 가면 훨씬 많을 거라고 적당히 찍으라고 말씀하셨다. 아이는 그렇게 구경하고 있는 나에게 아침에 한 말이 있어서 그런지 묵묵히 걸어 다니고 안아 달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씩씩하게 걸었지만 힘들었는지 박물관 안에 있는 의자를 보면 잠시 앉자고 계속 이야기하며 앉으려고 했다. 그래서 박물관을 둘러보고 아이와 이야기해서 힘들면 안고, 업고 가기로 했다. 나이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걷는 게 많은 여행에서는 힘들 수 있었다. 그래도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게 여행에서만 겪을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
내리막길이라 캐리어와 아이를 동시에 안고 강제 운동
박물관 관람을 끝낸 다음에 터키의 피자라고 할 수 있는 피데를 먹으러 갔다. 이미 점심시간이 돼서 그런지 식당가에는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어제부터 느낀 거지만 식당 종업원들이 거의 다 남자들이었다. 여자가 서빙을 보는 식당도 있겠지만 시내에 있는 식당들 종업원은 내가 본 것은 거의 남자들이라 이것이 또 색다르게 느껴졌다. 식당가에서 맛있어 보이는 피데 집에 들어갔다. 피데는 터키의 피자로 할 수 있는데 모양은 바게트처럼 다소 길어서 타원형으로 생겼고 가장자리는 말아 올려있다. 그리고 그 안에 각종 토핑과 치즈를 넣어 구운 음식이다. 가격도 저렴하고 건강한 맛이 느껴지는 일품 음식이었다. 치즈, 고기, 토마토로 종류별 1개씩 주문을 해서 다들 맛있게 먹었다. 촉촉이 늘어지는 치즈와 빵 도우의 식감이 쫄깃하고 안에 담긴 고기, 토마토 등 재료도 신선하게 입안에서 맴돌았다. 식사를 한 후에는 디저트로 터키 티와 터키 커피를 시켜서 마무리했다. 터키 티도 참 많이 먹었다. 일상적으로 이스탄불 사람들은 뜨겁게 우린 홍차에 설탕을 넣어 많이 먹었다. 현지인 식사를 좋아하기에 그렇게 우려낸 홍차와 묵직한 커피를 자주 우리도 애용했다. 커피는 바로 먹으면 안 되고 시간을 조금 두고 마셔야 했다. 안 그러면 곱게 간 원두까지 다 먹어버리기 때문에 가라앉기를 기다려야 했다. 다 마신 커피는 뒤집어 점을 본다는 데 뒤집은 찻잔은 꾸덕한 커피 찌꺼기에 더러워지기만 할 뿐이었다.
이스탄불 구시가지에서는 트램을 타고 공항버스 타는 곳으로 가야 했다. 길가에 트램 자동 발권기가 있어서 발권을 하려는데 자꾸 돈이 안 들어가고 입력이 안되어 난감하던 중에 그것을 보신 어떤 터키 아저씨께서 오셔서는 친절히 자신의 교통카드로 발권해주셨다. 물론 그분께는 돈을 드렸다. 터키 여행을 하면서 일일이 적지 못하지만 친절한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사람 만나서 그 나라의 인상을 결정짓는 것은 상대적이고 상황에 따라 다른 거지만 적어도 우리 가족에게는 가장 친절하고 좋았던 나라였다. 특히 아이를 굉장히 좋아해서 어딜 가든지 아이에게 인사하고 귀엽다고 볼을 만지작 거리거나 말을 걸었다. 본인이 간식을 가지고 있으면 그걸 나눠주고 권하는 것이 일상인 나라여서 아이는 본의 아니게 과자를 참 많이 얻어먹고 다녔다. 우리나라에만 있을 것 같은 정이 이곳에도 있다는 것을 여러 번 느꼈었다.
흐뭇하게 아이를 바라보는 터키 아저씨와 부끄러운 아이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편하게 트램을 타고 공항버스가 있는 종점까지 올 수 있었다. 트램은 도심을 가로지르는 지상철이기 때문에 창밖을 통해 우리의 발길이 닿지 못했던 이스탄불의 곳곳을 보여주었다. 바삐 움직이는 듯 하지만 무언가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대도시는 분명 서울과 다른 도시였다. 종점에 도착해서는 금방 공항버스 터미널이 나올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한참을 걸어야 터미널이 나왔다. 그것도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넘고 넘어가야 하는 길이어서 처음에는 금방 가겠지 했던 길을 당황해하면서 다들 걸었다. 아내의 표현을 빌리자면 땀으로 안에 입은 옷들이 젖고 어머니의 머리에는 안보이던 흰머리가 보였다고 했다. 계속되는 오르막길에 아이는 당연히 힘들어해서 내가 목마 태우고 계속 가거나 나도 힘들어서 잠시 걷게 하고 다시 목마 태우고를 반복했다. 캐리어는 목마 태운 내가 끌고 가다가 힘들면 아내가 잠시 끌고 다시 내가 끌고를 반복하다가 겨우 시간에 맞춰 버스 타는 곳으로 왔다. 그곳에서 현금 결제를 한 다음 시간에 맞게 버스를 탈 수 있었다. 자리가 거의 남아있지 않는 상황이라 다들 나뉘어서 앉게 되었지만 그래서 앉을 수 있는 게 어딘가 싶어서 감사한 생각으로 버스에 탑승할 수 있었다. 한 시간 정도 가야 사비하 귁첸 공항으로 도착하니 그때 나는 맨 뒤에 앉아서 터키 형님들 사이에서 꿀잠을 잤다. 앉자마자 눈이 감겨 눈을 떠보니 공항에 거의 도착해있었다. 그렇게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잠시 공항에서 숨을 돌렸다.
공항 안에 오랜만에 보는 별다방이 있어서 다들 기쁜 마음으로 들어가 어머니와 아내는 아메리카노, 나는 아이스 카페라테를 시켜 달콤 쌉쌀한 커피의 맛을 즐겼다. 이미 깜깜해진 밤에 괴레메로 향하는 비행기에 탔다. 그리고 도착한 괴레메에서 우리는 피곤함에 정신을 잃을 지경이었다. 호텔에서 보내 준 렌트 봉고를 타고 주변이 보이지 않는 들판을 헤쳐 숙소에 도착했다. 그때가 밤 12시 정도였다. 괴레메에 온 이유는 카파도키아 벌룬 투어였기에 여기서 예약을 하고 방에 들어가 씻고 피곤한 잠을 청하려 했지만 출출한 나머지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고 잤다.